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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모로코 15일 - 토드라 협곡 (+새해) Todra Gorge (15/24)

Brett D.H. Lee 2021. 1. 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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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사막에서 더위와 추위를 동시에 받아내며 이틀을 꼬박 지내고 난 후 베이스 캠프에서 문명인(?)처럼 샤워실에서 씻을 수 있었다. 12월 31일, 새해맞이 샤워인 셈이다.^^ 

다음에 또 보아요 사하라 사막~ (그리고 실제로 얼마 가지 않아 또 방문했다. 그 때는 이집트에서)

 

차를 타고 다시 아틀라스 산맥으로 향하는데 이게 왠 풍경인가. 1시간 정도 달리다 보니 차창 밖으로 무덤이라기엔 거대한 모래 둔턱이 잔뜩 보인다. 놀랍게도 이것은 재래식 상하수도 시스템이다.  로마의 수도교aqueduct처럼 경사진 수로를 만들고 물을 먼 곳에서 이동시키는 일종의 송수로이다. 다만 아치로 이루어진 지상의 다리bridge가 아닌 지하터널. 이유는 지상에서 물을 흐르게 하면 지역특성상 이동하는 도중에 다 증발해서 물이 각지로 전송이 불가하기에 지하로 통하게 하였다. 이런 언덕진 부분에 지하로 내려가 수도관을 점검할 수 있는 입구가 있고, 그 중 몇 개는 우물로 쓰이도록 도르래가 설치되어 있다. 궁금증이 폭발한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 본다.

모든 언덕이 다 출입구는 아니다. 10~15개정도 언덕을 점검하는 한 단위으로 보면 된다. 저기 입구가 보인다.

언덕으로 올라가서 물을 퍼올릴 수 있도록 도르래가 설치되어 있다.

 

지하터널로 향하는 계단. 동굴자체는 폐쇠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서울 수 있다. 나는 이 공포증이 다소 있는데도 불구하고 동굴을 너무나 좋아한다. 내가 4살인지 5살에 미술학원에서 보았던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 Allegory of the Cave 때문일까.. 꽤나 오랫동안 강하게 밖혀있는 개념이자 항상 머리에 떠오르는 상이다. 미술에서 초현실주의자에 의하면 동굴은 원시적이면서도 숭고한 생존력과 생식력을 뜻하기도 한다. 인류의 언어의 기원을 찾을 때도 항상 동굴에 그려진 상형문자나 그림들을 살펴보듯 동굴은 인류에 있어 중요한 존재이다. (라스코 동굴벽화처럼). 물론 여기는 물이 지나가는 통로로 절반은 인공터널이다.

 

허리아래로는 굉장히 좁다. 다리를 교차해서 걷지 않으면 종아리로 터널 벽을 다 쓸고 지나간다.

 

우물인 부분에서 올려다 본 광경. 터널에서 횡으로 걸으면 그다지 무서운 느낌도, 폐쇠공포증도 느껴지지 않지만 이렇게 지상을 인식하게끔 위로 올려다보면, 즉 수직의 공간을 느끼는 그 때 공포감이 몰아친다. 마치 초고층빌딩 내부에서 잘 있다가도 그 유리창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제서야 고소공포증이 느껴지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이 횡과 종의 공간은 참 재미나다. 그래서인지 뉴욕에서도 하수도나 버려진 터널 내부를 직접 들어가보기도 하며 우리가 꺼리는 공간이 왜 꺼리게 되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있음으로 우리가 영위하는 지상의 공간이 가능한 것에 집중한다. 버려진 것, 감춰진 것은 추함이 아니라 헌신에 따른 숭고함이라 생각한다.

 

계속 탐험 중. 우물이 있는 부분은 저렇게 빛이 지상에서 내려오며 신성함을 준다. 차라리 저 안내등이 꺼져있었으면 좋았을걸..

 

더 깊숙히 들어가니 개인 손전등 없이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다행히 길이 대부분 직선을 취하고 있어 멀찍이 떨어져 별처럼 빛나고 있는 이 안내등 위치로 왔다. 여기서 다시 지상으로 향한다... 더 내려가면 왠지 위험할 것 같다.

잘 돌아갈 것 같지도 않은 도르래. 여성들과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게 물을 길어날랐을까. 물 나르는 것은 실은 엄청난 힘과 지구력이 필요하다. 성인 남성들이 해도 힘들어 죽겠는데 물을 나르는 것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성의 몫이었다. 세상의 어머니들께 경례  (특히 근대 이전의).

 

언덕에 올라서 본 언덕. 좌측으로 평행하게 나열된 언덕으로 여러 '물길'이 읽힌다. 이제 이곳에서의 명상은 끝내고 다시 오늘의 거점인 토드라 협곡으로 향한다.

 

이제 제법 가는 길에 작은 마을들이 많이 보인다. 한개의 큰 마을이 아니라 지하수와 오아시스의 길을 따라서 길게 작은 마을들이 군집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사막에 도착하기 전 High Atlas에서 보았던 휑한 황무지같은 마을보다는 물이 풍족하여 가게도 많고 특히 밭이 많이 보였다. (황무지는 모로코 15일 여정의 10, 11, 12편 참조.)

왠지 귀여웠던 한 편의점. 여기를 들르기 위해 잠시 내려서 마을도 구경했다. (하지만 볼건 딱히 없었다)

모로코는 정말 과일이 달고 맛있다. 그 과일로 만든 각종 쨈. 출출했던 나는 친구들과 prune과 melon쨈을 사들고 빵에 찍어먹으며 협곡으로 향했다. ㅎㅎㅎ

장을 보고 걸어가는 한 베르베르인. 이 길 하나가 사막에서 이곳에 위치한 왠만한 마을들을 다 연결하는데, 이렇게 길 양 옆으로 두세 블록에만 건물이 있고 그게 마을의 전부이다. 그 뒤로는 메마르지 않은 녹지가 있다. 이 마을의 전경은 아래에.

 

언덕으로 차를 몰고 올라오니 이렇게 마을이 보인다. 마치 보호색을 입은 것처럼 산에 흡수될 것 같다.  위로는 파란 하늘, 그리고 아래로는 싱그런 녹색의 야자수 숲과 각종 야채와 과일이 자라는 밭이 있다. 이 메마른 대지에 한줄기 물길 따라 생명현상이 있는 것이다. 사뭇 물 아끼고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20~30분을 달렸는데 여전히 계속되는 야자수+오아시스+물길과 뒤로는 아예 이제는 잘 보이지도 않는 마을 건물들. 보호색을 제데로 입었다. 산의 토양이 그대로 솟아나온듯 똑같은 색을 가지고 있다. (모바일로 보면 보일런지는 모르겠다..) 어쨋든 이 물길을 따라가면 토드라 협곡이 나타난다. 

그리고 서서히 양쪽에 보이던 산맥이 간격을 좁히더니 드디어 협곡의 형태가 나타났다. 마치 사선 두개가 하늘을 샥샥 가르는 느낌이 든다. 

저 사선의 협곡사진이 얼마나 실제로 거대한 것인지 보여주려고 하는데 마침 그 스케일감을 표현할 사진을 찾았다. 사람 두명이 암벽등반을 하고 있는데 저걸 언제 다 올라가나... 안전한 것인가 걱정이 된다. 모로코에서도 가장 난이도 있는 암벽이라고 한다. 저 둘을 아래에서 지켜보던 등반그룹에 물어보니 실력있는 암벽등반자도 저 높이를 다 올라가려면 굉장히 힘들다고 했다.

 

이 장엄한 뷰를 뒤로하고 협곡의 좁은 부분으로 이제 들어가본다. 그리고 오늘 새해를 맞이하며 보낼 숙소가 협곡 안쪽에 있다.

 

룰루랄라. 인디애나 존스 마냥 탐험가 코스프레를 하며 걸어본다. (이때 내 복장 컨셉이 젤라바 입은 베르베르인이었다. 사진은 맨 아래쪽에^^)

 

이 협곡에도 이렇게 베르베르인들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꾸불꾸불한 협곡을 이리저리 걷는 것이 생각보다 상쾌하고 명상하기 좋았다. 옆에는 개울이 있고 협곡의 모양에 따라 그늘과 양지가 교차하며 나타나기에 지루할 틈이 없다. 미국 서부의 그랜드캐년은 위에서 보면 그 장엄함이 압권이지만, 협곡 바닥에선 이게 협곡인가? 할 정도로 너무 커서 그 감흥을 잃었는데, 이 곳 토드라 협곡에선 마치 양옆의 지층이 언제라도 쾅! 하고 닫히며 나를 으깰 것 같아서 더욱 스릴있게 걸었다. 모양도 정말 계속 다르다. 어쩔때는 사선이 V 자이다가 어쩔 땐 사람을 향해 쓰러질 A형태이다.

커다란 암벽이 기우뚱. 그 아래 베르베르 아주머니도 기우뚱. 노새는 짐무게에 힘이 부치는지 기우뚱.

 

걷다보니 도착한 호텔. 역시 KASBAH (성채)란 단어가 꼭 붙어있다. 뒤로는 정말 그림처럼 협곡이 우릴 내려다 보듯 자리한다. 잠을 자는데 밖이 온통 지층의 연속이라 내가 지상에서 자는지 지하에서 자는지 알 수가 없다.

물 귀한 이곳에 이렇게 수영장도 있다. 물론 12월 31일, 아무리 아프리카 대륙이라 해도 이 추운 날 야외 수영을 즐길 일은 없었다. 대신 저 테라스에 아침 저녁으로 앉아서 협곡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다.

1층에 자리한 식당. 창문 밖으로 졸졸졸 계곡 물 흐르는 소리가 참 좋다.

 

창밖의 모습. 이렇게 가까이서 협곡의 모습과 조우한다.

 

아직 저녁시간도 한시간 넘게 남은데다 호텔에서 딱히 할 것도 없어서 주변을 친구들과 거닐었다. 딱 이렇게 사진에 나오는 만큼만 건물이 있고 이 굽은길의 끝에 더이상 건물은 없다. 한 20가구 정도만 거주하고, 30~40분 떨어진 곳에 또 이런 거주지 군집이 나타난다. 선진화된 상하수도 시스템이 없는 이 협곡 주변에서 이보다 더 큰 규모로 한데 모여살면  물을 조달하는데 지장이 있을 것이다. 건축과 도시, 그리고 그 문화와 생활방식 모든 것에는 역시 자연현상이 그 중심에 있다. 

빙빙 둘러보다가 왠 길가의 진흙탕에만 빠져서 다들 축축한 신발을 신고 호텔로 복귀하는 길. 왜 나간거지...  이제 달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며 저녁시간을 알려준다.

호텔에 돌아와서 새해맞이를 준비 중. 풍선달고 다소 학예회(?) 분위기 연출

 

그리고 열심히 식전 올리브를 먹는다. 나는 올리브 광팬. 혼자서 리필해서 3접시는 기본. 대신 짭쪼름하기 때문에 물도 많이 먹어줘야한다.

(다른 사진에 비해 음식사진은 참 내가 봐도 정성스레 촬영하지 않았다 ㅠ 조금 더 분발해 봐야겠다.)

요상하게 맛있었던 생선 수프. 아니 이 메마른 협곡에 생선이 어디서 난겨? 5시간 거리에 있는 에사우이라 해변에서 공수해 왔다고 한다. (에사우이라는 이 모로코 여정에서 2번째 마지막으로 다녀간 곳이다. 24회 연재 중 21, 22회에 나올 예정)

한국의 소고기 볶음같은 타진요리. 모로코의 와인들과 꽤 잘 어울렸다. 

그리고 시작된 춤판. 에헤라디야. 우리가 전세낸 듯 호텔에 딱 우리 그룹 10명만 있었기에 호텔직원은 물론 가이드와 운전수 아저씨들까지 다 같이 새해맞이를 즐겼다.

나랑 가장 친하게 지냈던 로레인 Lorraine. 그리고 은근히 그녀를 좋아했던 보디가드 겸 운전수 아저씨. 우리모두 사귀라고 부추겼었다.ㅎㅎ 물론 농담이지만. 이전 포스팅을 보면 이 아저씨가 얼마나 영화 "아저씨"의 원빈처럼 우리를 뒤에서 잘 보살펴 주었는지 잠시 언급했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었다. 친구랑 서로 사진찍어주기 하는데 마치 어제 저녁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보인다. 저녁에 찍었다해도 믿을만하다. 내가 입고 있는 저 옷이 젤라바 djellaba인데 지금도 가끔 집에서 추울 때 점프수트+후드티처럼 입고 지낸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한 벌씩은 구비한 각각의 전통의상은 가끔 번갈아가며 입어주면 집에 있어도 시공간을 뛰어넘어 머리속에서 여행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배웠던 레시피를 몇 가지 기억해 두어 요리를 직접하고 플레이팅도 작지만 공수해온 타진같은 것에 담아 먹어보면 그 즉시 나는 여행객으로 변신한다. 육체에 국한되지 않고 정신이 그 곳과 연결이 된다면 그 또한 여행 아닌가. 

이제 아침을 먹고 협곡의 주변 오아시스를 둘러보고 글래디에이터는 물론 수 많은 명화의 배경이 되었던 마을, 에이트벤하두 Aït Benhaddou로 향한다.

 

[Travel] 모로코 15일 - 에이트벤하두 Aït Benhaddou (16/24) 에서 계속...

 

 

** 본문의 모든 글과 사진은 직접 느낀점을 쓰고 촬영한 것인 지적재산입니다.^^ 블로그의 내용은 요약본이고 차후에 각 토픽마다 더 자세한 글과 사진들은 매체에 기고하거나 손스케치와 함께 책으로 엮을 예정입니다. 방문하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공감과 댓글은 힘이 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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