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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추상의 거장. 피에르 술라주 Pierre Soulages 별세

Brett D.H. Lee 2022. 10. 2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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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국의 한 옥션에서 그림을 구경하던 중 마음에 드는 피에르 술라주의 작품을 마주하게되며 잠시 리서치를 했다. 그리고 곧 알게된 술라주의 별세 소식. 바로 어제, 10월 26일 남프랑스의 소도시 님 Nîmes에 있는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잊고 있었는데 2019년 뉴욕의 레비고비 갤러리 Lévy Gorvy에서 보았던 회고전이 이분의 100세를 기념한 것이었다. 시간이 빨리 가는구나...

술라주 회고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검정의 작가 Painter of Black'이라 알려진 그의 화면은 동양 서예를 연상케 하는 대담한 검은 획으로 채워진다. 술라주는 그의 일생동안 모든 것의 원초적 기원을 검정에서 보며 작업을 해왔다. "빛은 빛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그의 생각은 그의 예술적 실천에 국한되지 않고 삶 자체에 스며들었다. 항상 검정색 옷만 입었으며 자택의 많은 소품들도 어두운 무채색 계열이 많다. 술라주와 친했던 프라츠 클라인 Franz Kline이 1950년대에 뉴욕에서 그를 만났을 때 '술라주는 그 자체가 그의 그림처럼 보인다'고 말할 정도로 검정에 진심인 작가이다. 어릴 적부터 다른 색상을 무시하고 검정 잉크에 이끌렸다는 술라주. 프랑스 남부에서 태어난 (1919년) 그는 학창시절 스페인 알타미라 Altamira 동굴의 들소 벽화를 포함한 많은 동굴 벽화와 청동기 시대의 석재 등에 매료되며 고고학 작업에 착수하여 박물관에 발굴된 유적을 입고시키기도 했다.

 

알타미라 벽화 Altamira Cave Paintings

 

생각해보면 인류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이 마치 생존을 위한 수단처럼 지속되어왔다. 원시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원시 부족들, 그리고 모든 문명 집단의 행위를 보면 우린 글, 그림, 소리, 장신구, 의복 등 수 많은 방식으로 표현을 한다. 그리고 그 기원을 어두운 동굴 속에 끄적였던 낙서,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술라주는 "사람은 처음부터 그림을 그리기 위해 (표현하기 위해) 어두운 동굴로 들어갔다"는 것을 보게된다. 그 암흑 complete darkness에서 심연 profundity, 즉 세상의 본질을 찾기 위한 탐구이다. 

 

(left) Brou de noix sur papier, 1950, oil on canvas, 64 x 49,5 cm

(right) Brou de noix sur papier, 1946, oil on canvas, 48 x 62.5cm

 

초기에는 작품이 후기작품처럼 전체가 검은색은 아니었다. 1950년대 작품은 절친 클라인의 작품과 사뭇 비슷한 은빛, 흰 캔버스에 강렬한 붓터치에서 느껴지는 원시적임과 또한 동양의 서예를 떠올리게 한다. 맞다. 20세기 후반으로 가며 점점 예술의 중심이 뉴욕으로 옮겨지기 이전 그 중심은 파리와 서유럽이었고 그 당시에는 자포니즘을 선두로 한 동양문화가 유럽 예술계에 상당히 침투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를 테면 고흐와 모네 등 이름만 들어도 다 알것같은 거장들이 따라 그린 안도 히로시게의 우키요에나 수입된 도자기와 장신구를 포장한 포장지 등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부분은 너무 방대해서 스킵)

Peinture, 1959, oil on canvas, 186×143㎝

 

1958년에 술라주는 일본을 직접 방문하여 서예 문화를 배우고 더욱 정제되고 통일감 있는 추상화를 선보인다. 예를 들어 1959년 Peinture는 201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천만달러가 넘는 고액에 낙찰됬다. (10.6 Million USD) 이 작품을 언급한 이유는 그의 작품 중 높은 '경매가'이기 때문이다. 그의 많은 작품들이 2미터에 달하거나 그 이상인 거대 캔버스인데, 작품과 마주했을 때 그 어두운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압도적이다. 서예의 붓질가 흡사하면서도 두터운 안료가 긁어져 나오며 생성되는 깊이, 그리고 때론 붉게, 때론 푸르게 화면 속에서 흘러나오는 빛과 에너지의 흔적. 정말 그의 말처럼 이는 "묘사나 재현이 아니라 드러낼 뿐이다."

 

작업중인 술라주 (1960s)

 

그는 뉴욕에서도 모국인 프랑스에서도 인정받았는데 1953년 뉴욕 구겐하임에서 <유럽의 젊은 화가들>에 소개되고 이듬해 유명 갤러리스트 사무엘 쿠츠 Samuel Kootz의 갤러리와 계약을 맺는다. 쿠츠는 그의 개인전을 개최하고 전시작을 완판하며 미국에서 술라주를 스타로 만들어 준 갤러리스트다. 곧 이어 모마MoMA에서도 술라주를 찾는 등 뉴욕에서 대성공을 이루며 로스코, 클라인, 마더웰 등 미술사에 획을 그은 추상표현주의 거장들과 조우한다.  이어 1967년에는 50세가 되지 않은 젊은 작가임에도 파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가질 정도로 세계적 명성을 거머쥔다.

 

(left )Peinture (Polyptyque J), 1987, Oil on canvas, 324 x 362 cm

(right) Peinture, 2015, Oil on canvas, 222 x 137 cm

 

시간이 지나 1960~80년대에는 아예 캔버스 화면을 검게 덮어 beyond black (outrenoir)기법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이는 색상, 빛이 검정에서 반사되어 나오는 것, 어찌보면 검정이 세상의 근원이라 믿는 그의 생각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 같다. 이 기법은 질감엥 중점을 두고 여러가지 도구로 안료를 긁고 덧바르고 변형시키며 세상을 담는 화면이 생성된다. 위 작품들을 보면 안료의 밀도, 붓의 방향, 획의 리듬 등에 따라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검은 화면이 빛을 다양하게 반사하고 표현한다. 안료는 아래에 다른 여러작품에서도 보다시피 유광과 무광도 있고 표면의 질감을 표현하는 방식도 붓터치 뿐 아니라 주걱이나 송곳 등을 이용하며 촉각적 깊이를 만들어 낸다. 빛은 흰색에서 시작된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오히려 어둠과 빛의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술라주의 검은 추상에 다시 한번 빠져드는 하루가 된다.

Peinture, 18 octobre 2011, oil on canvas, 137 x 222 cm

 

2009년.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그의 회고전.

 

2019년 가을. 뉴욕 레비고비 갤러리에서 열린 술라주 회고전 <Soulages: A Century> 이때서야 나는 처음으로 술라주를 깊게 알게 되었다. 

 

요즘 들어 꽤 자주 옥션에서 보이는 술라주의 에디션 serigraphie no18, 1988 (top left).

완전 검정의 화면도 좋지만... 왠지 푸른색이 가미된 것이 눈에는 편한 듯.

 

 

Images: Sotheby's, Christie's, Pompidou, and Levy Gor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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