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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Architecture/건축가 Architect

[Architect] 겐조 단게 Kenzo Tange (2/2)

Brett D.H. Lee 2021. 1. 10.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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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시리즈의 프리츠커상 9대 수상자 겐조 단게의 2번째 포스팅이다. 내가 특별히 겐조 단게를 좋아하거나 편을 드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가 해놓은 것이 레코르뷔지에나 미스 반 데 로에 급으로 많아서 맥락을 짚다보니 글이 길어져서 2편으로 쪼갠 것이다. 그냥 일러두기이다.

 

어쨋든 메타볼리즘의 세계관이 공상만화와 후에 헐리우드 SF의 건축배경에도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1편에서 잠시 언급했다.  은유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대놓고 건축이 생명체처럼 진화하고 성장하는 것을 공간화, 시각화하였으며 복잡한 근대도시의 문제를 이런 유기적 관점에서 해결하려 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단게의 브루탈리즘 Brutalism, 구조주의와 메가스트럭쳐 Structuralism and Megastructure, 도시건축운동 Urbanists & Architects team을 알아보자. 

 

먼저 이전 포스팅에서 보았듯이 단게의 50~70년대 작품 대부분이 beton brut, 노출콘크리트인 것을 알 수 있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명명한 이 단어는 모더니즘에서 아주 많이 쓰이는데 195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브루탈리즘Brutalism은 특히 가공되지 않은 거친 표면의 노출 콘크리트를 주 재료로 하여 미니멀한 조형언어와 간결한 구조, 재료의 순수한 색을 중시했다. 꼭 무섭게 생긴 콘크리트 건물만이 부르탈리즘은 아니다 - 벽돌, 목재, 유리, 강철이 들어가긴 하지만, 보통 대표작들이 워낙 양감이 뚜렷한 콘크리트 '덩어리'같아 보여서 그럴 것이다. 영어로 brutal은 '거칠고 폭력적인'의 형용사라서 더욱 그 방향으로 흘렀나 싶다. 단게 또한 코르뷔지에 영향은 물론 다양한 형태를 쉽게 만들수 있는 철근콘크리트를 즐겨 사용했다.

 

다시 살짝 시간을 돌려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작품을 돌아보며 설명하겠다

구라시키 시청사 Kurashiki Town Hall, 1960
시청사 구조의 디테일

마치 튼튼한 콘크리트 요새처럼 설계된 구라시키 시청사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이나 그의 주택, 또 카가와현 청사에 비하면 좀 더 볼륨감이 있다. 1층도 필로티가 아니라 육중한 벽체가 내려와 있어 코르뷔지에의 근대건축 5원칙과는 사뭇 다르다. 구조의 디테일 또한 일본의 목조의 결구법, 츠기테Tsugite 와 시구치Shigutchi를 연상하게 만든다. 철근 보beam와 거더girdir가 마치 목조구조가 결합하듯 만나며 외부로 그 구조적 언어를 파사드에서부터 명시해준다. 브루탈리즘의 기본 원칙인 재료와 구조, 형태의 간결하고 효율적인 사용이 동양 목조 건축의 메타포를 만나며 브루탈리즘건축의 수준을 끌어높인다. 

 

야마나시 방송국 Yamanashi Broadcasting Center, 1966년

브루탈리즘하면 가장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가 아마 이럴 것이다. 2021년 지금 시점으로 보면 굉장히 답답하고 구식으로 보일 것이다. 겐조의 다른 브루탈리즘 작품은 그래도 디테일과 고운 선이 숨어있었는데, 이것은 굉장히 육중하기만 한 조금 아쉬운 작품이다.

 

카가와 현의 체육관, Kagawa Prefectural Gymnasium, 1964

곡면구조적 실험이 점점 더 나타난다. 단게는 이후 점점 더 과감한 곡면을 다루며 스케일도 엄청 키우는데,, 그 전초전 같은 작품이다.

체육관 내부와 도면들

 

도쿄 올림픽 경기장 Tokyo Olympic Arenas, 1964

단게가 유럽을 방문했을 때 만난 콜로세움에 영감을 받아서 설계하였다. 말을 안했다면 실은 전혀몰랐을텐데... 엄청 진보한 콜로세움인가보다. 돚대에서 쓰는 마스트mast 천으로 자연스럽게 두 기둥을 따라 포물선 곡면을 만들며 지붕을 만들었다. 아래 스케치와 내부사진을 보면 명확히 코르뷔지에가 1958년 벨기에 세계박람회에 선보인 필립스 파빌리온 Philips Pavilion과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의 잉갈스 하키경기장Ingalls Rink을 차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내부사진 아래에 비교가능 하도록 첨부하였다. 실제로 이것은 단게가 차용했다고 한 것이다). 완공했던 1964년 당시에 이 지붕은 세계최대의 케이블 현수구조였다. 프리츠커상 수상에서도 이 경기장 설계가 주요 작품으로 선정되었기도 하다.

입면 스케치와 기붕부분에서 구조물을 올려다 본 모습
도쿄 올림픽 경기장 내부 Tokyo Olympic Arenas, 1964. 빛이 떨어지며 지붕의 구조를 더욱 빛나게 해준다. 마치 치마폭 아래에 들어온 듯, 혹 꽃잎 안에 있는 듯하다. 
사리넨의 경기장 지붕 디자인, 1958
사리넨의 경기장 지붕 디자인 내부, 1958
코르뷔지에의 필립스 파빌리온,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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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겐조의 작품.

도쿄 성모마리아 성당 St. Mary's Cathedral, Tokyo, 1964

경기장에서 케이블로 쌍곡포물면hyperbolic parabola을 그렸다면 이 성당은 콘크리트 쉘shell 구조로 굳혀 만들어졌다. 중력으로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라 벽체를 이루는 모든 면의 콘크리트 타설을 위해 치밀해야만 했던 거푸집 설계가 눈에 선하다. 외벽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되어있다. 길게 세로로 되어있는 창호로 들어오는 빛은 성스런 느낌을 연출한다.

성당 내부 제단뒤로 스테인드 글라스가 빛을 발하며 마치 동굴의 신선을 찾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후면. 오르간이 자리하고 역시 뒤로 후광을 발산한다. 저 위에서는 아무 노래마저 성스러울 것 같다.
도면과 위에서 본 성당의 모습. 마름모형태로 되어있으며 곡면이 위로 올라가며 결국 십자가를 만들어 낸다. 내부공간에서도 천장을 바라보면 거대한 십자가가 은혜를 내리듯 빛을 아래로 보내준다. 실로 대단한 건축 구조의 실험과 사용자가 느낄 공간연출이다.

 

에도 도쿄 박물관, Edo Tokyo Museum, 1967년

우주선이 내려앉았나? 저 외팔보, 캔틸레버Cantilever를 보라. 엄청난 넓이와 깊이이다. 아키그램에서 나타난 걸어다니는 건물처럼 4개의 기둥이 마치 다리처럼 굳게 서있다. 단게의 작품 중 이렇게 메가스트럭쳐megastructure를 대표하는 것이 꽤 있다. 1950년대 초반부터 60년대 중반까지 일련의 실험적 언어인데, 레이너 밴험이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점점 커지는 건물의 스케일 그리고 기술의 발전으로 정말 어디까지 크게 할 수 있나 경쟁을 하듯 많은 나라들이 거대한 건물을 만들어 냈다. 무조건 부피가 크다고 메가스트럭쳐인 것은 아니다. 그 내부에 도시의 여러 기능을 포함하면서 도시 속으로 들어간다. 단일 건물 안에서 빠른 이동을 요구하여 굉장히 복잡하고 치밀한 내부의 동선디자인, 사용자의 공간과 설비공간 등을 확보해야한다. 이런 점에서 아키그램의 플러그인 시티와 일맥상통한다. 이 거대한 몬스터안에 하나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며 그 안에서는 모든것이 빠르고 효율적인, 소위 모더니스트로 살아 갈 수 있는 유토피아적 상상이다.

아키그램의 플러그인 시티 일부.

 

 

 

1970년에 열린 오사카 엑스포

단게는 3.3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엑스포 부지의 마스터플랜을 총괄하였다. 위 아래 사진에 보이는 메인 플라자는 단게가 정확히 아키그램과 메타볼리즘, 메가스트럭쳐, 구조주의를 마음에 두고 설계했음을 알 수 있다. 스페이스프레임Space frame지붕으로 각종 설비들이 움직이고, 아래 플라자에는 간단한 수행이 가능한 로봇들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플라자와 주변과의 연결은 무빙워크moving walk를 설치했다. 실은 지금은 다 당연하고 공항같은데서 보는 것이지만 1970년에 무빙워크에 방문객에 따라서 움직이는 설비와 로봇은 굉장히 참신한시도였고 사람들의 반응도 매주 좋았다고 한다. 이 엑스포에서 선보인 각종 모더니즘 운동과 결합한 신기술의 이용은 현재까지도 많은 건축가와 이론비평가들에게 언급/참조된다.

 

안타깝게도 1975년 오일쇼크와 함께 경제가 어려워지며 더 큰 뜻을 펼치지는 못했고, 메타볼리즘도 메가스트럭쳐도 사그러들었다. 그는 1980년대의 건축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그저 변천하는 표현일 뿐이라며 격렬히 싫어했으며 그가 사망한 2005년까지 그의 사조를 끝까지 유지했다.

 

또 다른 메가 스트럭쳐이자 브루탈리즘의 예시인 파키스탄 대법원. 1993년.

70년대에 메타볼리즘은 쇠퇴하고 그들의 실험적 도시기획도 역사속으로 묻어졌지만, 겐조는 오히려 80년대부터 점점 해외에서 건축의뢰를 받게된다. 1985년 당시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즈의 부름을 받아 파리이 Place d'Italie일대의 설계를 부탁했는데, 현실화 되진 않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 작품은 이전만큼 어떤 뚜렷한 특색이나 사조가 있기보다는 그가 이제껏 축적된 노하우로 크고 상업적인 건물을 꽤 짓는다. 물론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필자의 건축가 시리즈 포스팅은 각 건축가의 시그니처 작품과 그들이 만든 사조, 언어를 리뷰하기 위함이니 대부분 생략하겠다. 

신주쿠에 위치한 도쿄도 청사 Tokyo Metropolitan Government Office, Shinjuku, Tokyo, 1991년 완공

90년대에도 여전히 육중한 그의 건축언어를 유지한다. 특히 도쿄도 청사는 요즘 존재하는 거대한 타워가 그러하듯 내부설비가 인간의 몸 속처럼 매우 복잡하다. 지금 건축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그는 이것을 계속하여 cell세포와 metabolism신진대사라는 단어로 건축과 도시를 표현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건축물과 도시는 정말 생명체와 같다. 그것은 탄생한 후에 외부는 늙어 마치 피부가 늘어지고 트러블이 생기듯 문제가 생기고, 구조도 조금씩 가라않으며 언젠가는 재건축/구조보강을 해야할 것이고, 특히 거대건물에서는 내부에 사람들에게 공기를 주도록 환기환풍 시스템이 계속 허파처럼 작동해야하고, 신경계처럼 전기설비가 있어야하고, 림프관이나 소화시설, 혈관처럼 배관, 배출시설도 있다. 그리고 결국 사람과 각 공간이 상호작용을 하며 내부에서 계속 움직이고 도시에서 살아가듯 이 내부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기도 한다. (특히 주상복합...) 마지막 문단을 잠시 내맘대로 적다보니 문득 그렇다면 우리가 아파트/콘도/고층상업시설로 뒤덮인 현재 무엇이 또 문제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아무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거장 겐조 단게의 소개는 여기까지 하겠다.

건축과 도시설계 수업을 진행중인 겐조 단게의 모습
그 다음은 브라질의 독특한 건축세계를 구축한 오스카 니마이어Oscer Niemeyer를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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