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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 | Kröller-Müller Museum, Netherlands (1/4)

Brett D.H. Lee 2020. 12. 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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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정하지 않았는데도 흐린날에 이렇게 녹지가 눈부시다. 나는 비를 무척 좋아한다. 파란하늘도 좋지만 구름이 가득해서 하얗게, 마치 밝은 안개같은 하늘을 더 좋아한다. 숲 속의 미술의 성지,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이런 날이 더 어울린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고흐 그림 앞에서.

엄마와 함께 12년전(2008년)에 갔었던 크뢸러 뮐러 미술관을 암스테르담에서 일하던 2014-15년 중 혼자 재방문했던 포스팅이다. 이곳에선 암스테르담 고흐미술관 다음으로 제 2의 고흐의 집이라 해도 될만큼 양질의 고흐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이곳의 조각공원은 유럽에서 가장 크며 그 소장품들이 워낙에 유명하다. 엄마와 함께 갔을 때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하는 바람에 정말로 달리면서, 가슴을 졸이면서, 사진도 다 흔들리게 찍어가며 미술관을 보았다. 그때는 조각공원은 쳐다볼 여유도 없었다. 당시 엄마와 함께 미술관 그랜드 투어를 3주간 하면서 아침 개장시간부터 마지막으로 문닫는 미술관을 찾아 그곳에서 나가라고 할 때 까지 치열하게 미술관을 다녔던 기억이 가장 강하게 남은 곳이 이 크뢸러 뮐러 미술관이라 혼자 암스테르담에 잠시 살면서 하나하나 재방문해보는 것은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다. 그때 말고도 지난 20여년간 미술관을 정말 많이 다니며 '미술관 = 엄마'라는 공식이 내 머리에 강하게 박혔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뜨면  아침먹고 나가서 점심도 많이 걸러가며 계속 미술관을 다니고 밤에 문을 닫은 후에야 늦은 저녁을 먹으며 그 다음 도시, 그 다음 미술관 방문을 생각했다. 누군가에겐 여행이 아니라 고행하는 것 같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 여행기는 고행기라고 한다, 그런데 난 혼자 여행할 땐 저절로 그렇게 고행을 하게된다. 오히려 나에겐 그것이 기쁨이 되니까.

 

아무튼 이번 방문에는 역에서 내려 공원 근처까지만 버스를 타고, 공원 앞에서 자전거를 대여해서 오테를로의 넓디 넓은 국립공원Het Nationale Park de Hoge Veluwe가로질러 가보았다. 기차역에서 택시를 불러가면 실은 금방이고 별로 비싸지도 않다 (유럽에서 택시로 25유로정도면 비싼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날도 좋고 운동을 해야하니! 자전거의 나라. 네덜란드 아닌가. 실은 이 날 느낀 공원의 느낌은 정말 명화였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감동은 생생하다. 고흐부터 당시 화가들의 풍경화에 채도높고 강렬한 붓터치가 왜 나오는지, 그게 단순히 그들의 표현 기법이라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실제로 그렇게 보여진다. 미술관 도착도 하기전에 2시간을 넘게 공원에서 멍 때리느라 미술관은 다소 늦게 도착했다. ㅎㅎ

주말 아침 7시부터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고 8시 기차로 암스테르담에서 1시간반 동쪽으로 향한다. 이 기차는 네이메헨이다. (네이메헨은 발크호프 미술관이 있고, 그 전에 오늘의 도착지 아른헴Arnhem 역을 거친다). 오테를로는 아른헴역과 에데 바흐니엔Ede-Wageningen역 사이에 있다. 그 사이가 거의 다 공원이다. 지리적으로 좀 더 가깝기 때문에 미술관 관람 후 돌아올 때는 에데역에서 출발하였다. 
내 2014-15 당시 근무 중이던 UNStudio에서 이 역을 설계했다. 막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어서 역 내엔 아직 built-in furniture가 설치 중이었다. 
역에 내려서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이렇게 버스들이 즐비하다. 400번 버스를 타면 공원입구에 내려준다 (만약 Ede-Wageningen 역이라면 108번 버스를 타고 오테를로에 내려서 106번으로 환승해야한다.)
버스안에 아무도 없어서 그냥 막 사진찍으며 갔다. 가는 내내 이런 커다랗고 곧게 뻗은 나무들이 빽빽히 있다.
내리면 바로 이렇게 공원입구가 나온다. 나는 개인적으로 버스 환승이 필요한 에데역보다는 좀 더 거리가 있어도 한번에 자전거타고 갈 수 있는 아른헴역에서 400번 버스가 좋다. 물론 자전거 안타고 바로 택시로 들어가실 분은 에데역에서 내려서 택시타는 것이 거리가 짧기 때문에 더 좋을 것 같다.
정말 헉 소리나게 대여자전거가 가득하다. 저렇게 빽빽하면 불량이 있거나 그럴법한데 모든 자전거가 다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다. 키, 다리길이(?)에 따라 편한 걸로 찾아 타고가면 된다. 자물쇠 없음. 그냥 양심적으로 안 훔쳐가기 때문이다 ㅎㅎ 참고로 네덜란드는 자전거 브레이크가 손잡이에 없다. 페달을 반대로 밟으면 그게 브레이크이다. 한국사람들이 처음에 어려워하는 부분인데 나중에는 손이 자유로운것이 더 좋다고 느껴진다.
와.. 너무 멋졌다. 사진이 다 말해주지 못한다. pictures won't do us any justice... just wow
혼자 놀고 있으니 대신 찍어준 고마운 사람덕에 내 사진도 득템.
구경하며 달리다보니...
이렇게 큰 소위 'K'처럼 생긴거...라며 많은 관광객이 크뢸러 뮐러 앞 정원의 기억을 더듬는데, 마크 디 수베로Marc di Suvero의 K-sculpture가 맞다 ㅎㅎ 1972년 작품

설립자는 현대미술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헬렌 크뢸러 뮐러Helene Kröller-Müller이다. 그녀는 일찍이 고흐의 천재성을 알아본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인데, 미술 선생님이었던 브레머H.P. Bremmer의 조언으로 다수의 고흐 작품을 수집하여, 암스테르담 고흐미술관 다음으로 고흐컬렉션을 많이 가지고 있게 된다. 1938년에 개관한 이 미술관의 건축설계는 벨기에의 대표적인 아르누보Art Nouveau 건축가 헨리 반 데 벨드Henry van de Velde가 맡았으며, 이후 1970년 증축한 부분은 네덜란드 건축가 빔 퀴스트Wim Quist가 설계하였다. 헬렌 크륄러 뮐러는 남편인 안톤 크뢸러Anton Kröller와 함께 1907년부터 1922년까지 약 11,500 점의 작품들을 수집하였는데, 이는 20세기에 개인 컬렉션으로는 가장 거대한 컬렉션 중 하나였다고 한다!

 

브레머의 조언으로 반 고흐 컬렉션을 많이 소장하게 된 크뢸러 뮐러 뮤지엄은 ‘반 고흐의 두 번째 집(Vincent van Gogh’s second home)’으로 불리기도 한다. 약 90점의 그림과 180점 이상의 드로잉 중 고흐의 초기 걸작으로도 꼽히는 <감자 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 (1885), 우리에게도 익숙한 <아를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Terrace of a café at night, Place du Forum (1888), <조셉 룰랭의 초상> Portrait of Joseph Roulin (1889) 등이 있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보자.

 

미술관 입구. 전형적인 모더니즘의 정수 국제양식International Style이다. 맨 처음엔 Form Follows Function으로 유명한 미스 반 데 로에 Mies van der Rohe인줄 알았다. 모두지 아르누보와 Gesamtkunstwerk(종합예술작품: 건축에서는 외관부터 인테리어의 모든 제품, 식기까지 다 한 개의 종합적/총체적 디자인 표방했던 무브먼트)을 대표했던 헨리 반 데 벨데의 설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로비. 티켓판매하는 곳도 아주 간소하다. 사진찍는 반대방향은 아예 텅~ 비어있었다.
티켓 구매 후 이렇게 자연을 둘러보며 빈 공간을 걷게 된다 ㅎㅎ 순수하게 건물과 자연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벽에 절대 포스터나 무엇을 걸지 않는다고 한다.
미술관 플랜. 보다시피 길다. 외부의 조각공원을 바라보게 하는 한쪽은 통유리 빈 복도가 많다. 단순히 내부의 전시공간 뿐 아니라, 건축과 조경 그리고 작품들이 어우러지게 돕는 형태이다. 그 유명한 반 고흐의 방이 3번과 4번 전시관 사이에 넓게 있다.

 

뮤지엄 플랜의 1번 2번 방 위치에서 찍은 것. 크뢸러뮐러의 각종 조각 컬렉션이 항상 있는 방이다. 
그 중 기획전으로 아담 콜튼Adam Colton의 전시.
영국출신 작가인 아담 콜튼은 주로 석고plaster와 각종 주물casting작업을 한다. 특이하게 주로 네덜란드의 미술관에서 다수 전시를 하였다. 덴하그의 빌덴안지 미술관 Beel den aan Zee museum등
잠시 둘러보다가 본격적으로 고흐의 방 및 20세기 헬렌의 주요 컬렉션을 보러 간다. 자코메티Giacometti가 도어맨처럼 아트리움에서 전시 갤러리로 넘어가는 홀을 지키고 있다. 
앞에서 보고 서있는 줄 알았는데, 들어와서 옆을 보니 걷는 중 ㅎㅎ 주변으론 피카소, 브라크 등이 컬렉션의 시작점으로 설명하며 나온다. 길게 생긴 이 전시관 끝에 다다르면 20세기초에서 1960-70년대 개념미술 및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작점까지 미술의 큰 줄기를 보게된다.
마네, 세잔, 고갱 등이 있던 전시실
점묘법의 쇠라Seurat, the master of Pointilism, 우측은 크뢸러 뮐러에서 대표적인 쇠라의 작품으로 등장하는 Le Chahut, 1889-90
폴 시냑Paul Signac, La Salle a manger, Opus 152, oil in canvas, 1886-87 인상파와 점묘법을 오갔던...
르누아르, Auguste Renoir, Au cafe, oil on canvas, 1877
마네 Manet, Portrait d'un homme, oil on canvas 1860
테오 반 뤼셀베르그Theo van Rysselberghe. 신인상파의 대표적인 작가인데 한국에서는 덜 알려진것 같다. 이름부터 어렵긴 한 이 벨기에 겐트(Ghent네덜란드에선 헨트라고 발음한다) 출신인 뤼셀베르그는 벨기에 왕립보자르학교를 다녔으며어릴적 세 차례 북아프리카 여행을 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후 리얼리즘, 인상파 등 다양한 시도를 해왔는데, 그중 쇠라의 가장 유명한 작품<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점묘법을 터득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면 르누아르 같기도 한 이 그림들은 빽빽한 점들로 이루어져 있다. 쇠라의 좀 더 구성적이고 평면스러운 그림과는 다르다. 주로 귀족, 여성과 아이들의 삶을 그렸는데 주제와 스타일이 모네, 르누아르, 쇠라가 혼합된 느낌이 있다.
그렇게 피카소, 브라크, 마네, 모네, 밀레, 르누아르, 세잔, 고갱, 쇠라, 시냐크, 등 20세기 초의 굵직한 작가들을 보다보니 넓고 유난히 밝은 고흐의 전시실이 나타난다. 도넛모양으로 한바퀴 죽 둘러보게 되어있다. (2/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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