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포스팅까지 건축가 얼굴리스트는 마지막에 넣어서 그 다음 건축가를 소개하며 넘기는 식으로 했으나, 이번부터 현재 소개하는 건축가는 어디쯤에 있는지 알려주기 위해 글 처음으로 바꾸었다. 프리츠커상 수상자 전체리스트는 여기에서 볼수 있다. 앞으로 2020년, 그리고 조만간 2021년 봄에 공개될 2021년 수상 건축가까지 30명도 넘게 남았다. 실은 현역에 있는 건축가로 건축역사를 공부했어도 이들의 작품을 전부 다 기억하기도 힘들어 가끔 이렇게 되뇌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럼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 시리즈의 7번째,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획을 그은 오스트리아 출신 건축가 한스 홀라인Hans Hollein에 대해 알아보겠다. (그 다음은 고트프리드 봄Gottfried Böhm)
홀라인은 1934년 빈Wien에서 태어나 비엔나미술대학Academy of Fine Arts Vienna를 졸업했다. 1959년 미국 시카고로 건너가 일리노이공대IIT를 1년만 다니고 곧바로 UC버클리로 편입하여 건축학 석사를 취득했다. 이렇게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그는 미스Mies와 프랭크로이드라이트Frank Lloyd Wright, 그리고 노이트라Richard Neutra를 만나는데, 이들은 그의 젊은 시절 모더니즘에서 기본기를 다진 후 그만의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건너가는데 영향을 끼친다. 잠시 미국과 스웨덴에서 실무를 익히고 1963년 그는 빈으로 돌아가 유토피아적 건축을 테마로 한 'Architecture' 전시에 참가하고 이듬해 1964년, 30세 나이에 그의 사무실을 열었다. 처음의 작품들은 작은 스케일의 각종 매장showroom을 설계했는데, 이때부터 이미 그의 특징인 미디어, 차용, 스펙터클을 사용한 포스트모더니즘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특히 초기작인 레티 양초샵Retti Candle Shop은 우주선이 착륙했다는 말이 나오게 만든 눈에 띄는 알루미늄 입면과, 예나 지금이나 흔하지는 않은 초현실적 디스플레이 내부공간은 그를 'master of showroom'이란 별칭을 얻게 하였다. 지금봐도 세련되고 굉장히 독특해서 22세기형 전시공간 겸 매장같다.
아주 과감한 외관이다. 알루미늄 시트로 전면을 씌우고 접어가며 마치 거대해진 열쇠구멍이나 미지의 세계에서 온 기계같다. 가게 양 옆으로는 평범한 쇼윈도우와 로마네스크 입면이 보인다. 단연 눈에 확 띈다. 이 가게 디자인으로 레이놀즈기념상Reynolds Memorial Award를 수상하며 이름이 빠르게 알려졌다.
매장은 45도, 90도 축으로 돌아간 2개의 큐브공간, 쇼룸과 판매구역이 겹치는 것으로 구획되며 각 모서리는 모따기chamfer 처리되어있다. 서로 비스듬히 마주보는 거울로 인해 공간이 다각도로 무한확장되며 극적인 디스플레이 조명과 함께 강한 시각적 자극과 초현실적 공간경험을 야기한다. 요즘 주변의 평론가들은 프리츠커상을 받은 홀라인은 포스트모던적 파스티슈pastiche보다는 이런 초기작이 보여준 그의 공간 큐레이션 능력이 재조명되어야 한다고 종종 말한다. 외관이 그의 기계적 환상을 반영한다면 내부는 성례적이고 특정기능을 표현하지 않는 순수한 "return to architecture"를 말한다고 홀라인은 설명한다. 즉 매장의 경영, 자본주의, 구조적 실용주의 등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어떤 공간을 만들고 느끼는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다. (*Pastiche는 혼성 또는 합성 작품을 의미한다. 넓은 의미에서 차용appropriation과 패러디parody도 포함하여 이해하시면 된다.)
이 하나의 매장 디자인으로 이름이 크게 알려진 홀라인에게 저명한 갤러리스트 리차드 페이겐Richard Feigen이 뉴욕 어퍼이스트에 위치한 자신의 갤러리 설계를 의뢰한다. 페이겐은 당시 건축과 미술계의 거장들인 벅민스터풀러Buckminster Fuller, 프레이오토Frei Otto, 클래스올덴버그Claes Oldenburg 등과 함께 <Visionary Architecture> 전시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1887년 이 저택 바닥 2개층과 장식이 없는 규칙적인 흰색 회반죽 외관을 보았을 때 홀라인은 즉시 18피트(약5.5미터) 높이의 반짝이는 이중곡선 크롬 기둥을 생각했다고 한다. 이 기둥은 일본의 장인 미노루 야마사키Minoru Yamasaki가 손으로 일일이 광택을 내어 완성했다. 번쩍이는 이중 크롬 기둥이 처마soffit안쪽도 아니고 약간 오프셋offset되어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붙어있는데, 이 밋밋한 하얀 스타코stucco 외관에서 단연 눈에 들어온다.
그 다음으로는 슐린 보석상Schullin Jewelry Shop 1호과 2호점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아래의 슬로건은 홀라인이 이쯤부터 자주 써온 말들이다. 20세기 초 빈 분리파Wien Secession 모더니즘의 Ornament is Crime으로 유명한 아돌프 로스Adolf Loos와 정확히 반대의 개념이다. 홀라인과 같은 오스트리아 건축가인데, 오로지 한 세대를 거치며 180도로 뒤바뀐 건축계의 생각이다. 로스가 타계한 것은 1933년, 홀라인은 이듬해 1934년에 출생한 것을 보면 우연치고는 굉장히 놀랍다.
"Ornament is no crime"
"Everything is architecture"
화강암 외벽을 아래로 가로지르는 금빛 틈fissure은 녹인 금속을 틀에 맟추어 제작하고 도금한 것이다. 이는 홀라인의 조형적 그리고 기술적 실험성을 보여주는데, 특히 쏟아져 나오는 듯한 저 파이프들은 환기구이다. 환기구마저 보석의 원석처럼 표현하며 건축의 기능과 조형적 언어의 조화를 이루려했다.
1호점과는 조금 더 정제된 느낌이다. 당시 오스트리아 모더니즘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아우르는 디테일이 모두 녹아들어 있는 명작으로 꼽히며 프리츠커상 수상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벨베데르의 장식부터 아르누보, 표현주의, 빈 분리파 운동의 디테일들이 다 버무려져 익숙한 무언가 싶다가도 새로운 발명으로 보이는 묘미가 느껴진다.
두 개의 슐린 보석상의 입면을 보면 홀라인을 '미디어의 설계자'라고 종종 부르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A building can become entirely information”
건물은 모두 정보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그는 이제 시대는 여러 정보전달 매채에서 모든 것을 경험하듯 건물도 그러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정보로서 들어오는 것에서 아크로폴리스나 피라미드의 물리적 존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이미 매체를 통하여 그것들이 실재한다고 알고는 있다. 건물은 어떤 정보를 지나가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우리는 그것에 반응하여 그 다음 행동을 결정한다. 그것에 들어가야 하는지, 아닌지. 아니면 필요치는 않지만 들어는 가고 싶은지. 정보를 제공하면서 일종의 밀당을 하는데, 도시의 모든 입면은 실은 그러한 관계를 우리와 가진다. 이 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미국의 건축가 벤츄리의 '오리'와 함께 더 설명하겠다.
그 외 다른 매장 인테리어 이미지 몇장 추가:
1980년 홀라인은 베니스 건축비엔날레에 출품했다. The Presence of the Past 파사드 작품인데 이것으로 당시 마이클 그레이브스, 제임스 스털링 등과 함께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주자로 등극하는 계기가 된다. "모든 것은 살아있다"라는 테마를 가진 작품이다. 곧 그의 '모든 것은 건축이다'의 시작이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어디서 어떻게 왜 오는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그것은 건축에서 모더니즘의 유토피아적 비전을 고수하는 것을 깨뜨리는 방식인가? 한편 고조된 역사주의나 자기인식이 뚜렷한 시각적 스타일style일 뿐인가? 모더니즘은 20세기의 트라우마를 빨리 제거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모더니티modernity는 너무 "진보"를 신격화 하였고 더 빠르고 더 효율이 높고 더 아름답고 풍요로운 유토피아를 약속하였다. 그의 작품과 당시 비엔날레는 포스트모더니즘이 권위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되었지만 해체하고 싶은 그 생각 자체에 휩싸였다고 주장한다. 아방가르드와 키치를 구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예술이 무엇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인가. 홀라인은 과거의 존재, 건축 역사의 인용을 통해 모더니즘 자체가 부족했던 과거에 대한 엘레지아적 감각 'elegiac sense of the past'을 보여주려 했다고 한다.
이제 좀 스케일이 큰 프로젝트를 살펴보겠다. 1972년에 묀헨글라트바흐 아프타이베르크 미술관Monchengladbach Abteiberg Museum 국제현상공모에 당선하며 그는 작은 스케일에서 벗어나 아주 거대규모의 건축에 손을 대며 대중적으로도 크게 알려진다. 이후 작품들은 미술관부터 관공서, 백화점 등 규모가 매우 크다. 이 곳은 1982년에 완공되었다.
아프타이베르크 미술관은 예술과 건축, 자연이 조화를 이룬 미술관으로 1983년 독일 최고의 건축상을 수상했다.
아연판과 대리석, 콘크리트, 전면유리 등 서로 다른 재질의 입면을 한 작품에서 다양하게 보여주는데 홀라인도 자신이 만들었지만 참 예술작품같다고 자화자찬할 정도로 직선과 곡선, 자연과 인공적 느낌이 공존하는 대작 중 하나이다. 슐린 보석상과 더불어 이 미술관도 프리츠커상 수상에 기여를 가장 많이 한 홀라인의 작품이다.
그 다음으로는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 Frankfurt Museum für Moderne Kunst (MMK)을 살펴보자. (참고로 모든 미술관은 나중에 [미술 건축 여행] 시리즈로 각각의 미술관 방문기를 올릴 예정이다. 현재는 네덜란드 미술관들을 연재 중이다.)
뾰족한 삼각형 모양의 건물. 치즈케잌 조각이란 별명으로 유명하다. 밖에서 보면 삼각형 지오메트리geometry가 강한데 내부에서는 오히려 둥근 원형의 천창, 중정, 이음공간 등으로 둥글둥글한 공간으로 연출되는 특이하면서도 구현하기 까다로운 방식을 선택하였다. 그는 이런 원형의 공간이 다소 까다로운 삼각형 대지에 구획될 전시관 공간들을 부드럽게 연결해주며 다양한 전시를 수용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난감할 수 있는 좁고 긴 도시의 블록을 잘 이용한 참 기발한 아이디어이다.
다소 최신작, 빈에 있는 저명한 미술재단 Albertina의 증축설계 (2001-2003)이다. 특히 길 위로 길쭉하게 튀어나온 캐노피canopy가 눈에 확 띈다. 지나가다가 몰라도 저 건물은 뭐하는데일까?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홀라인은 우리에게 좋은 의미로 시각적 충격을 계속 안겨준다.
그의 건축물 마지막으로 필자의 취향은 전혀 아니지만 워낙에 잘 알려진 홀라인의 작품이라 하나 더 올려본다. 하스하우스Haas Haus 1982년 완공되었다. 고급주상복합 목적으로 설계되었으며
끝으로 그가 얼마나 다방면으로 그만의 세계관을 구축했는지 보여주는 가구와 장신구, 제품 디자인을 소개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주자, 한스 홀라인에 대한 글을 마친다.
한스홀라인의 웹사이트. 사후에도 계속 운영이 된다. 역시 사람은 이름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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