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2020년 현재까지 43명의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 중 6번째, '백색건축가'로 잘 알려진 리차드 마이어에 대해서 탐구해본다. 그가 설계한 거의 모든 건물이 흰색이고, 고로 빛의 명암에 굉장히 민감하며 대지와 건물의 '축'을 찾아 정확한 동선의 체계와 공간구성을 연출했다. 엄청 튀지는 않으면서도 고귀한 느낌이 나서 건축주도 그를 계속찾는 소위 마니아 층이 두텁다. 그래서 많은 미술관, 박물관, 관공서는 물론 다수의 개인 집/별장도 꽤나 설계하였다.
그는 1934년 10월 12일 미국 뉴저지주 뉴워크Newark에서 유대인 부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뉴욕 근교의 메이플우드에서 자랐고, 1957년 코넬대학교에서 건축학 학사B.Arch를 취득하였다. 졸업 후 그는 유럽을 여행하며 많은 건축가들을 만나고 연을 맺었다. 참고로 그는 또 다른 유명한 건축가이자 건축이론가,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과 사촌지간이다.
1959년 뉴욕에서 잠시 SOM을 다니고 곧 3년간 마르셀 브루어Marcel Breuer의 아래에서 사사했다. 1963년 그의 오피스를 열고, 1972년 그는 피터아이젠만과 마이클 그레이브스Michael Graves, 찰스 과스메이Charles Gwathmey, 존 헤이덕John Hejduk과 함께 뉴욕파이브New York Five의 그룹으로 불렸다. 이 뉴욕파이브는 1969년 모마에서 건축 전시회를 크게 열면서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이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건축언어를 구축하며 각자의 길을 걷는다. 그 당시 젊었던 시절 그는 프랭크 스텔라같은 미술작가들과 교류를 활발히하며 기하학적이고 단색적인 구성을 익히며 그의 건축언어로 옮겨지게 된다.
아래에 살펴볼 그의 작업에서 볼 수 있듯 그는 르코르뷔제Le Corbusier와 알바 알토Alvar Aalto의 영향으로 명료하면서도 복합적이고, 실용적이며 절제된 시적인 공간을 추구한다. 그는 평면이나 형태를 디자인하는데 있어 기하학에 기반을 두고 복잡하지 않게 동선을 그린다. 근본적인 관심사 중 하나인 빛은 공간경험을 극대화하는 중요한 요소로 단순하면서도 작은 디테일들이 있는 매싱massing에서 떨어지는 빛과 그림자는 그의 백색표면에서 명쾌하게 그려진다. 그의 초기작으로는 인디애나주의 아테네움The Atheneum증축 (1979)과 애틀란타 시의 하이미술관High Mseum of Art (1983)이 있다.
"내가 코르뷔제의 작품을 모르고 애정이 없었다면 나의 건축물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가 공간을 창조하는 방식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지금까지 다작을 하였지만 그중에서 가장 그를 전세계에 잘 알린 것은 로스앤젤레스 북쪽에 위치한 게티센터 (1997)이다. 석유재벌인 폴 게티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기부금으로 지어진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공연장, 정원 등으로 이루어진 이 캠퍼스는 마이어의 인생을 뒤바꾼 가장 큰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원형 중앙 정원을 중심으로 백색 대리석으로 지어진 6개의 건물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결국 하나의 컴플렉스complex를 형성한다. 이 곳을 위해 설계와 시공이 총 14년이 걸렸고 공사비만 1조원이 넘게 들었으니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야 했는지 짐작이 간다.
필자는 앞에만 보고 늦어버리는 바람에 내부는 보지못했지만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Barcelona Museum of Contemporary Art (MACBA)와 비버리힐스 페일리미디어센터 Paley Center for Media 등도 그의 건축언어를 잘 나타내는 미술관이다.
또 다른 마이어의 역작으로 손꼽히는 건물은 바로 주빌리 교회Church of the Jubilee이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즉위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탈리아 로마에 지어진 이 교회의 특징은 세겹으로 덧대어진 커브벽curved wall이다. 언뜻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조개껍질의 일부가 3단으로 있는 것 같다.
3개의 오목한 콘크리트 외벽은 성부, 성자, 성령을 암시하며 기울어진 벽 사이로 수직적이고 역동적인 공간이 확보되며 비대칭인 전체적 구성에 안정감을 준다. 둥근기둥사이 차운이 비스듬히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빛을 내부로 들이기 위해 설치된 것이다. 한편 앞쪽과 곡면 사이사이는 높은 채광창과 전면유리창은 외벽을 연결하며 빛이 다각도로 들어올 수 있는 향연을 완성해낸다.
"백색은 자연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색을 인지할 수 있도록 명암을 강화시켜주는 색이다. 다른 색들이 진가를 발휘하는 어떤 환경에서, 백색은 그 자체로 절대성을 유지한다. 이는 내 작품의 특징 중 하나로, 시각적 형태를 강조하고 건축개념을 명백화 하기위해 사용한다."
스케일을 줄여서 이번엔 주택을 보자면 아무래도 그가 부모님을 위해 설계한 Smith House가 그를 초기에 유명하게 만들어 주었다. "출입구에서 해변쪽으로 내려감에 따라 전진하는 느낌을 주는 질서정연한 켜가 있다" "전진하는 선은 중요한 대지 축을 결정한다. 이 축에 수직으로 교차하는 면들은 경사, 나무, 암석 및 해변의 리듬에 반응한다"라고 그는 설명하였다.
입구쪽과 해변쪽의 입면이 아주 다르다. 사적공간과 공적공간을 분리하여 침실이나 욕실 등은 몇 그루의 상록수가 심어져 있는 북쪽의 지면을 향하고, 거실과 식당은 해변을 바라보는 남쪽을 향한다. 북쪽은 흰 나무재질의 vertical wood siding을 사용하여 깔끔하고 단순하며, 남쪽은 전면유리를 많이 활용하여 구조와 넓은 빈 공간void는 태양빛이 물과 대지에 반사되어 하얀 내부로 뻗어들어와 시간별로 다양한 색감을 준다. 벽을 '통과하여' 집에 들어오면 복도로 연결되며 넓은 빛의 공간과 그 앞으로 들어오는 해변의 소리와 녹지의 싱그러움. 매번 집에 오는 것이 즐거울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작업을 해온 마이어는 1977년에 하버드 건축과 객원교수로도 활동하며 학생들을 가르쳤고 1984년 프리츠커상, 1989년 영국건축협회 골드메달 Royal Gold Metal을 1997년 미국건축협회 골드메달AIA Gold Metal을 수상하며 단연 20세기 말을 화려하게 장식한 건축가로 손꼽히게된다. 1997년부터는 Cooper Union, Princeton University, Pratt Institute, Harvard GSD, Yale School of Architecture, UCLA등 학계에서도 많은 부름을 받게 되었다.
2018년 3월 13일, 그의 오피스에서 성희롱 사건이 불거지며 결국 10월에 그는 대표자리에서 사임되였지만, 그의 사무실은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 소재하고 있고 여전히 많은 작품을 진행 중이다. 딱히 말년이 좋지는 못하지만 어쨋든 그는 건축역사에 한 획을 그은 건축가로 자리한다. 실은 지금도 남성중심의 필드인 건축바닥에 있다보면 성희롱, 성차별적 발언은 종종 듣게되는데, 젊은 건축가인 나로서도 굉장히 불쾌한 것은 사실이다. 아직도 그 악습이 자행되는 것은 최근 사건으로인해 미국건축가협회 및 다수의 재단에서 적극 나서서 시정을 하는 중이니 조만간 이런 불미스러운 일은 없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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