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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 | Kröller-Müller Museum, Netherlands (3/4)

Brett D.H. Lee 2020. 12. 13.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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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 | Kröller-Müller Museum, Netherlands (2/4)에서 고흐를 중점적으로 보았다.

미술관 나머지 부분도 굉장히 흥미로운 작품들이 가득하지만 전체적으로 줄여서 설명하며 이 곳의 또다른 하이라이트, 조각공원을 둘러보려한다. 그전에 고흐의 전시실을 나가기 전 나머지 전시실을 마저 소개하고 야외로 나가보자.

장 뒤뷔페의 거대한 조형.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 중 하나이다. Jardin d'émail, 1974

고흐를 그렇게 감상하고 그 다음 전시실에서 두리번대는데 상징주의symbolism의 대표격인 오딜롱 르동Odillon Redon이 그 첫번째 코너에 걸려있었다. 실은 상징주의는 문학에서  격렬하게 시작되었는데, 19세기말 20세기초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나타났다. 자연주의Naturalism와 리얼리즘Realism은 문학에서 명확히 분리하지는 않지만, 에밀 졸라처럼 주로 거칠고 욕망적인 도덕적 타락, 배신, 편견, 차별, 빈곤 등 삶의 어두운 면을 굉장히 부각시켰다. 이 상황에서 가장 격렬하게 자연주의 문학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며 나타난 것이 상징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과학적 결정론에 반대하며 몽환, 몽상 등 상징적인 것을 강조하였고 특히 <악의 꽃>의 보들레르Baudelaire와 랭보Rimbaud, 릴케Rilke, 예이츠Yeats, 와일드Wilde 등 굵직한 작가들이 포진한다.

 

문학에 비해 미술에서는 다소 서서히 나타난 상징주의는 문학에서처럼 격렬하거나 확실한 무브먼트로 자리잡지는 못했다. 하지만 다수의 작가들이 일정된 상징주의적 관점으로 작업을 하였다. 비평가 오리에 Georges Aurier의 <회화에 있어서의 상징주의>(1891)를 시작으로 르동, 클림트, 귀스타브 모로, 앙소르 등의 작가들이 있다. 이중  인상주의Impressionism 에 염증을 느낀 반항적인 작가들의 모임을 폴 세리쥐에Paul Serusier의 작업실에서 가지며 나비파Nabis로 불렸다. 어찌됬든 이 모임을 비롯해 상징주의를 추종했던 작가들은 외적인 것 보다, 내면의 어떤 것, 신비한 주제 등을 취급하였다. 크뢸러 뮐러의 전시실에 생각했던 것 보다는 더 많은 양의 르동과 앙소르의 작품이 있다.

르동의 대표적인 외눈박이 - The Cyclops (left), 그리고 The Palm (right)
색채를 특히 아름답게 쓰는 르동의 The Cyclop, Oil on cardboard mounted on panel 65,8 x 52,7 cm, 1914.
The Palm, Oil on cardboard 29 x 25,9 cm, 1899

보다시피 색채나 형태가 굉장히 화려하고 부드럽지만 인상파와는 확실히 다르다. 주제와 표현방식에서부터 신화적 존재들이나 상상으로 구현해낸 배경 등으로 꿈속에 있는 것 처럼 느끼게 한다. 그는 평생 남몰래 완전히 고독한 작품활동을 했다 (이는 앙소르의 삶과 같다. 둘 다 태어난 그곳에 머무르거나 아주 조금만 밖으로 나가며 그들만의 세상, 몽상속에 살았던 것 같다). 르동은 긴 세월동안 흑백판화를 만들었는데 그는 속화된 판화에 새로운 분위기를 부여하며 몽환적인 화풍을 구축했다. 또한 동시대 식물 생리학자 크라보의 연구를 읽으며 자연의 신비에 놀라워했는데, 그 신비의 세계는 평생 르동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60세에 이르러서  르동은 처음으로 색채를 취급했다. 그 유화는 꽃가루가 춤추듯 오색을 흩뿌리는데, 르동만큼 색채에 감미로움을 풍기게 하는 작가도 드물다. 고갱의 규모나 르누아르의 풍요함은 갖지 못하지만, 르동은 새로운 각도에서 그 감각을 빛내고 있다.  그의 말년은 파리 교외의 집에서 화초를 가꾸며 고요히 생활했다. 르동이 그린 꽃 그림을 보면 꿈과 같이 맑고 깨끗함으로 감싸여 있었다. 또한 작품 캡션에서 보다시피 캔버스나 나무판넬보다 싸구려 카드보드cardboard에 그린 것이 꽤 많다. 그의 삶이 대부분 힘들었나 싶다.

 

Oil on cradled panel 29,9 x 29,2 cm
그가 남긴 많은 흑백판화와 스케치들. 크뢸러뮐러에 약 150여점이 있다.

 

그 다음은 앙소르James Ensor다. 

파스텔톤의 화려한 색채 속 숨겨진 인간의 추악한 내면이 불편한 불협화음을 보이는 동시에 희한한 조화를 이룬다. 앙소르는 1860년에 벨기에 북서쪽 해안 마을 오스텐드Oostend에서 태어났다. 처음엔 색채가 단조롭고 주제도 대놓고 어두운 그림을 그렸는데, 1885년쯤을 기점으로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앙소르의 화풍이 자리잡는다. 1889년 '브뤼셀에 입성하는 그리스도'로 큰 반향을 부르며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되지만 잠시였을 뿐 많은 혹평이 지속적으로 그를 괴롭혔다.  브뤼셀에 미술공부하러 잠시 오스텐드를 떠났을 뿐, 나머지 일생은 모두 오스텐드에서 혼자 몽상가처럼 그림 그리며 보낸다. 참...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왜 다 이런거지... 히에로니무스 보스를 시작으로 르동, 앙소르를 거쳐 초현실주의, 청기사파 Der Blaue Reiter, 다리파Die Brucke,  특정 소수의 다다이스트Dadaist들... 비슷한 취향의 누구와 대화를 해보고 싶다.^^

앙소르의 Pierrot in despair, Oil on canvas 66,3 x 84,2 cm, 1910 (Left) 그리고 Still life with a cabbage, Oil on canvas 72 x 102 cm, 1921 (Right)

보스나 르동과 마찬가지로 앙소르 또한 사생활이 알려진게 많이 없다. 몇 가지 요약하자면 그는 브뤼셀 체류시절 무정부주의자들에 영향을 받았고, 그의 그림은 거의 팔리지도 않았으며, 이로 인해 가족들에게도 외면을 당했다고 한다. 평론가들도 그의 그림을 무자비하게 혹평하여 살아생전 빛을 보지 못했다. 그의 그림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 시대에 봐도 무섭고 다소 혐오스럽게 느낄 부분이 많은 건 사실이다. 특히 광대공포증Coulrophobia이 있는 사람이면 앙소르의 작품을 보고 소름돋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의 화면의 많은 캐릭터들은 일종의 가면 혹 분장을 하고 있는데 나는 앙소르의 작품을 보면 오페라의 유령의 가면무도회Masquerade 곡이 저절로 환청처럼 들린다.  (아래는 내가 흥얼댈 수 있는 정도로 외우는 가사의 일부이다. 15년전에 처음 듣고 뇌리에 박혔는지 오페라의 유령에서 유일하게 달달 외울 수 있는 노래이다. 특히 bold하게 표기한 부분.)

 

Masquerade!

가면무도회!

Paper faces on parade

각양각색의 가면들의 향연

Every face a different shade

모든얼굴, 모두 다른 그늘들

Look around - there's another mask behind you!

둘러봐-네 뒤에 또다른 가면

Flash of mauve, Splash of puce, Fool and king, Ghoul and goose

튀는 자주, 누런 갈색, 광대와 왕, 귀신과 거위

 Green and black, Queen and priest, Trace of rouge, Face of beast, Faces...

녹색과 검정, 여왕과 성직자, 붉은 루즈, 야수의 얼굴, 얼굴들...

 

Take your turn, take a ride on the merry-go-round...
차례가 오면 회전 목마에 올라타라

in an inhuman race
인간의 가면만 빼고 

Eye of gold, Thigh of blue, True is false, Who is who, Curl of lip,

금빛 눈, 넓은 파랑, 진실과 거짓, 누가 누구?, 꼬인 입술,

 Swirl of gown, Ace of hearts, Face of clown, Faces...
  날리는 가운, 하트 에이스, 광대 얼굴, 얼굴들...

Drink it in, drink it up,till you've drowned in the light... in the sound...
조명 사이에서 음악 사이에서 마시고, 또 마셔 익사할때 까지

But who can name the face

그런다고 누가 그얼굴을 알까

 

Stop and stare at the sea of smiles around you
멈춰서서 내주위의 미소의 바다를 봐

Seething shadows,breathing lies
들끓는 인파 내뱉어지는 거짓말들

You can fool any friend who ever knew you!
당신이 아는 누구든 놀릴 수가 있다네

Leering satyrs, peering eyes
곁눈질과, 탐욕의 눈길

Run and hide but a face will still pursue you!
도망치고 숨어봤자 가면의 눈길을 널 쫒지

 

Masquerade!
가면 무도회!

Grinning yellows, spinning reds
비웃는 노랑, 어지러운 빨강

Take your fill let the spectacle astound you
자신을 버리고 이 장엄함에 묻혀봐

가면을 벗은 이는 삐에로, 그는 광대이다. 제목처럼 혼자 고통스러워(in despair)하는 것이다. 나머지 주변 인물들은 다 일종의 가면, 또 다른 자아, 장치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우리의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면 고통스러운 것일까.  앙소르의 작품은 수많은 가면에 둘러싸인 우리의 삶을 신랄히 풍자함은 분명하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누구나 각자의 가면을 여러가지 가지고 필요에 따라 가면무도회를 진행하는 것이다.

 

앙소르는 어찌보면 진정한 리얼리즘 작가가 아닌가 싶다. 가면이 단순히 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살아있는 얼굴이 되는 것이다. 그가 살던 오스텐드는 항구지역으로 대항해시대 시절 수많은 토산품들이 그 곳에 흘러들었다. 그 중 일본, 중국, 인도 및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장신구, 가면, 장난감, 유리공예품, 도자기, 인형 등이 있었는데, 그 중 특히 그가 평생 간직했던 인어인형은 나무틀에 사람의 머리카락, 원숭이 이빨, 물고기 비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그러한 인형은 혐오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다른 '장난감'들도 대부분 그로테스크한 부분이 꽤 있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는 혼자 지내며 신약 성서를 읽었는데 그 속에서 인간의 추악함을 읽어냈고, 그리고 인간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고통받다 돌아가신 예수에 깊은 공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가 기독교인은 아니었으나 최후의 승리이자 구원인 십자가를 향해 가는 주인공, 인간으로서의 예수에게 매료됬음은 분명하다. 실제로 앙소르 또한 우리가 흔히 보았던 제단화의 예수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 그도 머리와 수염을 다소 기르고 스스로 그림속에 자신을 넣어가며 예수와 본인을 종종 겹치게 했다. 비애와 유머, 풍자, 유희적 요소가 가득한 그의 작품은 세상을 향한 그만의 통쾌한 복수이자 진짜 사실을 그린 리얼리즘이지 않을까.

Demons teasing me, Etching on paper 15,7 x 25 cm, 1895. 앙소르가 주변에, 세상에 존재하는 악마들에게 괴롭힘들 당하는 장면이다. 그에겐 주변사람들 다대수가 적이었다. 그의 마음속 깊이 자리한 증오와 혐오가 표현된 것인 듯하다.

역시 네덜란드라서 그런지 그 다음 전시실에는 많은 양의 데스틸 작품들이 있었다. 몬드리안, 리엣벨트, 판 두스뷔르흐 등 (Mondrea, Rietveld, van Doesgurg). 이들에 대한 설명은 나중에 데스틸 작품을 따로 모아해야겠다.

고흐 전시실 외에는 관람객이 굉장히 뜨문뜨문있다. 좋은 점은 노부부와 장애인이 참 많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 두 집단에 미술관이나 예술활동하는 것에서 멀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중산층 뿐 아니라 저소득층의 노부부가 함께 매주 미술관이든 음악당에 다니고 장애인도 맘껏 나가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어딜가든 장애인 배려한 동선과 디자인이 많이 보이는 것이 미국과 유럽이다. 이 점은 꼭 더 배워나가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나타난 네덜란드 출신, 찰리 투롭Charley Toorop의 작품들. 아버지 Jan Toorop은 상징주의와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명이다. 그녀는 암스테르담에서 주로 활동하며 De Stijl작가들과 두터운 친분을 나눴다 - 몬드리안, 뒤스부르흐 등.
찰리 투롭의 작품들. 그녀는 후기인상파에서도 사실주의로 나가며 강한 대비와 뚜렷한 구성, 그리고 선명한 화면을 만들어 냈다.  최근 종종 마술적 리얼리즘magical realism과 함께 언급되며 다시 연구 중에 있다.
바로 코너를 돌아 다시 넓은 전시실에서 찰리 투롭의 아버지 얀 투롭의 작품들을 만났다. 7점인가... 다른 작가에 비해 생각보다 많은 양이 었다.

얀 투롭Jan Toorop은 네덜란드 작가로 상징주의와 아르누보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아르누보는 크게 3곳에서 다른 형태로 나타났는데, 벨기에와 북부프랑스, 독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영국(스코틀랜드)이다.  얀 투롭을 포함한 플랑드르,  동독과 체코 지역에서 나타난 아르누보는 보다시피 곡선이 많고 그래픽적이다. 특히 건축에서 이 특징이 두드러지는데, 건축안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디자인하는 종합예술gesamtkunstwerk개념이 아르누보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당시 많은 포스터가 아르누보 작가들에 의해 제작되었다. (그 외 워낙 할 말이 많지만 일단 투롭만 설명하기에 생략...) 어쨋든 얀 투롭은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넘나들며 미술교류를 했고, 상징주의와 아르누보 사이의 어떤 지점에 있는 듯하다. 체코의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의 화면에 비교하면 좀 더 남성적이고 사람 (특히 여성의) 치명적임fatalism을 부각시킨 작품이 많다. 

 

무하의 사계 The Seasons, 1896.
전시실을 나오며 보았던 또 다른 상징주의 작가 Maurice Denis. 얼굴이 다 달걀귀신처럼 뭉개져있고 옷이나 하늘의 색감이 약간 뭉크의 그림같기도 하다. 
생각보다 글이 길어진다... 실은 마구 줄여서 전시실 몇개를 스킵했다 모더니즘을 죽 이어 다 보면 물론 미래파, 절대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 계속 있다. 그러나 크뢸러 뮐러에서 특별히 한 두 점이 아닌, 한 전시실에 6~10점 씩 걸어두어 더욱 중점적으로 보았던 작가들만 나열해 본다. 이제 전시실 밖으로 나가보자. 아래처럼 뒤뷔페의 작품에서 사람들이 뛰어 놀고 있다. ㅎㅎ 조각공원의 모든 조형은 다 만져보고 올라가보고... 여러방식으로 작품과 '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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