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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구원 - 한병철

Brett D.H. Lee 2021. 2. 14.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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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쿤스의 Gazing Ball 시리즈 중 하나

아마 2010년 『피로사회, 2012년 투명사회』로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독일에서 활동중인 한국인 철학자 한병철의 책을 몇 가지 한국어판으로 읽어보는 중이다. 정말 가슴을 강타하는 묵직한 표현들이 거의 모든 문장마다 가득해서 몇 가지 발췌하여 올린다. 특히나 매끄러움을 원하는 것 자체를 혐오하고 우리가 그로테스크, 추함이라고 치부하는 것들의 복귀를 꿈꾸는 나에게는 특별한 사유가 된다.

 

매끄러움은 현재의 징표다. 매끄러움은 제프 쿤스 Jeff Koons의 조형물들과 아이폰과 브라질리언 왁싱을 연결해준다. 오늘날 우리는 왜 매끄러움을 아름답다고 느끼는가? 매끄러움은 미적 효과의 차원을 넘어서서 하나의 사회 전반적인 명령을 반영한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긍정사회를 체현하는 것이다. 매끄러운 것은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 어떤 저항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좋아요 Like 를 추구한다. 매끄러운 대상은 자신의 반대자를 제거한다. 모든 부정성이 제거된다.

Image Source: www.thomasde.com


 

 

Image Source: Apple and LG


스마트폰도 매끄러움의 미학을 좇는다. LG의 스마트폰 지플렉스G Flex는 심지어 스스로 치료하는 피부로 덮여있다. 이 피부는 긁힘, 즉 상처의 흔적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해준다. 말하자면 불가침의 피부다. 이 인공 피부덕에 스마트폰은 항상 매끄러운 상태를 유지한다... 장치를 거쳐 이루어지는 소통도 매끄럽게 다듬어진다. 주로 기분 좋은 것들, 다시 말해 긍정적인 것들을 주고 받기 때문이다. 공유sharing과 좋아요는 소통을 매끄럽게 해주는 도구다. 부정적인 것들은 제거된다. 가속화된 소통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Image Source: New York Times

(제프쿤스의) 매끄러운 표면 안쪽에 숨겨진 내면성이 전혀 없다. 그저 '와'하고 좋아요를 추구한다. 제프 쿤스의 예술은 매끄러움의 성화를 추구한다. 소비의 종교를 연출한다. 가다머 Gadamer는 부정성이 예술에 본질적이라고 보았다. 부정성은 예술의 상처다. 이 부정성은 매끄러움과 긍정성과 정면으로 대립한다. 거기에는 나를 뒤흔들고, 파헤치고, 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너는 네 삶을 바꾸어야 한다고 경고하는 무언가가 있다. 

 

Image Source: slide members


오늘날에는 미의 경험이 불가능해졌다. 만족과 좋아요가 전면에 나서는 곳에서는 경험이 마비된다. 부정성이 없으면 경험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존과 부재, 은폐와 폭로의 율동적인 교체만이 시선을 깨어있게 한다. 에로틱한 것 또한 드러냄과 가림의 연출, 상상의 파동운동에 의해서 비로소 가능해진다. 가시성이 포르노그래픽적으로 지속되면 상상이 파괴된다. 그 결과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볼 것이 없어진다. 오늘날에는 아름다움 뿐 아니라 추도 매끄러워진다. 추 또한 악마적인 것, 섬뜩한 것, 혹 끔찍한 것의 부정성을 잃어버리고 소비와 향유의 공식에 맞춰 매끄럽게 다듬어진다. 추는 공포와 경악을 불러일으키고 모든 것을 돌로 변화시키는 메두사의 시선을 완전히 상실했다. 

Image Source: Arts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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