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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 겐조 단게 Kenzo Tange (1/2)

Brett D.H. Lee 2021. 1. 8.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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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 일부 (Kenzo Tange 편. 그 다음은 브라질의 Oscar Niemeyer)

블로그의 건축가 시리즈 중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유명한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에서 이제 9번째!

(혹시나 서론이 길다 느껴지면 건물사진이 나오는 부분부터 보면 되겠다.

그러나 겐조가 하도 해놓은 것이 많은지라 배경을 모르면 이해하기가 힘들 수도 있다)

 

프리츠커상 첫 아시아'국적' 수상자이자,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모더니즘의 거장 겐조 단게 Kenzo Tange에 대해 알아보자. 5대 수상자인 이오밍 페이는 동양인이지만, 중국계 '미국인'으로 기록되어 있는것에 반해, 단게는 기록상 '일본국적'으로 주로 일본에서 활동하며 일본/동양의 건축과 서양의 모더니즘을 잘 결합하여 아시아건축 자체의 위상을 떨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참고로 근대부터 계속 건축계의 주요 시상과 기록들이 서양 (미국+유럽)과 일본의 슈퍼스타건축가로 양분되다가 2012년에 중국건축가 왕슈Wang Shu의 프리츠커수상 이후 수상자 선정기준이 형태formal적이고 화려한 건축언어에 치중하지 않고 친환경, 지속가능성, 경제와 사회시스템 자체에 대한 고찰 등을 중요하게 보는 듯 하다. 또한 남미와 인도, 서구에서도 다소 차별을 받았던 아일랜드 등 세계 곳곳의 건축가들이 나타나며 조금은 그 양분화된 세계를 타파하는 듯하다. 최근 10년간, 정확히 2011년 수토 드 모라 Souto Moura 이후 상을 움켜쥔  서유럽 건축가들을 막상 건축학교의 교수들도 잘 몰라하며 나에게 묻는 사태가 벌어질 정도이니, 확실히 프리츠커 재단이 '메이져'가 아닌 뒤에서 열심히 각자의 건축언어를 창조한 사람들을 찾아내는 구나 싶다. 이런 이유로 나는 프리츠커상이 더욱 가치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몇몇 슈퍼스타 건축가들 중에는 이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어서 조금 놀랍긴 하지만, 그 부분은 민감하므로 블로그에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그리고 이런 다양화 속에서 한국건축가도 나타나길 간절히 바란다.

 

잠시 주제를 벗어났지만, 어쨋든 1987년 겐조 단게라는 일본 근대건축계의 대부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며 그 아래의 수 많은 일본 건축가들이 만들어낸 각종 운동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 상상이상으로 많다. 건축역사를 배울 때 20세기에 출현한 모더니즘의 여러 운동인 근대건축국제회의 CIAM, 팀10 Team X, 메타볼리즘Metabolism, 도쿄 도시기획안 Tokyo WDC and Urbanism, 아키그램 Archigram, 브루탈리즘 Brutalism, 도시건축운동 Urbanists & Architects team, 구조주의와 메가스트럭쳐 Structuralism and Megastructure 등 너무나 다양한 것의 리더 및 주요멤버로 그는 근현대 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을 일러둔다. (또한 아래의 모든 글은 그저 건축가의 입장에서만 쓴 것이며 일본에 대한 어떠한 감정도 배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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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메타볼리즘, 브루탈리즘, 메가스트럭쳐를 대변하는 작품 중 카가와 현의 청사를 바라보며

1913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는 한커우와 상하이 등 중국 도시를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 일본 시코쿠 섬의 이마바라시에서 다소 간소하게 살았다. 중학교를 이 시골에서 마친 후 1930년에 히로시마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여 우연히 모더니즘 건축가로 당시 이름을 날리던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작품을 접하는데, 이에 강한 인상을 받아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특이하게도 처음 본 코르뷔지에에 작품이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그의 건축과는 사뭇 달라서 나도 처음엔 놀랐다. 

겐조 단게가 보았던 <소비에트 궁전>. 러시아에 당시 유행했던 러시아 구성주의 Russian Constructivism와 미래주의Futurism가 결함된 형태같다. 마치 타틀린의 <제 3인터내셔널 기념탑>이 건축으로 승화되며 스케일을 한 100배는 커진 과감한 설계안이다. <소비에트에서의 코르뷔지에>라는 글이 다양히 나올 정도로 이 당시 그도 참 특이한 시도를 했구나 싶다. 어린 겐조가 시각적자료로 이걸 처음 접했으니 차후에 나올 겐조의 도시기획안이나 메타볼리즘, 브루탈리즘, 메가스트럭쳐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넘겨짚어본다.

겐조는 졸업 후 살짝 모자란 이공계과목 성적때문에 2년간 명문대 진출을 위한 별도의 입시를 치러야했는데, 이 기간 서양 철학 서적을 다수 읽으며 오히려 그의 인문학적 사고발전에 초석을 다진다. 1935년 그는 전문적으로 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도쿄대 건축학과에 입학하였고 기시다 히데토와 쇼조우 치다 아래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졸업 후 1939-42년 기간동안 그가 동경하던 코르뷔지에의 수제자 마케와 구니오의 사무실에서 실무를 배우게 된다. 이후 도쿄대학원에 입학하여 계속 실력을 닦으며 1946년 도쿄대 교수가 되었고 단게실험실 Tange Laboratory를 설립하며 다양한 건축적 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실에서 걸출한 모더니즘의 거장이 쏟아져 나오는데 기쇼 구로카와, 아라타 이소자키, 후미히코 마키, 기요노리 키쿠타케, 타카시 아사다,  노부루 카와조 등근현대 일본건축은 물론 위에 언급했던 겐조의 건축적 운동을 함께하며 세계건축사를 장식한다. 이 중 마키와 이소자키는 1993년, 2019년에 각각 프리츠커 상을 받으며 단게 실험실 출신 건축가들의 저력을 건축계에 지속적으로 상기시킨다. 실은 이런 훌륭한 커뮤니티 형성 이후 흩어지지 않고 서로 협력하고 과감한 실험을 지속적으로 (종종 욕먹어가면서도) 진행하며 동서양 건축역사의 전체적 흐름을 집단으로서 잡아내는 것은... 너무 부럽다. 메타볼리즘같은 훌륭한 사조를 만들어내고 거꾸로 서양에 그 영향력을 미치는 것. 그 도시건축기획의 방법 등에서도 겐조가 유럽, 북미, 아시아를 넘나들며 각 지역의 지식이 융합되며 '일본'의 것으로도 흐르게 한것. 등이 부럽다

 

또한 1951년 구니오의 초청으로 영국에서 열렸던 근대건축국제회의 CIAM에 참여하며 근대 도시들의 팽창과 그 해결책에 대해 토론하며 이후 1960년에 발표하는 도쿄도시계획에 바탕을 쌓는다.  1956년 두브로브닉에서 mobility를 주제로한 CIAM 미팅도 참가하고, 1959년에는 네덜란드 회의에서 그와  제자들의 메타볼리즘 작업을 발표하며 서서히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겐조의 제자들: 왼쪽부터 키쿠타케, 아사다, 카와조, 구로카와. 이들의 작품은 먼저 스승인 겐조의 대표작을 살펴 본 후 글 맨 아래에 소개하겠다. 포스팅을 다 읽을 즈음, 이들 작품들을 관통하는 건축언어가 보일 것이다.

CIAM에서도 몇몇 지성인들은 CIAM의 아테네 헌장이 반드시 보편화하지 않는다는 의구심을 품고 지적하며,1953년에 독립하여 TEAM X를 만들었다. 겐조는 이 팀텐에도 속해있었지만 1959년 네덜란드에서의 마지막 CIAM회의까지 참석하였다.

 

1959년 결성된 팀 10 Team10, 혹 Team X.

 

이제 건물들을 살펴보자! (특별이유가 없으면 연도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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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조는 도쿄대 교수이면서 1946년이래 2차 세계대전 후에 히로시마 재건 책임자이기도 했었는데 가장 대표적으로는 1955년 히로시마 평화 기념관을 세우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 중 가장 이른 쪽에 속한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Hiroshima Peace Memorial Museum, 1955

코르뷔지에의 현대건축의 5대원칙, 도미노Dom-Ino이론이 엿보이는 겐조의 50년대 작품이다. Domus(집)+Innovation(혁신)= Dom-Ino의 결합어인데 쉽게 말하면 최소한의 철근콘크리트 기둥들이 층을 이루는 슬라브들을 지지하고 평면 한쪽에는 각 층으로 오가는 계단을 만드는 개방적 구조형식을 말한다. 그리고 현대건축 5원칙인 1.필로티(1층에 기둥들)로 건축물의 대부분을 땅에서 띄워내고, 2.자유로운 입면과 3.평면 설계가능하며 4.길고 넓은 창호, 그리고 5.옥상정원이 5개워 원칙이다. (코르뷔지에의 이론은 따로 올리도록 하겠다.  어쨋든 이렇게 하여 지금 우리가 어딜가든 만나는 철근콘크리트 타워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 원칙에 의거한 양식은 미스Mies에 의해 국제양식International Style으로 더더욱 번져나가며 온 세계에 유리외피와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건물이 도시를 채웠다. 그런 의미에서 겐조의 이 건물,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또한 그것을 적극 수용한 사례이다.  필로티가 특히 6미터나 띄워서 아래의 그늘에서 보는 정원과 호수의 전경이 탁 트이고 수려하다.

기념관은 정확히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점을 향해 대칭되게 놓이며, 앞의 호수와 포물선을 그리는 기념비Cenotaph 그리고 아래 사진의 호수의 또다른 조형. 이 3가지가 나열된 축은 폭탄 투하지점을 가르키며 버섯구름을 연상시킨다. 

카가와 현 청사, 1958 Kagawa Prefectural Government Building

그가 어린시절을 보낸 시코쿠 섬에 있는 현청사이다. 마치 수납장처럼 콘크리트 슬라브가 차곡차곡 배열되어있다. 자세히보면 일본 전통적 건축언어가 모던하며 네모반듯한 형상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나라Nara시에 있는 도다이지Todai-ji 의 사찰의 다비부쓰덴Daibutsu스타일이다. 도미노의 원칙을 바탕으로 가로로 긴 창호를 유지하며 각 처마soffit이 마치 목조건물처럼 되어있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일본의 나무로 된 일본 사찰의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영국의 브루탈리즘Brutalism건축에 비해 묵직하지 않고 좀 더 세밀한 면이 있다.

청사의 정면. 위로 반복되어 쌓여가는 도다이지를 느낄 수 있다.
겐조사 살던 그의 집이다. 1953년 완공. Kenzo's own house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처럼 역시 도미노이론과 근대건축 5원칙을 바탕으로 지어졌다. 또한 동아시아 주택의 특징인 움직이는 것, 즉 벽의 대부분인 한지문들이 열리며 그 뒤로 또 다른 방이 나오고, 그 뒤에 또 열리고, 이런 공간분할은 한중일이 다 똑같이 있었다. 이 주택은 일본의 다다미의 사이즈 패턴(0.9x1.8m)을 구조모듈로 하였고 후스마fusuma들이 열리고 닫히며 확장하고 쪼개지는 공간, 원래 동양의 건축을 필로티 (기둥) 위에 떠있게 한 것이다. 코르뷔지에의 빌라사보아villa savoye 처럼 중력을 무시한 듯 부유하는 볼륨속에서 다양하게 공간변화를 추구하며 또한 가지처럼 시선이 외부로 뻗어나가는 것이다. 곧 이는 살아 움직이는 공간, 동적인 건축과 도시로 연계되며 메타볼리즘이 제시한 근대의 도시팽창으로 인한 해결책으로도 확대해석 될 수 있다.

1층에서 주택으로 진입하는 계단. 코르뷔지에의 "건축의 동양화"라는 말이 어울린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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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 교수로 있던 겐조는 1960년 드디어 건축과 도시디자인에 한 획을 그은 도쿄 도시계획1960을 발표한다. 먼저 그림만 봐도 '아 어디서 본 거같은데...'라는 느낌을 주는 도쿄계획안을 살펴보자. 

 

혹시 어디서 본 적이 있는가? 일본 애니메이션 아키라 Akira (1988)에서 나왔던 네오도쿄 Neo Tokyo의 밑바탕이 되었던 겐조의 디자인이다. 겐조의 작품이 40년대부터 60년대에도 메타볼리즘, 아키그램, 메카스트럭쳐에 기여하는 작품이 많았지만 특히 이 작품으로 전세계에 그의 이름을 제데로 각인 시키는 신호탄을 날렸다. 당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도시의 인구밀도를 해결하기 위한 제안으로 마치 거대한 생명체들이 살아있는 듯한 미래도시가 출현했다. 1960년 도쿄 세계 디자인대회에서 겐조가 발표한 이 계획은 도쿄만 Tokyo Bay 위에 기둥을 세워 수만 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모듈형식 건물을 짓는 메타볼리즘 이론에 의거한 것이었다. 메타볼리즘Metabolism의 뜻은 '대사 작용'인데, 마치 도시가 군화와 성장의 진행이고 그 과정에서 내부 결합, 외부자극에 대한 반에 따라 변이하며 공간이 진화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이야 공각기동대나 에반게리온, 아키라, 등 수 많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보여준 미래도시 풍경에 익숙해져 있겠지만, 이 때는 50년대를 막 지난 시기였다. 참으로 대단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각종 건축물과 현실화 되진 않았지만 상상을 자극하는 설계안들은 일본 애니메이션과 문학에도 녹아나고, 나중에는 헐리웃 영화, 예를 들어 블레이드 러너에도 나타난다. 겐조의 영향력은 건축을 넘어서 미래 지구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많은 평론가들이 지금도 이 계획은 20세기에 등장한 도시계획 중 가장 선구적이란 평가를 내린다.

 

 

1961년 3월, 단게는 건축 잡지 신건축(新建築)에 통해 발표한 <도쿄계획-1960: 그 구조개혁의 제안>. 1960년에는 도쿄에서 열린 세계디자인회의WDC에서 단게를 즁심으로 실험적인 젊은 건축가 그룹 '메타볼리즘'이 미래 도시에 대한 제안을 한 것이다.. 도쿄만 바다에 기둥을 세우고 거주하는 모듈식 건물을 짓는 계획안이다. 메타볼리즘은 점점 높아지는 도시의 인구밀도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또한 이러한 계획은 아예 건물 자체가 움직이는 것으로도 표현되며 1961년에 결성된 영국의 아키그램 그룹과도 서로 대화를 시작한다. (메타볼리즘적 건축은 이미 겐조가 50년대부터 보여주며 유럽에도 여러번 알렸다)
겐조가 발표한 도시디자인의 일부. 1960년에 발표했는데 1961년 영국에서 결성된 아키그램의 그림들과 매우 유사하다. (아키그램은 그림 2개만 더 보고 소개하겠다)
겐조의 제자, 아라타 이소자키의 City in the Air, 1962년
키쿠타케의 마린시티 Marine City, 1963

보다시피 그의 제자들도 만만찮게 대담하고 메타볼리즘 이론에 의거한 디자인을 하였다. 마치 조개의 군집처럼 part-to-whole 관계를 명확하게 보이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1960년 주창한 이 운동의 개념을 정리하자면; 1. 군화(단위, 다양성, 엔트로피), 2. 성장 (증식, 교환, 분열, 파괴), 3. 결합 (이음매, 공존, 매개, 교환, 절단의 개념), 4. 효율 (속도와 밀도), 5. 자극 (내외부의 촉매제들), 6. 유동성 (정보유통)이다. 마치 생물학에서 들을법한 단어들이 나오며 metabolism이 왜 그런 명칭을 가지게 됬는지 이해하게 된다. 이는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이듬해 영국의 아키그램과도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물론 실현하기 힘든 디자인들이고 1975년 오일 쇼크 이후, 낭만적 기술주의에 기반을 두었던 이 운동은 쇠퇴하며 멤버였던 각 건축가들도 그들의 건축언어를 유지하되 스케일은 좀 줄여 건축작업을 계속한다.

 

아키그램의 대표적인 건축가 피터 쿡 Peter Cook의 플러그-인 시티 Plug-in City, 1963 일회성 건물들이 나타난다. 도시 전체에 마치 날라다니는 집이 주차장에 쏙 들어가듯 벌집처럼 군집 프레임이 형성되어 있고 그 외 도시의 생리를 담당하는 각종 파이프들이 노출된 혈관처럼 도시를 가른다. 이 구조체는 그야말로 성장해나가는 도시생명체이다. 주로 인구증가로 인한 문제를 아예 일본의 메타볼리스트처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낸다. 아키그램의 구성원들은 Architecture+Telegram의 합성어를 내걸고 날로 무의미해져가는 영국의 주류건축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확실히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어느 때보다 고분고분하며, 지극히 따분한 일이 되어버렸다."

론 헤론의 워킹시티Walking City 1966. 플러그인, 즉 고정된 구조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도시가 통째로 움직이는 더욱 과감한 제안이다. 근대 들어서 더욱 문제가되는 도시의 스프롤Urban Sprawl현상(자꾸 도시 면적이 쓸데없이 확산되는 것)을 아예 이렇게 풀어낸다느 것이다. 이들의 발상은 황당하지만 그 시스템적 사유와 이런 기획에서 보여진 시각적인 것에서 다른 디자인 언어가 마구 파생되며 이론과 역사적 가치를 상당히 가진다.
아키그램은 주로 이렇게 그래픽 잡지를 만들어 10여년간 출판하였다.

아키그램의 구성원이 위와 같은 건물을 실제로 완성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주로 아주 거대한 시스템, 혹 기계적인 어떤 것을 만들어야하는데 이는 곧 메가스트럭쳐로 연결된다. 이를 일본의 메타볼리즘 건축가들은 겐조를 중심으로 몇 가지 실제로 구현해냈다. 

겐조가 설계한 시즈오카 언록사와 방송국 타워 Shizuoka Press and Broadcasting Tower, 1967년
겐조의 제자 기요노리 키쿠타케의 도쿄 소피텔 호텔, Sofitel Tokyo, 1994년
밤에 보면 제맛인 나가킨 캡슐호텔, 1972년 Nagakin Capsule Tower, 겐조의 제자 기쇼 구로카와의 작품이다.

보다시피 중심 구조체인 타워에 벌집마냥 다닥다닥 오피스나 호텔, 상업공간이 붙어있다. 확장하고 진화하며 혹 팔을 뻗어 2갈래로 갈려도 성장해도 시스템이 유지되는 그런 생명체인 건축물이다. 겐조의 사상이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전수된 것이 명확하다. 한발짝 더나아가 1996년 후지TV 청사를 보면 더더욱 놀랍다.

겐조가 설계한 Fuji TV Broadcasting Center, 1996년
정말 블레이드 러너에 나올 것 같은 건물형태이다. 건물의 빈 공간사이로 날으는 차가 지나갈 것 같다.

조금 작은 건물을 또 살펴보면 겐조의 주택처럼 된 것이 꽤 있는데 제자들의 작품 중 키쿠타케의 작품을 소개한다.

기요노리 키쿠타케의 스카이하우스 Sky House, 1958년.

주거 공간이 위로 완전히 멀리 떠있다. 필로티 대신 각 변의 중간에 4개의 넓은 구조(shear wall)가 전체를 떠받친다.

 

기요노리 키쿠타케의 도쿠지 사찰, Tokuun-ji-Temple, 1965년

아예 자기부상열차처럼 외벽을 구성하는 볼륨이 떠있다. 필로티같은 어떤 구조물도 보이기 싫었던, 그야말로 워킹시티walking city같이 앞으로 발사될 것 같은형태이다. 안쪽에서 C frame으로 구조가 받치는데, 마치 사찰의 내부에 신성한 힘이 있는 느낌마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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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메타볼리즘은 뒤로 하고 다시 겐조의 대표작 몇개를 소개하려는데, 글이 조금 길어져서 2편으로 나누어 겐조 단게 (2/2)를 곧 올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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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ikipedia, World Monuments Funds, Archidaily, and Divis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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