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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네덜란드 레이든의 미술관 & 박물관 - Museums in Leiden, Netherlands (1/2)

Brett D.H. Lee 2020. 12. 30.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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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5년 암스테르담에 소재한 건축회사 유엔스튜디오UNStudio에서 1년정도 근무 할 동안 네덜란드 소도시를 27곳을 다녔다. 당시 네덜란드와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은 꼼꼼히 다 알아보고, 유럽에 있는 모든 나라를 가는 나름의 목표가 있었다 (동유럽의 몰도바, 벨라루스, 알바니아를 제외하곤 목표를 이루었다). 정말 꿈같은 생활에서 유독 네덜란드의 소도시들은 뮤지엄들이 만들어낸 분위기로인해 내 기억 깊숙히 자리한다. 매주말 여행마다 맞이하는 북구의 비오는 일상 속에서 도시마다 작더라도 꼭 있는 3가지 - 미술관, 의학박물관, 인류학/역사박물관을 둘러보았다. 특히 의학관련 박물관들... 의학이 근대로 넘어오던 시기 강국이면서 굉장히 진보적이었던 네덜란드에서 수준이 높아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미국에 있는 의학박물관들도 그 시초에 꼭 네덜란드인이 있었다. 영국 이전에 세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던 네덜란드는 일본에 의학 (양학)을 처음 전파했는데 무려 16세기 후반부터이다 - 예를 들어 1774년도 발간한 해체신서를 찾아보면 된다. 그 기록은 따로 나중에 탐구해보록 하겠다. 어쨋든 이 날도 마치 출근하듯 집 앞에 있는 역으로!

이번 주말은 가까운 도시를 가는거라 아침도 느긋하게 먹고 역시 집앞에 있는 암스텔역에서 탑승. 익숙한 비오는 날씨. 네덜란드를 키워드로 필자의 블로그에서 찾으면 이 암스텔역에서 출발했던 모든 주말여행을 볼 수 있다.

아무튼 네덜란드 소도시 여정은 구름짙은 비오는 날씨와 그에 따라 다소 어둡게 연출되는 미술관과 의학/인류학 박물관들은 그 도시전체의 이미지를 결정지었다. 물론 해가 좋을 때가 있긴하지만.... 오늘은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소도시 레이든Leiden에 가보았다. 나는 한국어로 글을 써보적이 거의 없다보니, Leiden을 한국어 표기로 어떻게 하나 찾아보았는데 아직 정해진 것이 없는지 레이든, 레이덴, 라이든, 라이덴 등 다 다르게 나오더라. 하지만 가장 믿음이 가는 것은 학계에서 표기하는 '레이든'이다.  또한 Lei는 라이와 레이의 중간발음이라 적당히 얼버무리면 현지인들이 더 잘 알아듣는다. 명칭도 따로 설명한 이 곳은 여행자에겐 확실히 덜 알려진 소도시임은 분명하다.

암스텔Amstel에서 암스테르담 중앙역까지는 한 정거장. 여기서 레이든, 하를렘, 로테르담 등을 거쳐 헤이그까지 가는 인터시티 열차로 갈아탄다. 워낙 노선이 중복되면서 살짝 다르긴 하지만 거쳐가는 도시들을 나열해주기 때문에 초보자도 쉽게 다닐 수 있다.
Leiden Centraal에 도착!
작은 도시치곤 역이 꽤 규모가 있었다. 네덜란드의 기차역은 단순히 기차역 수준을 넘어 잘 되어있는 쇼핑센터같기도, 혹 공항같기도 하다. 기차관련 업무시설은 (매표소, 인포센터, 예약시설, 라운지 등) 기차 본체처럼 노랑과 파랑으로 되어있어 처음 네덜란드를 찾는 여행자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역을 나선다. 엄청 어둡네... 비가 온다. 마침 민족학 국립박물관에서 게이샤문화전을 한다고 크게 광고를 한다. 
비가 오다 멈추다를 반복하는 것이 네덜란드의 기본적 날씨이다. 물론 여름기간 (6-9월)에는 파란하늘도 자주 볼 수 있다. 늦가을부터 봄까지는 비가 정말이지 너무~ 많이 온다. 자전거도 그냥 비맞으며 타는 것은 기본! 나도 암스테르담에서 출퇴근 절반은 머리가 젖은 상태로 다녔다.^^ 
역 앞에는 항상 이렇게 Visitor Center가 눈에 띄게 있어서 좋다.
딱히 뭐 물어볼 것은 없었지만 그냥 잠시 구경. 

미리 주중에 리서치를 해온 나는 여기서 지도만 얻은 후 오늘 이렇게 6곳을 둘러볼 예정이다: Museum De Lakenhal, Museum Boerhaave, Rijksmuseum van Oudheden, Rijksmuseum Volkenkunde, Sieboldhuis, Museum de Valk (명칭 순서대로 데 라켄할 시립미술관, 보어하브 의학박물관, 오드헤덴 국립박물관, 볼켄쿤드 국립민족학박물관, 시볼드하우스, 데 발크 풍차박물관) - 발음표기는 음... 약간 뭉게는게 많은데, 예를 들어 하우스는 실은 '후위스'와 '하우스'의 중간단계의 발음이다. 한국어 표기는 어찌하나 해서 찾아봐도 아직 정확한 논문이나 매체의 표기가 없는 것을 봐서는 한국인에게 다소 덜 알려진 장소들 같다. 어쨋든 시간은 충분하고 도시는 작기때문에 걸어가면서 먼저 발이 닿는데로 가기로 한다.

이제 슬슬 시내광장쪽으로.. 축축히 젖은 자전거 도로를 질주하여 달려오시는 한 여성분. 귀에 이어폰 꽂고 비는 쿨하게 맞으며 쌩~ 하게 지나가셨다.
타일바닥이 물기를 머금어 광택이 난다.
응? 운하 다리 하나만 건너자 바로 de Valk가 보인다. 슬렁슬렁 걸어가본다.
네덜란드에서는 아주 흔한 운하의 다리. 자전거때문에 다리를 이렇게 곡면으로 처리한 것이 참 많다. 상하좌우 모든 방향이 부드럽게 커브로 돌 수 있어서 자전거에 식료품, 건축모형 등을 싣거나 어린아이들을 태우고 주행해도 편리하다. 국민 수보다 자전거가 더 많은 자전거강국 네덜란드답다.
네덜란드 운하변에는 오리와 거위가 참 많다. 사람도 별로 무서워하지 않고. 그냥 같이 살아가는 동물들이다. 내가 살았던 네덜란드 1층집의 마당에는 닭, 왜가리, 거위, 오리는 물론 독수리나 매처럼 생긴 커다란 새들도 아침마다 찾아왔다. 정겨운 풍경이다.

거위와 운하를 따라 걷다보니 도착! 이 풍차는 그냥 De Valk라고 불리지만 정식 명칭은 Stedelijk Molenmuseum De Valk '데 발크 시립풍차박물관'이다. Stedelijk은 시립이고 Rijsk는 국립이란 뜻이다. 대부분 뮤지엄들은 알기쉽게 이름만 부르지만 긴 정식명칭을 살펴보면 앞에 구분되어 더붙어있다. 이 풍차는 3번의 증축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되는데,  1611년에 첫 풍차가 완공되고, 1667년에 나무구조로 더 높게 지었다. 마지막으로 1743년에 높이와 풍차의 날개를 더 키우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왜 풍차가 네덜란드와 벨기에 북부, 플랑드르 지역에 많을까? 13세기경에 풍차가 네덜란드에 처음 도입됬을 때는 방아찧는 일에만 사용하였으나, 점차 기술이 발전하며 풍차를 지지하고 돌려주는 기기가 더 강한 마력를 가지며 다용도로 쓰이게 되었다. 그러다가 15세기초 국가적 차원에서 해수면보다 낮은 국토를 보호 및 확장하기 위해 간척지 수위조절장치로 쓰이게 되는데, 물을 지속적으로 퍼낼 수 있는 풍차들은 빠르게 퍼져나가며 네덜란드 전역을 덮는다. 17세기까지 공식집계로 약 11,000개, 작은 네덜란드 국토를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양의 풍차로, 네덜란드 = 풍차의 나라, 라는 공식이 생겼다. (네덜란드는 대한민국의 40% 정도의 면적을 가졌다) 산업혁명 이후 증기 및 각종 기술이 발전하며 대부분 사라지고 현재는 마치 한국의 민속촌처럼 이렇게 박물관화 되었다. 데 발크는 1966년에 박물관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에는 내부의 방앗간은 실사용이 가능하도록 재건하여 방문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아쉽게도 문을 열지 않아서 밖에서만 구경을 하였다. ㅠㅠ 이때 무슨 공사를 내부에서 한다고 했다... 괜찮다 풍차는 모든 도시마다 다 있고, 최대규모의 풍차마을 쟌세스칸스Zaanse Schans에서도 실컷 보았기 때문 - 암스테르담 북서부의 위성마을 잔담Zaandam에 있는 풍차마을은 곧 따로 포스팅 하겠다.
내부엔 이렇게 풍차가 돌아가는 중심축의 톱니들이 있다. 아쉽게도 들어갈 수는 없어서 창문으로 보이는 부분은 눈으로 보고 아래 내부사진 4장은 tropter.com에서 가져왔다. 참고로 왠 동양남자애가 풍차에 들러붙어 계속 두리번대는 것을 본 지나가는 사람이 뭐하는겁니까?라고 물어보는 조금 웃긴 상황도 연출됬다.
보시다시피 사람이 사는 곳이다. 풍차는 단지 발전소 혹 물퍼내는 간척기계많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풍차 옆으로는 주택이 하나 붙어있다. 이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풍차를 관리하며 삶을 이어가는 네덜란드인의 주거방식 중 하나이다. 대지에 전통적인 '집'을 짓고 살기도 하고, 물위에 수상가옥도 있고, 이렇게 풍차에서도 삶은 있었다.  
계속 도심안으로 향한다.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게 보인다.

금세 도착한 Rijksmuseum Volkenkunde 민족학 국립박물관 (한국어 문서 중 인류학박물관이라고도 표기한 것도 있다.) 그런데 volkenkunde 는 곧 ethnology라서 민족학이 더 정확한 표현인 듯 하다. 이 곳은 1837년에 공식적으로 개관한 유럽대륙의 첫 민족학박물관이다. 그 이전에 레이든은 물론 박물관의 전신이었던 1800년대 초반 문화연구원 Museum Japonicum은 유럽인들이 더욱 바깥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연구하도록 하는 촉진제 역할을 했다. 이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일본은 유럽인에게 엄청난 것이 있는 미지의 세계, 배워야하는 곳, 좋고 이국적인 물건들을 만들어내는 곳 등 그야말로 환상의 나라였다. 고흐, 마네, 모네는 물론 이름대면 알만한 왠만한 화가들과 문인들 또한 자포니즘Japonism의 영향을 받은 것을 다수의 습작과 마스터피스로 남겼다. 한국인인 우리에겐 조금 씁쓸한 역사적 사실이다. 우리는 당시 밖으로 전혀 나갈생각이 없었고 세계와 교류가 단절됬었는데, 일본은 이미 글로벌하게 노는 중이었다니. 하필 방문한 이 날도 게이샤 전시가 크게 하고 있었고, 상설전시관도 '일본과 한국'이라고 묶어놓고 99%는 일본 것이었다... 박물관에 항의를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소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흘러가버렸다. 자포니즘이 이 박물관의 전신에 있었다는 것에서 욱하는 바람에... 그런데 이 곳 뿐아니라 뉴욕, 런던, 파리, 베를린, 암스테르담,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로마, 등 어딜가도 각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일본의 강력함을 계속 느꼈는데 아마 일종의 노이로제로 작용한 듯하다. 그렇지만 일본은 대단했다. 우리와의 역사문제가 어찌되었든 간에 그들은 디자인, 미학, 문학, 자연과학 등 다분야에서 수준높은 것을 내놓으며 세계와 교류했다. 그래서 이 박물관도1830년대 개관을 준비하며 일본에서 넘어온 물건을 대량으로 수집하였다고 한다. 그중 Phillipp Franz Balthasar von Siebold필립 시볼드가 그의 컬렉션 약 5천여개의 일본문화유산을 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유명하다. 따로 시볼드하우스라고 레이든의 대표박물관이 있어서 이따가 가보려 했는데, 그 곳은 일본문화박물관이라 한다. 이 민족학박물관을 보았으면 굳이 또 갈 필요는 없다고 느껴서 이 곳은 이 주말여정에서 생략하기로했다. 어쨋든 1840년대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각 대륙, 나라별 문화유산을 정식으로 기증받고 구매하며 현재는 각 민족에 대한 연구를 하는 박물관 겸 연구원으로 진화했다.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야 입구가 있다. 앞쪽의 건물도 예전에는 전시를 했는데, 현재는 대부분 연구시설이라고 한다.
로비에서. 티켓오피스 뒤로 뮤지엄스토어가 있고 계단아래로는 코트체크가 있다.
전시전경
인도
 특별전 교토의 게이샤Geisha's in Kyoto를 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이렇게 일본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실은 나도 잘 모르는 이웃나라 일본.
예전에 게이샤의 추억은 물론 서구권에서 동양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는 오리엔탈리즘, 동양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했다고 혹평과 비난을 많이 받았다. 서구권에서도 특히 백인남성이 동양여성과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만 해석했다는 것이 지적의 포인트이다. 전시를 보는 내내 저 공간에 있는 동양인은 나 뿐이라는 생각 중, 나에게 일본에서 보러왔냐는 다소 무지한 질문을 받기도 했다. '저는 한국인이에요. 동양에도 많은 나라와 민족이 있지요.'하고 웃어주기만 했다.
나는 그래도 계속 관람 중. 디자인의 관점으로 보면 재밌긴 했다.
역시 일본하면 빠질 수 없는 우키요에ukiyo-e. 17세기에서 20세기 초 에도 시대에 풍속화를 말한다. 일상, 풍경, 풍물 등이 그 주제이고 흔히 여러 가지 색상으로 찍힌 목판화인 니시키에를 생각하지만 육필화도 포함한다. 참고로 '우키요'는 직역하면 '떠다니는 세상의 그림'이란 뜻인데 실재하는 삶의 일부를 그려낸 것이란 뜻이다. 확실한 아웃라인과 대담한구도, 그림자의 부재, 강하면서 단조로운 색채 등으로 굉장히 모던하다. 실제로 서양의 모더니즘에 엄청 큰 영향을 주었기에 많은 화가와 문인들의 편지글이나 담화론만 봐도 일본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이 전시장의 우키요에를 천천히 또 자세히 감상하니 미적쾌감이 오긴 온다.
그리고 오세아니아전시관을 지나서...
일본과 한국관
딱 사진에 보이는 만큼의 코너가 한국의 문화.해서 보여준다. 조금 더 많았으면 또 띄엄띄엄 넓게 디스플레이 했으면 싶었다. 
그래도 퉁쳐서 이렇게 아시아.라고만 해서 수많은 나라를 욱여넣은 곳에 들어가지 않고 콕 찝어서 KOREA라고 나와있는 것은 다행이고 자랑스럽다.
라이트형제가 나오려나...?
했는데 역시 북미관으로 넘어왔다. 초기 북미원주민과의 전투부터 현대까지 이르는 역사를 간결하게 정리해 놓았다.
멕시코의 망자의 날Dia de Muertos을 설명하는 중인듯..ㅎㅎ 영화 코코Coco를 보신 분들이라면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가뿐히 "세계"를 산책하고 나와서 식당으로 왔다. 음... 달콤한 과자만 사서 잠시 먹고 de Lakenhal미술관으로 향하려한다.
식당의 중앙홀 뒤편으로는 이런 숨은 공간이 또 있다. 뱀처럼 긴 소파에서 딩굴대고 노는 가족들
뮤지엄 스토어
박물관 입구를 나서서 길쪽으로 보는 전경. 앞에 있는 연구실 건물.
다시 나와서 미술관으로 향하는데, 아침에 보았던 de Valk 풍차가 보인다. 이정표이다.
바로앞에 있는 운하를 따라서 10분정도 걸으면
이렇게 생긴 다리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림같은 미술관과 운하의 풍경. (실은 살짝 잘림... 깃발이 꽃힌 회색건물이다)
미술관 앞모습

1640년에 세워진 이 건물은 원래는 옷감을 만드는 직조공장이었다. 네덜란드어 de Lakenhal은 원단창고/매장cloth hall란 뜻이다. 유럽은 각종 상인과 장인들이 길드guild라고 해서 일종의 조합을 만들어 활동했는데, 이 곳이 바로 그 길드하우스였다. 세월이 지나 건물의 사용이 줄고 1874년에 시립미술관으로 변경되었다. 이곳은 네덜란드의 황금기Dutch Golden Age시대 (1581-1672)의 작품을 다수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늘에서 봤을 때 U-자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고 앞은 벽돌벽과 중간에 출입구로 되어있다.
건물이 U-자로 울타리 역할을 하는 벽을 통과하면 이렇게 유리로 덧씌운 중정같은 공간이 나온다. 건물 정면에 있으므로 '중정'은 아니다. 그냥 느낌이 그렇다는...
여기에 티켓카운터와 뒤로 작게 샵이 있고 한쪽엔 식당이 있다. 꽤 간소한 차림이다. 바닥을 보면 알겠지만 원래는 외부인 공간을 이렇게 내부처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건물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1층 로비가 또 나온다. 원래 여기서 티켓도 사고 물건도 팔았는데 왜 밖으로 옮긴걸까. 2016-2019년 약3년이 넘는 기간동안 이곳저곳 재건restoration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들리는 바에 따르면 저렇게 앞마당을 내부화해서 공간확장이 되니까 더 좋아서 저렇게 둘까.라며 고민 중이랬다.
이제 드디어 전시장으로 총총..
15세기부터 시작된 네덜란드의 찬란했던 역사가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다.
렘브란트를 비롯해 많은 플랑드르 작가들이 정물still life을 그렸는데 이유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재력을 과시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여러 메타포가 중첩된 메세지를 전달하는데 보통 죽음이 그 주제였다. 즉 네덜란드 정물화는 의인화된 알레고리며 내용을 텍스트처럼 재구성하여 읽을 수 있는게 특징이다. 참고로 정물은 인물화나 풍경화에 비해 늦게 역사에 데뷔했는데 18세기 네덜란드 미술사학자 후브라켄이 '정물화'는 단어 자체를 처음 만들었다. 
그 외 황금기 시대의 그림들
부유했던 그들의 삶.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나타난 수많은 네덜란드 출신 의학자, 식물학자 및 과학자들과, 현대자본주의의 시초를 닦은 은행가, 사업가들의 모습들. 주식stock이란 개념 또한 네덜란드인이 만든 것이다. 나는 영국과 미국 전에 네덜란드가 이미 세상을 뒤집어 엎었다고 믿는편이다.
나의 독특한 취미. 가는 곳마다 이런 비상구통로를 찍는다. 왜냐하면 건물 도면을 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니까. 흔히뮤지엄에서 나눠주는 전시장 도면은 다이어그램diagram으로 실제 치수와 맞지가 않지만, 소방관련 도면은 건물에 꼭 붙어있어야하고 정확한 치수를 보여준다.
돌아다니다 보니 1층을 다 둘러보고 2층으로 가는 계단. 이 미술관은 매우 작다. 1,2층과 3층은 반층정도...
2층에는 모더니즘부터 현대작가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건물을 처음 지었던 Willem Thibaut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오마주해서 만든 작품. 
네덜란드의 대표적 미술과 건축운동 De Stijl데스틸 작품이 몇 점 있다. 몬드리안, 반뒤스부르크, 리트벨트의 초기작/습작들
2층 한쪽에는 원래 이곳이 방직공장 및 textile guild였음을 알려주는 전시관이 있다.
당시 옷감의 샘플들이 예쁘게 액자속에 담겨있다. 이렇게 원단 몇점만 액자에 넣어도 작품이 된다.
다소 충격적이었던 현대작가의 작품. 처음엔 그냥 중세나 근대의 회화작품인가 했는데 캡션을 보니 사진합성물이라고 해서 다시 보았다. 역사속 인물들이 여기저기서 조합되어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1574년 10월 3일 스페인군에 대항하여 맞선 레이든의 사람들의 모습이다 (The Relief of Leiden). 네덜란드는 중세부터 근대까지 계속해서 이웃 강대국 프랑스와 특히 스페인에게 괴롭힘을 당한 역사가 있다. 작가 어윈올라프Erwin Olaf는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회화들을 연구하며 이 구성을 완성했다. 자세히 보면 아이팟이 스페인인 기사의 허리춤에 있고 몇몇은 이어폰을 꽂고 있다. 흑사병 당시 의사들이 시체를 들고 나가는 장면, 스페인 병사가 네덜란드 여성을 희롱하는 것, 또 약간은 워터하우스의 느낌이 있는 여인 모습도 보인다. 2011년 레이든 대학이 작가에게 Relief of Leiden을 기념하여 의뢰한 작품이다.
할머니 두분이 열심히 그림설명을 듣고 계신다. 유럽에서 가장 좋은 점은 노부부나 저렇게 나이가 들어도 친구들과 함께 자주 미술관이나 기타 문화공간에서 인문학에 빠진 시간을 보내며 인생을 즐긴다. 한국 역사의 특성상 살아가기에 급급했던 우리의 부모님, 어른신들도 현재 시점에선 저렇게 좋은 그림을 보고 좋은 음악을 듣고 인생을 즐기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했다. 이런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아직은 한국에 보편화 되진 못한 것이 안타깝다.
아까 지나갔던 계단. 1,2층 모두 한바퀴 돌면 여기를 통해 올라가고 내려오게 된다.
실은 누군지 다 볼 자신없는 수많은 초상화들. 대략 설명글을 보면 역사 속 레이든의 주요인물들이라고 한다. 다리가 조금 아파와서 잠시 처음 들어온 로비에 있는 카페로 향한다.
잠시 휴식... 아직 박물관 3곳을 더 둘러봐야한다. (보어하브 의학박물관, 오드헤덴 국립박물관, 시볼드하우스) 모두 작은 규모여도 6개의 문화공간을 하루안에 머리속에 다 집어넣으며 계속 걸어다니면 힘이 들긴하다. 그러나 이렇게 20년을 해왔어서 그닥 힘들진 않고 마치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미술관과 박물관을 돌아다닌다. 세상은 넓고 볼것은 많다. 이렇게 중간중간 쉬면서 뮤지엄에서 갖는 커피타임은 행복한 시간.

 

 

**출처가 따로 있는 사진 외에는 모든 글과 사진은 직접 느낀점을 쓰고 촬영한 것인 지적재산입니다.^^ 블로그의 내용은 요약본이고 차후에 각 토픽마다 더 자세한 글과 사진들은 매체에 기고하거나 책으로 엮을 예정입니다. 방문하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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