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모로코 15일 여행 - 토드라 협곡 Todra Gorge (15/24)에서
친구들 + 또 새로 친구가 된 현지인들과 함께 술과 음악을 즐기며 새해를 맞이하고 이제 1월 1일 아침이 되었다. 오늘 아침은 늦게 시작한다고 했지만, 잠을 도무지 잘 수가 없었던 나는 해뜨기 전부터 테라스에 나가서 사진 찍으며 협곡 특유의 향을 느끼고 있었다.
호텔의 테라스. 수영장은 그냥 그림의 떡이다. 1월 1일, 북아프리카도 겨울엔 춥다.
이른 아침부터 호텔 근처를 산책 중.
울러 울렁대는 strata의 벽. 이틀 내내 쳐다보고 있으니 이제는 착시현상이 절로 일어난다.
아침부터 땀 뻘뻘 내면서 기어코 협곡 정상 부분으로 올라갔다. 칼로 베어낸 듯한 이 지형은 토드라 협곡의 시작 또는 끝나는 한 부분이다. 저 야자수 숲이 협곡 내부로 빨려 들어오는 건지, 아니면 숲이 마치 빙하가 바다로 향하듯 저 멀리 평지로 전진한다. 하늘에서 보면 이 숲은 강줄기처럼 길게 뻗어있는데, 지하수와 중간중간 지표면으로 올라오는 오아시스를 따라서 발전했기 때문이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진다.
야자수뿐 아니라 어떤 부분에는 놀랍게도 은행나무처럼 노랗게 물드는 낙엽수도 존재한다. 위 사진은 오아시스와 협곡이 다소 너비가 넓게 퍼져있는 부분이라 꽤 규모가 크다. 물은 생명현상을 일으키고 인류는 저렇게 그 언저리에 달라붙어 생존하며 문명을 일으켰다. 저 몇 개의 건물 주변으로 앞으로 얼마나 더 건축물이 생겨날지는 모르지만, 물이 계속 나오는 이상 사람이 모이긴 하겠지?
이제 수많은 영화의 배경으로 유명한 아이트벤하두 Aït Benhaddou로 달려간다. 사하라 사막이 있는 내륙에서 아틀라스를 다시 넘어야 한다. 이 길의 종점은 처음에 도착했던 카사블랑카처럼 대서양을 마주 보는 휴양도시 에사우이라 Essaouira이다. 이틀 후 도착할 예정. 저 설산을 마치 오랜만에 만난 것 같아 반가웠다.
아침을 호텔에서 먹고 출발하였으나 사진을 찍지도 않았다 ㅠㅠ 계속 세계를 돌아다니는 게 일상이다 보니 무뎌져서 딱히 블로그 하게 될 줄을 그때는 몰랐었다. 아무튼 배가 너무 고파서 잠시 휴게소에 들렀다. 간식만 사서 뭐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나게 잽싸게 먹고 둘러보니 웬 가게에서 일본어로 나에게 호객행위를 하더라. 잉... 일본어는 이렇게 잘하면서 왜 한국어는 안 하는 거얏! 가게 간판에도 일본어로 뭐라 쓰여있다. (그나저나 저 청년은 마네킹처럼 움직이지도 않고 내가 떠날 때까지 계속 저 자세로 있었다.)
딱히 가게에서 구매할 의향이 생기지 않아 밖으로 나와서 또 두리번거렸다. 마침 위층에 한 아주머니가 빨래를 하는 건지 물을 촥촥 뿌리고 짜내며 어떤 작업을 하길래 올라가 보았다. 외지인을 보고 바로 사진은 찍지 말아 달라고 손짓으로 표현하셔서 그냥 구경만 했다. 아주머니께서는 각종 옷감을 염색 중이었다. 마침 많은 색 중에서도 비싸다는 인디고를 사용해서 스카프를 만드는데, 내가 한 개를 구매해도 되냐고 묻자 흔쾌히 그래도 된다고 하시면서 여러 디자인을 보여주셨다. 그렇게 해서 내 손에 들어온 푸른 스카프 겸 복면 ㅎㅎ 여러 방법으로 쓴다고 하는데 가이드가 몇 가지를 내 머리에 직접 해주었고, 나는 아래 사진처럼 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으며 저 상태로 아이트벤하두를 누비게 되었다. ㅎㅎ 저러고 다니면 현지인뿐 아니라 여행객들도 나를 붙잡고 같이 사진 찍더라...
주의: 테러리스트 아님! 지금 보니 마스크 대용으로도 좋은 듯하다. 눈 빼고 완전 봉쇄
실제로 이 푸른 스카프는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애장품이 되었다. 실제로 엄청 파랗다 (아래사진 보면)
새파란 머리(?)를 부여받고 멍하게 도로변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중.
그리고 오늘도 역시 현지인의 집에 초대받아서 얼떨결에 일정이 뒤로 조금씩 밀리게 되었다. 이번엔 미델트에서보다는 좀 더 나은 형편인 아랍계 사람의 집이다. 역시 집을 들어서면 바로 이렇게 손님을 맞이하는 응접실이 나타난다.
운전사 아저씨의 또 다른 가족이다. 미델트에서처럼 먼 사촌은 아니고 바로 친형이다. 현지인끼리는(?) 저쪽 테이블에서 오래간만에 대화 꽃을 피우고 나와 친구들은 각자 집안을 구경하라고 했다. 다른 가족분들이 친절히 안내해주며 집의 구조를 설명해주어서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 달콤한 민트 티는 당연히 두 잔을 원샷!
집은 마치 큰 한옥 대궐처럼 담벼락 안으로 여러채의 집이 곳곳에 있다. 색감이 너무 아름답다. 여기 응접실과 주방, 왼편 창문이 보이는 손님방 등은 연보랏빛으로, 2개의 중정에서 보이는 면은 모두 핑크색, 그리고 저 안으로 연둣빛 문을 통과하면 가족들이 있는 노랑과 핑크의 공간이 연달아 있다.
앞쪽에 있는 중정은 손님과 같이 사용하거나 파티를 하는 공적공간이고 뒤에 있는 이 핑크빛 중정은 고요한 사적 공간이다. 계단을 올라가면 집안 어른들의 방이 나오고, 중정과 같은 1층에는 아이들과 부모의 방들이 있다.
호텔처럼 된 것 같다. 욕실과 서재, 개인거실 등이 포함된 각자의 '방'에서 나오면 야외 공간이다. 1층에 가서 식사하는 거나 대외 활동하는 것 외에는 웬만한 일상의 모든 것이 가능한 독립된 주택과 같다. 그래서인지 정말 호텔 스위트룸이 계속 있는 것 같았다. 당연히 남의 집이니까 복도와 응접실 외에는 사진 찍지 않고 눈으로만 감상하였다.
건물이 이렇게 핑크로 채색하고 화려한 장식없이 창호와 문의 프레임은 흰색 띠처럼 처리하니 굉장히 절제된 미니멀리즘 작품 같다. 마치 핑크색 점토로 solid and void를 잘 표현한 미니어처 같기도 한 듯. (이 색채와 공간적 어휘를 보니 멕시코의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이 생각났다.)
길거리가 아니다. 아직 집의 내부이다. 이 곳으로 들어가면 또 계속 방의 연속... 벽은 채색하지 않고 대신 문을 하늘색으로 칠하여 포인트를 주었다. 언뜻 보면 집의 '방'처럼 느껴지진 않을 수 있는데 호텔처럼 오히려 가족들 각자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으니 좋을 수 있겠다 싶다. 그나저나 모로코엔 다양한 고양이가 정말 많다더니 가면 갈수록 고양이 보는 횟수가 늘어간다. 이후 에사우이라에서는 (섹시한, 귀여운, 살찐, 잘생긴, 나쁜, 처량한, 무서운, 사랑스러운) 고양이 사진이 꽤 많을 것이다 ^^
집의 테라스에서 이렇게 밖이 보인다. 이 집만 꽤 잘 되어있고 밖은 마치 미델트에서 본 풍경과 비슷하다. 이제 슬슬 다시 나가야겠다.
집 근처에 와르자잣 Ouarzazate이란 도시를 통과하며 아이트벤하두를 향한다. 버스다! 하도 자연 속에 푹 빠져있다가 나오니 저 버스를 보는 것만 해도 왠지 신문물을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친구들도 와! 버스다! 하면서 사진을 찍더라. 버스가 뭐라고 ㅎㅎ
흔한 모로코 마을의 풍경
모로코의 4대 황도인 페스, 마라케시, 라바트 그리고 메크네스의 광장에 비하면 완전 썰렁하지만 구석구석 돌아다니면 꽤 재미있긴 하다. 여기는 관광객이 적으면서도 적당히 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어서 여유롭게 souk를 돌아다닐 수 있다. 물론 바가지 씌우는 일도 상당히 적었다. 최악은 역시 마라케시. 거기서는 일단 반 이상은 깎는 것을 생각하고 '흥정 전투'를 시작해야 한다.
맛난 과일이 잔뜩 담긴 꾸러미. 내용물이 조금씩 다르고 실제 수량도 달라서 복불복이다. 아무거나 집으면 10 디르함, 약 1200원이다. 생각해보니 엄청 저렴하다. 마라케시도 당연히 한국에 비하면 저렴한데 와르자잣은 너무 저렴하다. 내가 고른 꾸러미 속에는 바나나, 살구, 자두, 오렌지, 그리고 감이 각각 2개씩 있었다. 과일 5종류 2개씩, 총 10개가 단돈 1200원이다. 여기 살면 과일은 매일 한가득 먹겠군.
지나가다가 또 다른 파란 머리(?)를 발견했다. 나만 이상한 것이 아니었군!
와르자잣은 간단히 둘러보고 늦은 오후에 서둘러 아이트벤하두로... 슝슝
이렇게 이상하게 꿈틀대는 산맥을 지나니...
와. 바벨탑이 올라가는 듯한 형상의 아이트벤하두가 보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도착한 아이트벤하두!!
글래디에이터 Gladiator, 왕좌의 게임 Game of Thrones, 소돔과 고모라 Sodom and Gomorrah, 오이디푸스 렉스 Oedipus Rex, 나자렛의 예수 Jesus of Nazareth, 미이라 The Mummy, 킹덤오브헤븐 Kingdom of Heaven, 페르시아의 왕자 Prince of Persia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하다. 이 사진에서 그 영화의 장면들이 느껴지는가. 마치 지금이라도 저 성벽을 향해 적군이 몰려 갈 것 같기도 하고, 왕좌의 게임의 데너리스나 산사가 칼을 들고 무언가를 외칠 것 같다. 또 도시 모습 자체가 고전 명화의 한 장면 같아서 영화 세트장으로 성장한 도시 같기도 하다. 이 곳을 크사르 Ksar라고 하는데 뜻은 요새화 된 도시를 말한다. 무려 11세기부터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 이 도시는 대서양, 이베리아 반도, 사하라, 사하라 이남지역을 잇는 지정학적 위치상 많은 카라반 (아랍 상인단)들이 지나가기도 하고, 때론 외세의 침략이 많았다. 그래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모로코 지역의 전통 건축방식 중 하나인 점토 건축으로 점점 요새화 되었고 현재의 모습처럼 도시 전체가 대지가 솟아오른 듯한 형상을 가지게 된다. 크사르 아이트벤하두는 모로코 점토 건축의 전형적인 예시를 보여주며 1987년 이후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더 자세한 설명은 다음 편에)
아! 그리고 토드라 협곡에서 새해맞이 파티를 할 동안 "1월 1일, 새해에 보통 한국에선 한 살 먹는다"라고 친구들과 가이드에게 이야기하자 그게 곧 "전 국민의 생일이 같은 것"이냐며 물어와서 해명하느라 힘들었는데... 여기서 갑자기 난데없이 서프라이즈 생일파티를 했던 좌충우돌 1박 2일은 나에게는 많이 충격적이었던 생일인 듯 생일 아닌 생일 같은 생일이었다. 이 어처구니 없는 생일 사진을 올릴까 말까 고민 중...
[Travel] 모로코 15일 여행 - 아이트벤하두 Aït Benhaddou (17/24)에서 계속...
** 본문의 모든 글과 사진은 직접 느낀 점을 쓰고 촬영한 것인 지적재산입니다.^^ 블로그의 내용은 요약본이고 차후에 각 토픽마다 더 자세한 글과 사진들은 매체에 기고하거나 손스케치와 함께 책으로 엮을 예정입니다. 방문하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공감과 댓글은 힘이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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