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산책 중인 노마드

Art, Architecture, Travel & Life

건축 Architecture/건축가 Architect

[Architect] 이오 밍 페이 Ieoh Ming Pei

Brett D.H. Lee 2020. 12. 26. 17:33
728x90

루브르에서 이오 밍 페이

이번엔 5대 프리츠커상 수상자이자 프랑스 루브르의 유리피라미드를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중국계 미국건축가 이오 밍 페이Ieoh Ming Pei (I.M.Pei)에 대해 알아보자.

 

1917년 중국 광저우에서 (매우)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난 페이는 상하이에서 청소년기를 보낼 당시 상하이의 건축붐을 직접 보고 느끼며 건축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종종 페이가 미국에서 태어난 화교라고 하는 글이 있는데, 그는 어린시절은 전부 중국에서 생활을 하였고 1935년에서야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 1.5세대이다. 잠시 펜실베니아대학(유펜)을 다니다가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으로 편입하여 1940년에 건축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46년 하버드 디자인대학원(GSD)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는데 바우하우스Bauhaus 초대 교장이었던 독일의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에게 직접 배우면서 기능적이고 간결한 조형미를 추구한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곧 이는 그의 건축이 기하학적 형상을 추구하며 기능주의를 통합한 모더니즘의 정수가 되는 기반이 된다. 특히 미스Mies의 Less is More를 가장 독특하게 자신만의 해석으로 풀어낸 모더니즘의 마지막 주자라 할 수 있다.

젊은 시절의 I.M.Pei

1948년 뉴욕의 부동산 재벌인 윌리엄 제켄도프William Zeckendorf 와의 인연으로 그의 회사 Webband Knapp에서 대규모 건축설계와 도시계획 실무를 익혔다. 1955년 자신의 건축회사인 ‘I. M. 페이 & 파트너스’를 개업하는데 이미 막강한 인맥과 재력을 가진 그의 집안 배경과 제켄도프의 지지 덕분에 화려하게 건축계에 대뷔한다. 중국이민자가 대표로 있는 회사가 거대한 프로젝트를 연달아 계속 하는 것은 지금도 실은 뉴욕바닥에서 이루기 힘든 것이다. 1960년대에 들어서며 뉴욕 킵스 베이 플라자Kips Bay Plaza, 필라델피아 소사이어티 힐 타워, 뉴욕 실버 타워 등을 맡으며 이름을 알렸다. 특히 제켄도프는 개인이 믿어서 페이에게 일을 몰아준 것이지만, 1960년 보스턴 JFK추념도서관 설계는 미국 정부가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 건축가에게 나라를 상징하는 건물을  맡긴 이례적 사건이었다. 페이의 역량이 60년대에 엄청나게 물이 올랐음을 알 수 있다. 이 도서관은 당시 센세이션을 몰고 오며 미국건축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페이의 설계안을 검토 중인 제켄도프
페이는 제켄도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당시 백인남성의 세계였던 서양건축사에서 스타로 도약할 기반을 마련한다.
제켄도프의 회사에서 진행했던 킵스베이 플라자. 현재도 아파트로 사용 중이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소사이어티 힐스 콘도. 지금도 쓰이긴 하는데 인기는 없다. 아주 낡은 아파트... 아직은 국제양식과 모더니즘의 기능주의에 있는 페이. 이후 나오는 프로젝트부터는 그가 회사를 차리고 독자적인 스타일을 서서히 구축해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JFK Library (1960). 페이가 회사를 설립하고 설계한 첫 작품 중 하나.
도면을 보면 그의 기하학적 공간구성이 더욱 명쾌하게 드러난다.
입구쪽에서. 마치 블랙박스 혹 보석이 날라와 앉은 듯하다. 

 

그리고 마침내 1979년,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펼치면서 드디어 페이가 모국의 부름을 받게된다. 중국정부는 그에게 샹산호텔Xiangshan Hotel의 디자인을 맡기게 되는데 그는 “민족적인 것일수록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남기며 베이징, 항저우, 쑤저우, 광저우 등 중국 전국을 돌며 중국 전통에서 영감을 찾는다. 결국 그는 동양건축의 정수는 불규칙성irregularity에서 드러나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런 요소를 샹산호텔에 적극 차용한다. 이는 지금도 ‘중국건축예술의 정수’라고 불리며 얼마나 페이가 시대를 아우르고 앞서갔는지 알 수 있다. 페이를 그저 국제양식이나 낭만적 기술주의에 국한된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건축가로만 알고 정형화하여 분류하면 안되는 사례이다. 각 지역의 문화, 역사, 삶의 모든 것을 공부하고 모더니즘의 틀 안에서도 어떻게 보면 지역주의가 가미된 건축언어를 구축한다. 이후 프랑스의 루브르, 쑤저우 박물관, 이슬람예술박물관 등에서 그의 기하학적 건축언어속에서 지역주의가 녹아듬을 볼 수 있다.

샹산호텔의 로비 및 중정Atrium
중국의 샹산호텔 Xiangshan Hotel
워싱턴 국립미술관 서관 Washington National Gallery of Art West Wing (1941년에 개관)
도면 스케치. 보다시피 기본 도형들이 역시 자리한다.
동관 (신관)의 내부

1984년 프랑스 대통령 미테랑이 직접 페이에게 루브르와 나폴레옹 광장의 리모델링을 의뢰한다. 그리고 드디어 그 유명한 유리 피라미드가 설계안으로 당선되었다. 당시 시민들은 물론 많은 유럽정치인들도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는데, 일단 아무 연고도 없는 중국계 미국인이 유럽문화의 중심 중 하나인 루브르의 심장부를 난도질 했다는 것과 이집트에선 무덤인 피라미드 형태가 왠말이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루브르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페이의 유리피라미드는 완공되었고 (1988년) 특수 제작된 유리로 빛을 반사하지않고 투과하여 지하에 있는 메인 로비공간이 밝게 유지한다. 이 곳은 기존 입구가 처리할 수 없었던 입장객 수를 분산시키는 아주 중요한 건축적 동선설계인 것이다. 디자인 역사가인 마크 핌토르는 Mark Pimlott는"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중앙 출입로에서 광대한 지하 로비로 안내함으로서 다양한 이유로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한 사람들의 발걸음을 분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설계되었다. 루브르 피라미드의 거대한 골격 구성은 고대 폼페이의 저택에 있던 안마당을 연상시킨다. 공학적 주물과 케이블로 처리된 개구부는 회사 사무실 건물의 안마당을 연상시키고 여러 방향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인 철도 터미널이나 국제공항의 중앙 홀을 암시한다"라고 써내렸다. (참고로 완공 1년후 1989년에 개장되었다.)

또한 반사율이 높은 유리를 써서 피라미드 도형 자체의 체적을 느끼게 하는 케빈로시Kevin Roche의 피라미드와는 다르게 페이의 피라미드는 투명하여 피라미드의 기울기에 따른 다이아몬드 그리드 구조를 드러내며 유리와 철골구조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며 기하학적  미를 극대화한다. 혹 뉴욕 5번가의 접합점 자체도 안 보일 정도의 완전 투명한 유리박스 애플스토어를 만들며 지금의 "애플스토어 스타일" 건축을 정립한 보린키윈스키잭슨 Bohlin Cywinski Jackson(BCJ)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유리를 사용한 언어와 비슷하다. 

유리와 구조의 아름다움이 여실히 드러나는 페이의 glass pyramid

그 다음으로는 홍콩의 중국은행타워Bank of China Tower Hong Kong (1989)는 노먼포스터의 홍콩상하이은행타워HSBC Tower와 함께 홍콩 스카이라인을 담당하는 가장 유명한 초고층빌딩이다. 홍콩영화, 매거진, 광고 등 많은 매체에서 배경으로 쓰는 홍콩섬의 스카이라인. 건축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아 이 건물!'하며 한 번은 봤을, 또 기억할 건물이다.

중국은행타워Bank of China Tower Hong Kong (1989)

1989년 페이의 회사에 두 명의 새로운 파트너가 영입되며 페이콥프리드 Pei Cobb Freed & Partners라고 명칭이 바뀐다. 1990년부터는 대표건축사 자리는 내려놓고 그가 하고싶은 프로젝트를 주로 맡아하며 모든 건축가들은 한 번쯤 꿈꾸었을 소위 '취미건축'을 하게된다. 그러나 페이가 그렇다고 대충 놀면서 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대표로서 정신없었을 스케쥴을 뒤로하고 기능주의와 낭만주의, 기하학, 기술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모더니즘의 정수를 세상을 떠나는 2019년까지 계속하여 보여주게 된다.

 

그 첫번째로 소개하고픈 것은 1997년 완공한 일본 시가현의 미호미술관Miho Museum이다. 그는 뒤에 나올 중국과 카타르의 미술관처럼 그는 세계 곳곳에 미술관의 설계하는데, 그는 각 지역의 문화에 대해 철저히 연구하기위해 계속 여행을 하였다. 미호미술관은 페이의 다른 유명한 건축물, 특히 미술관 중에는 덜 알려진 편이다. 아마 조금은 덜 화려한 외관이나 작은 규모로 인해 다른 대형프로젝트에 눌린 탓일까. 하지만 루브르에서 보여준 모더니즘의 정수를 일본 특유의 목조건축, 그리고 자연과 어우러진 조경이 융합하여 새로운 건축을 보여주어 꼭 알아두면 좋은 곳이다. '다도'를 좋아한 건축주 코마야미호코는 건물이 한개의 커다란 덩어리가 아니라 자연속 여기저기 흩어져있어 경치를 즐기며 감상이 되도록 원했다. 그리하여 '도원향'이 설계테마가 되는데...

"한 어부가 고기를 잡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올랐더니 물 위로 복숭아 꽃잎이 떠내려오는데 너무나 향기롭기만 하였답니다. 그 향기에 취해서 꽃잎을 따라 올라가보니 커다란 산이 가로막고 있고 양쪽으로 복숭아꽃이 만발하였답니다. 그 길을 걷는데 계곡 밑으로 동굴이 뚫려 있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지더니 확 트인 밝은 세상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곳은 기름진 논과 밭,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볼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들의 미소띤 얼굴과 함께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대접을 받은 후에 다시 이 세상으로 나올때 너무 신기한 나머지 길목마다 표시를 하고 돌아왔으니 다시 찾으려 할때에는 그 표시가 전혀 사라지고 다시는 찾을수 없었다고 합니다."

 

복숭아꽃잎 대신 사쿠라Sakura로 미호뮤지엄을 향하는 길을 표현하고 세상의 빛이 나오기 전에 지나야하는 동굴을 터널로 표현하였다. 그 길을 통과하면 환한 빛이 축복하는 또 다른 세상이 나왔다는게 바로 미호뮤지엄을 의미하며 설계되었다. 이런면에서는 낭만주의와 지역주의가 적절히 버무려진 진행방식이다. 미술관 본관은 '자연과 건축과 미술품',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등의 융합을 테마로 건설하였다. 건축용적의 80% 이상을 땅 속으로 넣고 건물의 상층부에 자연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기하학 문양의 격자 유리 지붕으로 들어오는 밝은 태양 빛은 마치 일본 전통가옥의 느낌마저 준다. 실제 일본 가옥의 구조가 어떻게 엮이는지 꼼꼼히 공부하여 지붕전체가 창이 되는 천창구조를 만들어냈다.

사쿠라의 터널을 통과하면 빛, 미호미술관이 나타난다.
이렇게 나타난다. 마치 큰 저택같기도한 입구
지붕구조와 재료를 보라!

 

2000년대의 작품으로는 쑤저우박물관 Suzhou Museum (2006).

쑤저우 전통 정자의 건축양식과 자연소재를 적절하게 살리면서 현대적,기하학적으로 마무리한 형태가 흥미롭다. 샹산호텔 때 처럼 불규칙성을 가져가며 특히 자연이 있는 중국전통의 안뜰(중정)을 첨부한다. 마치 예전부터 있었던 건물형태인데 뭔가 깨끗하고 더욱 모던한 느낌을 주는 안뜰이다. 

재료나 저 엣지 디테일 처리, 샘각이 모두 중국의 전통건축언어를 현대화하고 세련되게 표현하였다.
미술관의 수경공간과 조경. 전통적인 중국의 안뜰 정원을 재해석하고 저 수석들은 흰벽의 배경과 앞의 잉어가 노니는 연못 전경으로 마치 수묵화의 한 장면을 그려내듯 자리한다.
마치 네덜란드 데스틸과 바실리카 천장의 변형체를 보는 것 같다.
Suzhou Museum (2006)

카타르 도하에 있는 이슬람예술박물관 Museum of Islamic Art, Doha (2008) 설계도 역시 이슬람 문화에 대한 심도있는 공부를 바탕으로 진행하였다. 그는 중동나라들을 방문하며 그들의 문화, 삶, 역사, 건축언어 등을 면밀히 보고, 특히 아라베스크의 기하학을 적극 차용하여 박물관을 설계한다. 특히 단순화하면서 부조relief를 뜨듯 올록볼록한 기하학적 천장은 이슬람문화와 모더니즘의 정신, 그 둘의 미aesthetic이 융합하여 새로 태어난 하이브리드 hybrid 건축이다.

Museum of Islamic Art, Doha (2008)
입구 및 로비
아라베스크의 재해석, 문화와 기술적 융합을 통한 재탄생

보다시피 페이의 초반 작업은 당연히 코르뷔제나 미스 반 데 로에의 영향이 강력했던 시기와 맞물려 유리, 콘크리트, 철골구조가 Skin+Bone타입으로 나타났다. 미국건축의 분위기는 미스의 세상이었다. 하지만 페이는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며 서서히 미스의 그늘에서 벗어나 방금 언급한 3가지 미술관을 통해 스스로 독자적인 양식을 구축해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세계문화를 융합'하고 기능주의보다는 대담한 기하학 곡선, 빛의 속성을 이용한 자연과의 연계이다. 이전에 소개한 케빈 로시Kevin Roche의 건축관 변화와 비슷하다.

 

페이는 1979년 미국건축가협회상, 1983년 프리츠커상 (5대 수상자), 1988년 미국 국가예술훈장, 1989년 프리미엄 임페리얼상, 1992년 미국 대통령 자유 메달, 2010년 영국왕립건축가협회상 등을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졌다. 한편, 재밌는 사실이 그는 대한제국 황실과도 인연이 있는데, 고종의 일곱 번째 아들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아들인 건축가 이구가 그 주인공이다. 이구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 MIT를 졸업하고 페이의 회사에서 근무하던 중 직장 동료였던 독일계 미국인 줄리아 리Julia Lee 만나 결혼했다고 한다.

이구. 조선의 마지막 왕자 중 하나. 이상하게도, 혹 슬프게도 이구를 찾으니 영어로 쳐야 자세히 나오고, 보스턴대학교 자료에서 이미지를 많이 볼 수 있었다.
ㅋ왠지 다시 페이의 사진으로 끝을 맺어야 할 같아서... 아무리봐도 걸작인 루브르 피라미드에서.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 시리즈 

그 다음엔 '백색건축가'라고 불리우는 리차드 마이어Richard Meier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