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ip Cortelyou Johnson 1906 - 2005
필립 존슨의 full name은 Philip Cortelyou Johnson이고 1906년 7월 8일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변호사로 (Homer Johnson) 꽤 유복하게 성장했고 어려서 뉴욕주 해리타운에 위치한 유명고등학교 Hackley School을 마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그리스어, 철학, 역사 등을 전공했다. 대학을 마치고 그는 유럽으로 '그랜드 투어'를 몇 차례 하였는데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건축부터 고딕양식, 코르뷔제를 포함한 다수의 모더니즘 건축을 느끼며 흡수하였다. 1928년에는 당시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을 설계하던 미스 반 데 로에Mies van der Rohe를 만났는데 이 둘은 그 후 각자 인생에서의 중요한 친구가 되었다.
1930년에는 뉴욕 모마 MoMA의 건축부서의 큐레이터로 일을 시작하였고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를 미국으로 초대하고 미국 시장과 학계와도 교류하게 하였으며, 1932년 모마에서 유럽의 <모더니즘 건축전>을 처음 선보였다. 이는 미국에서 아직 보지 못한 '신건축'이었다. 당시 <국제양식: 1922년 이후의 건축>의 책도 발간했다.
이후 2차대전 중에 유럽에서 미스와 그로피우스 등 수많은 인재들이 미국으로 밀려들었는데, 당시 필립 존슨은 이들이 미국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당연히 이로 인해 유럽에서 온 많은 건축가들과 더욱 돈독한 관계를 가지게 되고, 미국 모더니즘의 대부의 기반이 마련된다. 1941년 그는 다시 하버드 디자인대학원 GSD로 입학, 그로피우스와 브로이어Breuer 밑에서 사사했다. 1946년 2차대전에 참전한 이후 그는 다시 모마에 복귀하고 미스의 건축전을 준비하면서 당시 그가 설계 중이었던 판스워스하우스 Farnsworth House도 어깨너머 보게된다. 이 집에서 영감을 얻은 존슨은 자신이 살기위한 주택을 코네티컷의 뉴케이넌에 짓는데, 이것이 모더니즘의 정수 '글래스하우스'Glass House이다. 실은 그는 공사를 무척이나 빠르게 진행하여 판스워스하우스보다 더 빨리 완공하였다. 당연히 미스는 이에 엄청난 분노를 표현하였다. 그 이후 둘의 사이는 서먹했지만, 아래에 나올 시그램빌딩 설계에 미스가 당선되도록 존슨이 도움을 주어 어느정도 사이가 다시 좋아진 듯 하다.
글래스하우스는 처음엔 그냥 주택만 있었지만 어마어마한 유산을 가진 존슨은 차차 주변을 구매하여 조각공원, 조각관, 미술관, 연못, 브릭하우스, 수영장 등 상당한 수준의 뮤지엄이 되었다. 유명 건축가와 예술가 등 저명인사들이 모여드는 사교장으로 사용되었는데, 미스는 아직 화가 안풀려서 이 곳을 그냥 핫도그스탠드 같다고 비아냥거렸다 한다. 아무튼 이곳은 별관의 지하 벙커 미술관 또한 회전식 벽으로 '변화하는' 전시공간을 선보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곳엔 스텔라, 모네 등 유명마스터피스가 전시되어 있다. 이 곳은 단지캠퍼스 전체를 뉴케이넌 시에 기증하며 박물관으로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예약해야 방문가능! 가서 글라스하우스 외 10개의 작은 건축물/파빌리온이 더 있다. theglasshouse.org/explore/ )
1952년 뉴욕 시그램빌딩 설계자로 미스가 선택되었다. 존슨이 화해의 제스쳐로 했는지는 몰라도 그가 친했던 시그램회장의 딸 필리스 램버트를 설득하여 미스가 당선자로 선정되는데 일조했다고 한다. 미스는 그 대가로 시그램 내의 포시즌스 레스토랑 Four Seasons Restaurant를 존슨에게 맏긴다. 시그램은 건축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명작이 된다. 국제양식, SKIN+BONE의 정수이다. 뉴욕에서 연달아 존슨은 모마의 조각중정/공원과 링컨센터의 뉴욕스테이트극장NY State Theater을 설계하며 더더욱 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 이후 너무나 많은 건축물을 완공해서 실은 이 짧은 글에 다 담을수는 없다. 사진으로 몇 가지를 더 소개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위에 언급한 글라스하우스Glass House (1949), AT&T Building (1984), US Bank Building (1987) 등이 있다.
당시에도 사교계에선 다들 알고 있었겠지만, 갑자기 존슨은 1993년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한다. 30살 연하인 미술애호가 데이비드 휘트니 David Whitney가 파트너이다. 2005년 존슨이 사망하고 그해 데이비드도 세상을 떠났다. 진정 사랑이 깊었나 보다. 휘트니의 컬렉션에 대한 글도 나중에 정리해보아야겠다.
그렇게 불타게 사랑도 하고 사교도 하고 설계에 전념을 작고하는 날까지 했던 필립 존슨. 2005년에 돌아가셨으니 상당히 오래 살면서 다작을 하였고, 그는 1978년 AIA 골드메달, 1979년 프리츠커상 초대 수상자였으며, 모더니즘의 대부godfather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미국에서 20세기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건축가로 활동하였다. 그의 두껍고 동그란 뿔테 안경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내가 건축 공부를 할 동안 보았던 그의 모습에서 안경이 없으면 못 알아볼 지경이다.
참고로 미국 시카고에 소재한 하얏트 재단의 오너인 프리츠커 가문이 후원하여 만들어진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 Pritzker Architecture Award'은 매해 생존 건축가에 한하여 지속적으로 훌륭한 건축을 선보여왔고 인류에 기여한 바 있으며, 그 탁월함, 나아갈 방향 등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건축가에게 주어진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필립 존슨 소개는 여기서 마친다.
Epilogue
건축가 시리즈 중 [프리츠커상 수상자]에서 1979년 초대 수상자인 필립 존슨
다음은 색채와 빛의 마술사, 멕시코의 루이스 바라간을 만나보자.
'건축 Architecture > 건축가 Architect' 카테고리의 다른 글
[Architect] 이오 밍 페이 Ieoh Ming Pei (0) | 2020.12.26 |
---|---|
[Architect] 케빈 로시 Kevin Roche (0) | 2020.12.25 |
[Architect] 제임스 스털링 James Stirling (0) | 2020.12.21 |
[Architect] 루이스 바라간 Luis Barragan (0) | 2020.12.21 |
[Architect] Pritzker Prize Laureates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 (0) | 2020.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