지난 20년간 지구 곳곳을 돌아다니고 살아보았다. 전문 여행가가 보기에는 별로 많이 안 다닌 것 같겠지만, 내 나름 오랜 해외 생활 하나하나가 배어든 소중한 장소들이다. 희미하게 남은 기억들은 내가 가진 사진이나 어떤 물건을 보았을 때 트리거가 되어 또렷이 그 시간과 장소의 디테일이 떠오른다. 지금은 뉴욕에 자리를 잡았다. 뉴욕은 내가 처음으로 이사를 하지 않고 오롯이 한 집에 1년 이상 있어 본 곳이다 (물론 중간에 있었던 군인 시절을 빼고)...
오늘 문득 내 삶을 돌아보니 좋은 콘텐츠로 승화할 것이 많은데도 블로그나 개인 웹사이트, 개인사업을 왜 시도도 안 해보고 이렇게 인생을 "그저 살아만 가도록" 하는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회사나 학교 안에서의 능동적임은 그 틀속에 있기 때문에 실은 온전히 스스로 주체가 되는 삶은 아닌 것 같다. 항상 그 조직 시스템에서 안주하거나, 더 큰 것은 종종 놓치게 되는 것 같다. 능동적인 삶이 진정 맞긴 했나 싶다. 주변에선 내가 여러 가지를 계속하고 부지런하다 하지만, 그 부지런함이 누구를 위해서였는지, 진정 내가 누군지는 알고 했는지 의문이 든다.
20년의 노마드적 삶에서 지속적으로 분실했던 나의 스케치북, 포트폴리오, 그리고 사진들... 2010년에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며 내가 만들었던 모든 작품이 한 번에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며 기록의 중요성을 느꼈었다. 그리고 2014년 유럽에 거주할 동안 미국 여기저기 넣어둔 나의 자료 절반이 또 분실되었다. 그 외 내가 도시나 대륙을 옮길 때마다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맡겨놓고 했지만, 현재 찾을 수 없다. 단 하나도...
그래도 2010년 이후 더욱 본격적으로 건축공부 및 작업을 하며 현재 '포트폴리오'라고 할 만한 것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외 손 스케치나 어떤 새로운 미술 작업도 하지 않았다. 유펜에서 교수들이 하라고 했던 작업, 그리고 회사 일로서의 포트폴리오뿐이다. 그것이 내 작품, 내 생각이 진정 맞는가? 글도 주기적으로 쓰지 못했다. 지난 20년간의 일기는 그저 나의 게으름으로 인한 자학적 책망이 가득하다. 지금보면 부끄러운데 신기하게도 그 부끄러운 기록만 내 옆에 남아있다. 더 채찍질해서 발전하란 소리인가. 종종 꿈의 내용을 눈 뜨는 즉시 기록하는 것은 해오긴 했는데, 그 안에서 어떠한 나만의 형상, 공간, 캐릭터들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현재의 나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기술적 능력은 월등히 좋아서 나름 인정받고 적당히 살 만한 34세 건축사이다. 누군가에겐 갖고 싶은 스펙이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원래 하고 싶었던 것을 인지하고도 지난 10년을 가만히 있던 것은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답답해 보일 것이다. 정식 디자인 회사 웹사이트와 이 블로그를 동시에 시작하며 나의 디자인과 인생 방향을 잘 기록해보려 한다.
2020년 11월 15일 자정에
Just trying to reset and reconstitute the lost time and life I had in the past 20 years with this new blog and my professional website that is coming soon. I've lost so many sketches, my artworks, and even a full portfolio book from undergrad that cannot be retrieved since they were all handmade. Regretting 20 years nomad life with naive thinking that documentation is not vital. I'm glad something triggered me to start all these now. Looking forward to documenting what I think needs to be documented daily.
November 15, 2020, at midn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