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고흐의 방으로 진입. 두근댔다. 앞서 (1/4)에서 말했듯이 이곳은 암스테르담 고흐미술관 다음으로 세계에서 2번째 규모의 고흐컬렉션을 자랑한다. 약 90점의 원작회화와 180개가 넘는 드로잉이 있다. 가장 유명한 몇개를 꼽자면 <감자먹는 사람들> The Potato Eaters (1885), 고흐의 초상 중 귀를 잘라내기전의 <초상화>Self-Portrait (1887), <아를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Terrace of a cafe at night, Arles (1888), <조셉 루랭의 초상> Portrait of Joseph Roulin (1889), <마담 지누의 초상> Portrait of Madame Ginoux (1890) 등이 있다. 그 외 인쇄소, 건초더미, 착한 사마리안, 그리고 고흐가 권총 자살하기 2달전에 완성한 <영원의 문>(1890)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리고 서민들의 삶을 그린 그림들...
그리고 유명한 감자먹는 사람들. 암스테르담에 있는 것과 비슷하지만 살짝 더 흐리다. 고흐미술관의 것은 집의 디테일이 좀 더 자세히 그려져있고 사람들의 눈망울이 눈물 맺힌 듯 그렁그렁하지만, 이 그림은 눈도 모딜리아니나 키르히너처럼 초점없이 검은 암흑이다. 시선이 없이 그저 공허하고 뭉개지며 흐려지는 그들의 삶처럼 흐릿하게 그려진 크뢸러 뮐러 소장된 감자먹는 사람들이 나는 더 좋다.
아를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밤의 테라스)와 우측으론 풍경화가, 좌측으론 초상화들이 전시되 있다. 하나씩 둘러보자.
<아를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가 제작되던 1888년부터 이듬해까지 지속된 이른바 ‘아를 시기’는 15개월 동안 약 200여 점이라는 많은 작품을 남길 정도로 활발하게 창작했던 시기이다. 또한 감정을 강렬한 색채와 임파스토impasto 기법으로 표현한 그의 독자적 양식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때로 평가되기도 한다. 고흐는 포룸 광장(Place du Forum)에 자리한 야외 카페의 밤 풍경을 담은 이 작품을 그리던 무렵부터 야간에 작업하기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이 작품을 그리기 얼마 전에는 3일 밤에 걸쳐 자신이 즐겨 찾던 카페 드 라 가르(Café de la Gare)의 실내 정경을 표현한 <아를의 밤의 카페> The Night Café in Arles를 완성했다. 현재 파리 오르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 Starry Night Over the Rhone (1888) 역시 이 작품과 같은 달에 그린 것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밤 풍경화는 9개월 후, 생 레미(Saint-Rémy)의 요양소에서 그린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1889)에서 절정을 이루게 된다.
“푸른 밤, 카페 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어. 그 위로는 별이 빛나는 파란 하늘이 보여. 바로 이 곳에서 밤을 그리는 것은 나를 매우 놀라게 하지. 창백하리만치 옅은 하얀 빛은 그저 그런 밤 풍경을 제거해 버리는 유일한 방법이지… 검은색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아름다운 파란색과 보라색, 초록색만을 사용했어. 그리고 밤을 배경으로 빛나는 광장은 밝은 노란색으로 그렸단다. 특히 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이 정말 즐거웠어.”
- 고흐가 여동생에게 쓴 편지 중.
Wheat stacks in Provence, Oil on canvas 73,5 x 93 cm, 1888
The sower, Oil on canvas 64,2 x 80,3 cm, 1888
(좌) Olive grove, Oil on canvas 72,4 x 91,9 cm, 1889
(우) The ravine (Les Peiroulets), Oil on canvas 73,2 x 93,3 cm, 1889
89년, 고흐가 사망하기 1년 전, 그의 광기, 답답함, 뭔가 알 수 없는 것들이 이런 구불구불하고 어지럽게 날리는 붓터치에서 느껴진다. 아몬드 나무(1887, 1888년 것들) 그린 것보다 훨씬 더 터치가 여러방향으로 날리고 구부정하다. 별이 빛나는 밤(1889)보다 훨씬 더 어지럽지만 움직이는 듯한 시각적 효과때문인지 계속 쳐다보게 했다. 실제로 고흐의 전시실 나오고 힘들었음.
그 다음은 초상화들...
(우) Portrait of Joseph Roulin, Oil on canvas 65 × 54 cm, 1889
(좌) La Berceuse (portrait of Madame Roulin), Oil on canvas 92 × 72,5 cm, 1889]
(좌) The lover (portrait of Lieutenant Milliet), Oil on canvas 60,3 x 49,5 cm, 1888
(우) L'Arlésienne (portrait of Madame Ginoux), Oil on canvas 65,3 x 49 cm, 1890
먼저 고흐의 진정한 친구로 광기에 휩싸인 그를 보듬어주고 이해해주고 모든 편지기록이 남도록 해준 조셉 롤랭과 그 부인의 초상이다. 고흐는 조셉의 초상을 1888-89년에 6점을 그리는데, 이 미술관에 있는 것은 꽂무늬 배경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그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하는 것일까. (조셉 롤랭 다른 초상 5점은 꽃무늬 배경이 아닌 하늘색 평면이고, 자세또한 경직된 군인같은 자세이다.) 당시 아를에서 이탈리아인이 프랑스인 주민을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로 인해 고흐도 네덜란드에서 온 어쨋든 이방인이기에 동네 사람들은 다들 고흐를 멀리했다. 마침 고갱과 싸우고 분에 못이겨 귀까지 자른 시기였으니 주변 사람들이 고흐를 당연히 미친사람으로 간주하였다. 그런데도 조셉 롤랭과 그의 가족들은 고흐에게 잘 대해주었고 고흐는 부인의 초상에도 꽃으로 배경을 장식하였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 있는 이 부부의 초상은 고흐의 순수함과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아래의 두 초상화도 고흐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이다. 좌측에 한국어로는 <연인>이라는 제목과는 안 어울리는 듯한 군복입은 남성이 있다. 그는 고흐의 친구이자 제자, 화가 지망생이었던 밀리에 소위이다. 이 그림은 고흐의 침대 머리맡에 <시인>이라는 그림과 나란히 걸려있던 것이다. 고흐는 "서로를 빛나게 해주는 색채들은 짝을 이루어 남자와 여자처러 서로 완성시켜 준다"고 믿었다. 이 그림의 보색 연출은 밀리에가 능했던 '사랑하기'를 표현하는 듯 하다. 당시 '소녀들이 홀딱 반했던' 그의 군복차림은 그 자체가 욕망을 의미한다고 한다. 별과 초승달은 주아브 병사의 상징인데 그의 가슴에 달린 훈장은 통킹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의 지역)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우측에는 1888년 고흐가 아를에 도착하여 요양병원에 가기 전까지 머물던 카페/술집/여관의 주인 지노 부인이다. 그녀는 고흐가 아를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왔는데, 고흐는 그녀의 초상을 감사의 표현으로 그렸다 한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기 전에 그녀에게 품위있는 옷으로 갈아입도록 요청을 하고 앞에 책을 두어권 두도록 했다. 그래서인지 이 초상화의 지노 부인은 표정이 흐뭇한 듯 그림을 그리는 고흐를 바라보는 것 같다. 재밌는 점은 고갱도 이 곳에서 고흐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고갱의 그림은 색채는 물론이거니와 부인을 아주 다르게 표현했다. 고흐의 <아를의 밤의 카페>는 비슷한 붉은 방이지만 분위기가 좋은 카페같은데 고갱의 것은 싸구려 술집처럼 되어있다. 거기에 지노부인을 정면에 다소 천박하게 그렸다. 고흐가 지노부인을 카페의 전경과 함께 그린 모든 작품은 지노부인의 이름이 작품이름인데, 고갱은 그냥 부인의 이름도 생략했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세 사람의 감정싸움, 혹 삼각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지만 그 진실은 세 사람만 알겠지...
마지막으로 내가 고흐의 그림 중 그가 죽기 얼마 전 그렸던 영원의 문과 그 스케치를 보고 전시관 맨 처음 서민들의 삶을 그린
(감자먹는 사람들> 과 <죽은의 침대에 누워있는 여인>을 떠올렸다.
고흐의 <착한사마리안>. 영원의 문과 비슷한 시기에 그린 것인데, 델라크루아의 그림을 보고 영감을 받아서 그렸다고 한다. 착한 사마리안은 많은 화가들이 그림의 소재로 쓴다. 종교적, 정치적, 역사적으로 복잡히 얽혀 서로 증오하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헤롯왕도 포함)의 관계를 알고 보면 더욱 이 그림의 숭고함이 느껴진다. 기원전 722년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인에게 정복되어 유대인들이 추방되거나 죽임을 당했는데, 그 지역에 다수의 이방인들이 흘러들어왔다. 그 중 이방인과 유대인이 섞인 혼혈이 사마리아인이다 -( 이스라엘의 옛 수도 사마리아의 이름을 따서). 한편 바빌로니아에 정복되어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을 세우는데, 사마리아인들은 출입이 통제되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만의 신전을 세워 예배를 드리게 된다. 그런데 기원전 128년 유대인 통치자가 사마리아인 성전을 파괴하며 두 민족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유대인이 혐오하는 헤롯왕도 사마리아인 혈통인데, 이런 역사가 반복되는 와중에 그 누가 서로 돕겠는가?
이 그림은 다친 랍비도, 율법에 정통한 레위인도 외면한 길가에 쓰러진 유대인을 지나가던 사마리아인이 구해주는 모습이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 여기서 유래되는데 타인의 생명이나 위험을 보고도 도움의 손길을 건네지 않는 경우 처벌하는 법이다. 또한 위험에 처해있는 사람을 선의로 구조했을 경우, 그 의도를 인정하여 법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이는 특히 의학이나 범죄현장 등에서 아주 필요한 법이다. 누가 죽어가는데 도와줬더니 부작용으로 인해 피해보상 하라면 누가 사람을 구하겠는가. 아무리 적이어도 위급한 상황에서는 일단 도덕심과 윤리, 선으로 풀어나가는 포괄적 정신을 가르쳐주는 그림이다.
고흐의 방이 깔끔히 좀 나온 사진이 없어서 웹사이트의 전체적인 전경으로 마무리하고 그 다음 르동Redon의 심볼리즘(상징주의)로 시작하여 포스트모더니즘까지의 전시실로 이동해본다.
[Travel]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 | Kröller-Müller Museum, Netherlands (3/4)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