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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Architecture/건축가 Architect

[Architect] 고트프리드 뵘 Gottfried Böhm

Brett D.H. Lee 2021. 1. 8.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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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건축가] 시리즈 포스팅에서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Pritzker Architecture Prize 8번째 수상자이자 콘크리트를 통한 독특한 조형 언어로 독일의 표현주의 혹 포스트바우하우스 Post-Bauhaus로 묘사되어 온 고트프리드 뵘 Gottfried Böhm에 대해 알아본다.

건축가 아들들의 발표를 듣고있는 고트프리드 뵘Gottfried Böhm

고트프리드 뵘은 독일 오펜바흐암마인 Offenbach am Main에서 20세기초 유럽에서 과감한 건축언어를 가진 성당과 교회건축물로 유명했던 건축가 도미니쿠스 뵘Domunikus Böhm의 아들로 1920년에 태어났다. 도미니쿠스 뵘은 쾰른 공작학교의 교회미술과 과장을 역임했고 교회 30개를 포함한 70여개 완공된 작품과 약 80여개의 실행되지 않은 설계안을 남겼다. 어려서부터 이런 대단한 아버지의 작업물을 보면서 자연스레 고트프리드도 건축가의 길로 들어서고 특히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주었던 주요 건축물에 종교시설이 많은 것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 뿐만 아니라 친할아버지도 유명건축가였고, 그의 아들 넷중 세명이 건축가로 현재 활발히 활동중인 Böhm집안은 4대에 걸친 건축명가이다. 

 

1946년까지 뮌헨 공과대학교 Technische Universität München에서 인문교양을 수학하고, 졸업 직후 뮌헨 근교의 예술아카데미에서 조각을 배우며 스승이었던 루돌프 바르Rudolf Barr와 함께 쾰른 재건협회 활동을 하였다. 그 당시 조각을 하며 익힌 다양한 삼차원적 실험과 구현력은 이후 그가 건축가로서 활동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다. 실제 그는 설계하면서 항상 점토로 모형을 만들었는데, 아무래도 그의 건축언어가 양감이 묵직한 표현주의적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조각을 배우고 난 이듬해 1947년부터 3년간 아버지의 설계사무소에서 실무를 배우고, 1951년에 6개월의 짧은 기간 뉴욕의 카제탄 바우만 사무실에서 근무하였다. 1952년 그는 미국에서 몇 차례 그의 조각과 건축기획안 작품들로 순회전시를 하며 저명한 건축가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하였고, 이런 미국 생활을 하던 중 미스 반 데 로에Mies van der Rohe와 월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를 만나며 국제양식과 바우하우스를  더욱 깊게 접하게 된다. 1955년 아버지 마르쿠스의 사망 이후 사무실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이르게 된다. 무려 65년 넘게 이 사무실에서 그는 건축혼을 불태우며 독일 전역의 교회, 박물관, 사무실, 개인주택, 공공시설 등 많은 작업을 완성하였다. 

 

작품 예시를 보기전에 잠시 건축사와 이론계보에서의 뵘의 위치를 보자면 그는 표현주의와 포스트 바우하우스로 여겨지는데, 과거와 현재, 이상과 현실, 각 건축재료와 공간 사이의 연결성 connectivity을 중시했다. 이 연결성은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 사이의 간극, 또한 버려진 공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설계 및 사용 등의 연결을 의미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건축은 형태적으로 굉장히 대담한 시도를 많이 했기에 마치 거대한 생명체가 내려앉을 주변환경에 적응하며 서서히 굳어진 느낌을 준다. 누군가에겐 건물이 너무 지나치게 과격한 것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뵘은 철저하게 불필요한 형태와 장식은 배제하고 또한 지나친 미니멀리즘도 거부하며 바우하우스의 윤리적 원칙을 신봉한다. 모더니즘과 바우하우스를 관통했던 실용주의와 기술적 낭만주의, 즉 단순한 공예적, 조형적 표현을 넘어 실용성, 지속성, 환경과의 관계 등에도 철저했다. 그의 초기작은 주로 콘크리트를 주재료로 하여 흔히 그를 '콘크리트 표현의 마법사'라고 부를 정도였으나 포스트모더니즘을 접하며 최근까지는 유리와 철강의 비중을 높이게 되었다. 이제 그의 작품 몇 가지를 살펴보며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자.

군집처럼 나열된 둥글둥글한 순례자의 숙소들과 그 뒤로 마치 바위산처럼 보이는 교회건물 전경. 비탈에 위치한 교회의 특성에 맞춰 순례자의 길을 만들고 사람들이 숙소가 있는 이 길을 따라 상승ascend한다.

고트프리드 뵘을 찾으면 항상 먼저 언급되는 대표작이 네피게스 순례교회 Pilgrimage Church in Neviges (1968)이다. 그런데 하도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다 사진각도에 따라 완전 다른 건물로 보여서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한다. 네피게스 순례교회가 독어로는 Nevigeser Wallfahrtsdom. 그러나 실제 기록되는 정식 명칭은 'Maria, Königin des Frieden (독어) Mary, Queen of Peace (영어) 성모마리아 평화의 여왕'이다. 여기에다 1968년 건물이 지어진 1968년부터 불리던 또 다른 이름은 'Mariendom and Wallfahrtsdom'이다. 건물 설명전에 일단 헷갈려서 모든 이름을 나열해보았다. 참고로 구글에서 이 중 어떤 이름을 서치하든 찾으려는 이 교회가 나오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고트프리드 뵘의 스케치. 솔리드와 보이드가 만들어내는 양감, 빛의 향연, 재료의 질감,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질 강한 명암과 색감에 의한 공간 경험에서 얻는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마치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대지아래 거대한 동굴로 들어온 느낌이다, 물론 바실리카나 고딕성당의 전통적인 요소와 현대적인 해석이 융합되어 이제껏 보지 못했던 내외부 공간이 연출된 점에서 이 순례교회는 포스트모던 표현주의의 예시로도 평가받는다. 
대지에서 나온 흙, 점토가 반죽이 되는 한 순간에 굳어진 듯한 천장. 다양한 각도와 사이즈로 자연채광을 연출하며 신비함을 부여한다. 필요한 만큼의 빛이 적절하게 다각도로 들어오고 구조적으로 모두 맞물려서 들보가 되어주어 난리난 것 외형보다 기능주의가 강조되는 건축언어이다.참고로 이 교회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으로 수차례 여러 매체에서 꼽힌 곳이다.
오르간이 살짝 보이는 다른 천정 샷. 각진 덩어리들이지만 보면 볼 수록 생명체가 꿈틀대듯, 지질 각층이 움직이듯 꽈악 맞물리는 구조적 압력과 운동이 느껴진다.
뵘은 직접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을 하였다. 대표적으로 장미 Rosenfenster (Rose Window)와 뱀 Schlangenfenster (Snake Window)이 있는데 이 붉은 장미 모티브는 이 성당 구석구석에 계속 찾아 볼 수 있다.
마치 설산인지 건물인지 알 수가 없는 교회의 모습. 지붕은 특히나 그 형체가 절제된 독일표현주의를 대변한다.

건축평론가 피터 데이비Peter Davey는 뵘의 건물이 "독일과 유럽에 표현주의 전통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 독특한 주관적 예술 작품"이라고 발표했다. 뵘의 많은 건축물은 중세시대 교회나 성당, 공공건물에 증축하거나 바로 옆에 딱 붙어있는 것이 많았는데 그 자리에 콘크리트를 마치 큐비스트나 야수파처럼 다각적으로 표현해 자리시키며 낡은 중세 석재건물과 융합된 새로운 건축언어를 창조해냈다.

작지만 뵘이 각별히 생각하는 St. Hildegardis Chapel, Dusseldorf 1970.

그의 '콘크리트 덩어리'가 가장 잘 표현된 작품 중 하나인 St. Hildegardis chapel은 그의 커리어에서 초중반 작업이다. 네피게스 순례교회처럼 점토가 붙고 떨어지며 형상을 만들어내듯 그 형태가 과감하고 표면이 거칠고 보는 것만으로도 촉각적 자극을 야기한다. 

 

Iglesia Youth Center Library 1968

지금보니 대표작이 대부분이 68년 전후에 몰려있다. 그의 콘크리트 대작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 황금기였는듯...

 

그 다음은 현재 미술관이자 유적지로 사용중인 쾰른의 콜룸바The Kolumba Museum이다. 직접 가서 이 건물은 경험해야만 그 느낌을 알 수 있는데, 2015년 방문했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대부분의 젊은 건축학도들은 Kolumba하면 피터 줌터Peter Zumthor를 떠올리는데 이는 아마 그가 2009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며 지금까지 화제의 중심에 계속 있는 슈퍼스타건축가라서 그럴 것이다. 그 또한 빛과 양감이 주는 공간연출의 마스터이자 석재와 콘크리트를 매우 잘 쓰는 건축가라서 뵘과도 비슷한 면모가 있기도 하다. 어쨋든 이곳은 미술관+박물관으로 증축되어 2007년에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포스팅에서는 그 전에 고트프리드 뵘이 무엇을 했는지 알아보자.

현재 미술관으로써 콜룸바에 대한 정보는 세계여행, 미술건축여행 그리고 건축가 시리즈에 다양한 각도에서 다시 쓸 예정이다).

줌터의 콜룸바 외관 The Kolumba, Koln, 2007년 완공된 모습. 실은 뵘이 했다고 해도 믿을만하다.
기존에 존재했던 St. Kolumba Church. 2차대전 때 쾰른 폭격으로 1943년에 무참히 사라졌다.
1949년 아버지 도미니쿠스 뵘과 함께 설계한 작은 예배당. 폭격맞아 터만 남은 자리 한 귀퉁이에 이렇게 작은 예배당을 만들어 위로와 기억remembrance을 한다. (필자는 전쟁에서 '기념관'이란 말을 사용하기 싫어한다. 기억하고 위로하는 것이지 전쟁 자체가 '기념'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외에서 20년 넘게 살면서 들어온 remembrance는 '위로+기억하다'에 더 가깝게 쓰였기에, 한국어로 '전쟁기념관'의 '기념'도 commemoration과 remembrance를 따로 구분했으면 한다. 물론 기념의 한자어가 commemoration인데 나쁜일이던 좋은일이던 쓸 수 있는단어지만, 그저 기억remember한다는 기억관(?)같은 다른 대체단어가 있지 않을까 싶다.
피터 줌터는 이런 기존의 건물과 교회의 잔해위로 블록을 쌓아가며 그의 작품을 완성했다. 저 블록들 사이로 들어오는 빛은 별빛처럼 반짝인다. 낮에도 밤에도 각기 다른 색으로 반짝이며 폐허가 된 아래의 교회터를 아름답게 꾸며주며 위로를 주는 동시에 엄숙함을 유지한다. 왼쪽에 나온 문과 짙은 석재 부분은 고트프리드의 예배당이다. 문고리도 문의 일부이다. 물로 오랜세월 침식하여 구멍이 생긴듯이 문고리가 존재한다. 보통 문에 문고리, 손잡이를 붙이는데, 여기선 그것이 문의 재료인 돌과 함께 존재한다는 말이 어울릴 지경이다.
신+구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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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름 도서관 Ulm Central Library, 2011

마르크트 광장에 구 시청사와 함께 있는 거대한 유리피라미드 도서관이다. 전체가 유리이고 피라미드라서 도시맥락에서 꽤나 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화가 이루어진다. 피라미드의 각도를 주변의 지붕과 같게 하고 아래의 사각형 부분의 높이가 옆의 건물의 지붕이 시작하는 지점과 열을 맞추어서 주변건물과 재료와 색감은 다르지만 형태적으로 인위적이진 않게 느껴진다. 

꽤나 인상적인 나선형 계단과 엘리베이터 코어. 외관에서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서프라이즈이다. 마치 척추처럼 피라미드 중심에서 동선을 해결하며 내부에 확 트인 아트리움atrium을 만들어 다소 두꺼운 볼륨의 건물에 생기를 넣어준다.

 

"건축의 미래는 우리 도시와 마을에 생명과 질서를 되살리는 것 만큼 풍경을 계속 채우는데 그리 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뵘의 이름은 산살바도르San Salvador 대성당 국제현상안 (1953년) 자료가 퍼져나가며 국제적으로 이름을 더욱 알리게 되었다. 한국 교회건축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한국 베네딕트 수도회의 독일인 신부 알빈 슈미트Alwin Schmidt는 20년간 한국 내 120여개의 성당과 카톨릭관련 시설 180여곳을 설계함으로서 당시 독일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현대 종교시설 건축언어에 혁신적인 개념을 국내에 들여왔다. 물론 그 중심에는 고트프리드 뵘의 건축언어가 녹아들어 있었다. 

한국 이곳저곳에 있는 '왜관성당' - 이건 칠곡군에 있는 성당이다.
고트프리드 뵘의 영향을 받은 슈미트 신부가 한국의 성당과 교회건물을 설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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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품 하나 더 소개하고 그의 세 아들의 작품을 잠시 보면서 현재 Bohm 집안의 건축을 알아보자.

독일 포츠담의 한스오토극장 Hans Otto Theater, Potsdam, 2016

아니 유리피라미드 도서관에 이어서 이번에는 마치 흩날리는 꽃잎같은 극장이 출현했다. 50년간의 콘크리트 양감 작업에서 벗어나 2000년대에 들어 아들들과 작업을 하며 형태와 기능의 조합, 앞서 언급한 다방면에서의 연결성 'connectivity'을 통한 새로운 언어의 창조라는 면에서는 맥락이 유지는 된다. 그런데 이런게 고트프리드였나 싶은 마음은 들면서 조금 더 볼륨이 강했던 volumetric한 그의 시그니처 작업이 그리워진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조개껍질 같은 지붕이 붉은 꽃잎으로 변하면 이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확실하게 포스트-바우하우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적 작업으로 넘어가는 듯하다. 특히 셋째 피터의 설계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부격인 마이클 그레이브스Michael Graves나 존 헤이덕John Hejduk같은데, 아마 피터도 이 극장설계에 동참되며 여러가지 실험이 뵘 집안에서 있었던 듯...

고트프리드의 스케치. 그래도 공간을 상상하고 구현하는 방법이 예전과 비슷한 것은 이 그림에서 보인다. 적절한 기능과 표현, 볼륨이 만들어내는 빛의 표현 등.

 

이제 마지막으로 이전에 언급한 그의 4대 건축집안을 들여다보겠다. 친할아버지와 교회건축으로 이름을 날렸던 아버지에 이어서 그는 슬하에 4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이 중 3명은 모두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독일 건축가들이고, 각자의 오피스를 가지며 몇몇 프로젝트를 위해 합사를 종종한다. 물론 아버지인 고트프리드도 2021년 1월에 100세가 되었는데 여전히 아들들의 설계안 발표를 들으며 건축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정말이지 대단한 가족이다. 나이순으로 스테판 뵘Stephan Böhm (1950~), 피터 뵘Peter Böhm (1954~) 그리고 폴 뵘Paul Böhm (1959~)이 아버지를 자문위원처럼 찾아가며 독자적으로 건축을 하고 있고, 그리고 유일하게 건축가가 아닌 둘째 마르쿠스 뵘Markus Böhm (1953~)이 있다. 그렇지만 마르쿠스는 형제들과 아버지의 건축물을 다수 그림으로 남기고, 몇몇 교회 내부에 벽화도 그린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스테판, 폴, 고트프리드, 그리고 피터

글을 끝내기 전에 고트프리드가 과연 3명의 아들들에게도 그의 건축관이 전수되고 진화되었는지 잠시 살펴보자. 아쉽게도 영문으로도 자료가 많이 번역되지 않아서 독어로 짤게 읽어가며 몇 가지만 올려보겠다. 막내인 폴 뵘만 대외적 활동이 많았는지, 아버지 고트프리드처럼 그의 이름 자체로 책이 여러권 영문으로 출간되어있다. 4명이 합작한 대다수의 작품이 특이하게 폴의 이름으로 많이 등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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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첫째인 스테판 뵘의 작품이다.

독일 쾰른에 있는 소방관 트레이닝센터 Schulungszentrum Berufsfeuerwehr, Köln 2005

독일에 있는 2000년대 공공기관치고는 꽤 실험적인 파사드이다. 필자도 독일에서 건물 설계하고 지어진 것이 있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것이 독일은 생각보다 너무 실험적인 건물을 굳이 주택이나 관공서 건물에 하지는 않으려 한다는 거다. 대신 단조로워보이는 건물에 작은 디테일들이 엄청난 기술력과 예술성을 표현한다. 그런 독일에서 공공기관 파사드를 이렇게 재밌게 표현한 스테판도 재미난 사무실을 가졌을 거라고 상상된다.

자연생태과학관 Biosphärenhaus, 2001

고트프리드가 90년대 말쯤 포스트모더니즘적 실험을 몇 가지 하며 지금도 유리와 철강에 비중을 크게 두는데 그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 태양광전지판PV을 아예 스포츠머리처럼 바짝 세워서 지붕이 마치 날아가기라도 할 것 같다. 유리 큐브는 싱그러운 녹색이 내부에서부터 빛을 발아며 식물원같은 환경이 안에 있음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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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인 피터의 작품.

Philosophical Seminar, Munster, 2017

꽤 최근인 2017년에 완공된 독일 뮌스터의 철학관이다. 미니멀한 언어같지만 자세히보면 블록쌓는 방식도 다양하고 내외부의 경계가 블렌딩되어있다. 마치 모더니즘에서의 건축적 산책architectural promenade가 차용된 것일 수도 있겠다. 4명 중에 가장 절제된 건축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몇몇 작품은 약간 루이스칸Louis Kahn 같기도 하다.

St. Pius, Hohenstein, 1998

성피우스 성당. 외부에서는 마치 두툼한 철제판인가. 자세히보니 속은 비어있으니 얇은 철판인가 싶다. 외부의 저렇게 녹슨듯한 콘크리트처리와 내부에는 정렬된 석재패널들이 만들어내는 안정감. 그리고 대칭으로 들여치는 빛과 원으로 뚫어낸 중앙 보이드에 놓인 재단. 마치 정신수련을 하는 곳처럼 집중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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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막내인 폴 뵘의 작품인데 대부분 형제들과 아버지가 합작을 한 것들이다.

(그 중 하나인 한스오토극장 Hans Otto Theater은 위에서 이미 언급했다.)

쾰른 모스크, Koln Mosque, 2017

막내라서 그런가. 굉장히 과감한 표현력이다. 그리고 지금의 폴을 국제적으로 알려준 대표작이기도 한  모스크인데 그의 이름으로 나온 책 'Paul Bohm'의 표지이기도 하다. 물론이 이 작업은 그가 대표로 이끌었지만 형들과 아버지가 물심양면 도왔다고 한다. 쾰른하면 여행자 대부분 '쾰른 대성당'을 바로 떠올리며 그 거대함을 상상한다. 그런 쾰른에 또 다른 종교, 이슬람의 '대'모스크가 나타났다. 그것도 아주 30세기쯤에서 옷깃을 단단히 세우고 날아온 트랜스포머처럼 말이다.

중간이 생각보다 훨씬 유리 표면이 많아서 놀랍다. 정말 얇게 뜬 콘크리트 쉘shell이 중력을 무시한 듯, 마치 계란껍질이 서있듯 저 넓은 얘배당을 커버한다. 이는 콘크리트를 평생 연구한 고트프리드의 지적재산이 아들 폴에게 잘 전수된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아예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4명의 뵘 가문 건축가들. 그리고 고트프리드의 아버지이자 폴, 스테판, 피터의 할아버지인 도미니쿠스 뵘Dominikus Böhm도 회상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그들이 콘크리트를 얼마나 잘 사용했는지, 그리고 다른 재료와의 융합으로 인해 다양한 건축적 시도를 해왔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 건축학도라면 한 번쯤은 꼭 봐야할.영화이다.
100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3명의 든든한 건축가 아들들과 작업을 하며 여생을 보내는 마스터이신 고트프리드 뵘에 대한 설명은 여기까지 하겠다.

이미지 출처: Archidaily, Divisare, Dezeen 그리고 Wiki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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