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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주말여행 - 테르메 발스 Thermae Vals. 초월적 시공간 속에서의 휴식 (5/6)

Brett D.H. Lee 2022. 4. 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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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포스팅: 스위스 주말여행 - 취리히에서 테르메 발스 Thermae Vals 온천으로.. (4/6)

 

 

체크인을 하고 방에 짐을 풀자마자 바로 이곳에 온 목적을 향해간다. 바로 스파에서 힐링하기와 이 곳을 설계한 피터 줌터 Peter Zumthor의 건축을 느끼기 위해서. 나는 처음 건축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던 2005년부터 당시 유명하지도 않고 딱히 미디어 노출도 없었던 그를 매우 좋아했다. 실제 지금도 그는 요정과 일하는 건축가로 별명이 있을 정도로 극도로 미디어 노출을 꺼리는 편이고, 프리츠커 상을 받기전에는 왠만한 건축학도도 그를 몰랐었다. 지금은... 다들 피터 줌터 오피스 가보려고 그 난리인데... 

 

짙은 철판과 파란카펫, 그리고 각종 붉은 계열의 가구가 세련된 레트로적 감성을 물씬 풍긴다. 오래된 것 같은, 한 모더니즘 시대의 클래식함과 현재가 중첩되는 느낌의 로비.

 

클래식한 분위기가 20세기 유럽 부자들의 살롱같은 느낌도 준다.

 

내일 조식을 먹게될 식당

 

 

바/라운지는 파랑. 식당은 빨강. 벨벳의 텍스쳐를 가진 카펫이 꽤 고급지다 (사진이 별로인 듯. 실제로 보면 진짜 보드랍고 결이 갈아있는 카펫이다)

 

 

호텔방으로 가는 복도가 보인다. 어서 짐부터 내리고 다시 나와서 호텔과 스파를 즐기기로...

 

직장동료이자 친한 동생 2명과 함께.

7132호텔 가격이 무척 비싸서... (한화로 이 방이 약 40만원, 제일 저렴한 방인데 ㅠ 비싼 방은 100~300만원도 한다)

 

호텔방에서 바라본 풍경. 아래에 스파의 지붕이 보이는데 지층이 갈라진듯한 틈사이로 빛이 떨어질 아래의 공간들이 기대된다. 

 

어디서부터 설명을 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7132호텔과 Thermae Vals의 전체적 설명 후 스파 내부로 들어가야겠다.

우선 호텔방에서 본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스파부분인 Thermae Vals는 어찌보면 땅 아래로 파고든 느낌이고 7132호텔은 보통 건물처럼 지면위에 세워져있다. 이 둘은 따로 설계되고 지어진 개별적인 것인데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간다. 당시 독일 부동산 개발업체인 Karl Kurt Vorlop은 스위스에서 판매되는 Valser 광천수에 물을 공급하는 천연 온천과 수원을 활용하기 위해 1,000개 이상의 침대가 있는 호텔 단지를 건설했다. 7132는 그 중 하나일 뿐, 실제 이 호텔 근처에 호텔이 여러개 자리하고 그 사이사이에 각종 온천이 있는데, 당시엔 그렇게 지면에 있는 온천 리조트로 성행했다. 그러나 개발업자가 파산한 후, Vals 마을은 1983년에 개발 중인 5개의 호텔을 구입하고 온천의 근원에 있는 5개의 호텔 중간에 수치료hydrotherapy 센터를 의뢰했고 그중 이 테르메 발스Thermae Vals가 피터 줌터에게 왔고, 설계에서 완공까지 3년 (1993-1996)이 걸렸다.

내부는 정말 럭셔리하게 했지만 외부는 원래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하였는데 다소 낙후되어 보이는 7132호텔의 외관. 왜 이 곳의 숙박비가 수십에서 수백만원까지하는지 와서 경험을 해봐야 안다. 근대의 유럽 귀족이 된 느낌이고 나 또한 산속의 요정이 되는 것 같다.

 

레스토랑에서 파티오로 나와 식사도 가능한데 이때는 추워서 그냥 동글동글한 테이블만이 휑하게...

 

호텔에서 보면 스파는 보이지도 않는다. 다 지면 아래에 있는 듯한데, 경사에 지어서 절반은 지면 아래 절반은 2.5층 높이로 솟아서 경치를 즐길 수 있다.

 

90년대는 물론 2009년 프리츠커 상 (건축계의 노벨상)을 수상하기 전까지 무명이었던 피터 줌터. 바로 이 테르메 발스가 줌터에게 프리츠커상을 안겨주었다. 그는 앞서 언급했던 요정과 숨어서 설계하는 느낌이 있다고 할 정도로 신비주의에 싸여있는 건축가인데 재료와 공간, 모든 것의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건축을 보면 고요하고 엄숙하지만 대자연Mother Nature에 감싸주는 부드러움을 제공한다. 테르메 발스는 겉보기에는 아주 평범하고 돌이 가득 쌓인 것 같지만 이 정적인 공간을 실현하기 위해 수준높은 디테일의 완성도가 숨어있다.

 

호텔 쪽 경사에서 본 입면

 

이 곳은 자연 동굴이나 채석장을 연상시키는 원초적인 공간과 형태감이 있으며 시간을 초원한다. 내외부가 적절히 교차하며 공간의 오름과 내림에 따라 물의 높이, 온도, 깊이 등이 그것을 통과하는 우리 육신과 관계하며 황홀하며 말문이 막힐 것 같은 숭고함을 선사한다. 

 

지역에서 채굴하는 규암 6만여개를 단순히 외장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겹겹히 쌓아서 전체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그래서인지 마치 석벽에 둘러싸인 동굴 느낌을 내며, 그 틈 사이로 비치는 빛의 향연이 더욱 성스러움을 자아낸다. 이 석재들은 매우 세심하게 조합되는데 3개의 높이가 다른 판이 다양히 배열되며 각 공간의 비율, 규칙을 만든다. 경사면에서 반정도가 땅을 파고드는 듯한 스파는 앞쪽에서는 그 형상을 드러내지만 호텔쪽에서는 '지하'여서 잔디밭 아래로 마치 용암이 만든 빈 공간, 혹 고고학 유적지 같다.

 

평면도. 보다시피 두툼한(?) 암반 사이사이로 수공간과 동선이 배치되어있다. 물의 온도도 다 제각각. 5가지라고 되어있는데 33도인 부분 때에 따라 25~35도 사이를 왔다갔다한다.

 

단면도. 땅속에 살포시 안긴 스파의 모습. 천장의 '틈' (skylight)에서 떨어지는 빛은 정말 예술이다.

 

이제 실제 내부로 고고!

 

** 참고로 스파에선 절대절대! 사진촬영 불가하다. 이곳저곳에 사진촬영 금지라고 적혀있는데 휴대폰 하나정도 가지고 가서 야외쪽에 나가서 산을 배경으로 찍는건 또 뭐라고 하진않지만, 휴대폰 소지하고 있음을 알게되면 오신 다른 손님들이 매우 싫어하므로 자제하시길... 사람이 많이는 없었어서 건축적 영감이 있나해서 조금만 찍었다 ^^;;; 그래서 설명 중간중간 archidaily나 divisare에서 가져온 사진도 있음** 

 

카메라는 없고 이 때 핸드폰이 망가져 옛날에 쓰던걸 급히 사용했어서 화질이 좋진 못하지만 오히려 이 낮은 화질이 공간의 캐릭터를 잘 표현한다.

살짝 좀비영화의 한 장면?같기도 한 석재로 가득한 지하로 내려가는 듯한 공간 (실제는 지하는 아닌 지하인듯한 층)

 

벽면에서 미네랄이 포함된 미지근한 물이 또르륵 흘러내린다. 일부러 만든 디테일인데 자연과 건축의 시간성을 보여주듯이 점차 저 녹슨 부분이 자라나고 있다. 왼쪽 문은 5개의 마사지룸. 이 복도를 지나면...

 

이렇게 자연과 인공물(건축)이 혼연일체되어 숨막히게 아름다운 공간이 나타난다. 넓게 디자인된 계단을 천천히 descend하면서 천지인을 느끼는 시간을 가진다. 각각의 '방'이 곧 지붕을 떠받치는 구조인데, 마치 암반이 지탱하며 만들어내는 지하동굴과 같으며, 시각적으로 공간을 횡으로 뿐아니라 종으로도 나눠주는 것이 바로 천장에서 길게 틈을 따라 내려오는 빛이다. 평면도에서 보았듯이 각각의 직육면체 방/공간/구조에 따라서 천장 plate들이 "떠다니고" 그 사이사이를 빛이 메워준다.

 

 

스파 중심에 있는 메인 풀.  여긴 푸르스름한 빛이 한가득이네. 수심은 1.2m정도로 깊지 않은데 천창에서 내려오는 푸른빛과 때문인지 깊은 심연처럼 보인다. 실제 물 속에 들어가서 보면 전혀 파랗지 않고 그냥 투명한 물이라 바닥의 석면이 다 보인다.

 

실제론 정도의 무채색 공간. 동선의 많은 부분 또한 물이 채워져있어 흥미롭다. 그냥 건물에다가 물을 가득채워놓으면 (디자인적으로, 재난아니고;;;) 재밌겠다고 어릴적부터 상상해왔는데 정말 그런 공간을 만나서인지 너무 흥분되었다. 어쨋든 복도를 따라 가서 꺾어 실외공간으로 나가본다.

체험한 스파중에는 단연 최고. 알프스 풍경을 보며 휴식하기 딱 좋네.

 

딩굴대며 제데로 힐링 중.

 

35도랬는데 막상 온도계를 보니 40도에 가까웠다. 덕분에 아주 따뜻하게 수영(?)을 하고 저 끝에 있는 파이프에서 떨어지는 세찬 물안마도 양껏 받기.

 

멍하니 앉아서 보았던 풍경. 역시 알프스의 봉우리.

 

다시 실내로 들어왔다. 그리고 물이 가득 차있는 저 좁은 복도를 따라 온탕과 냉탕으로 향하려는데 정말 아름다운 빛에 다시 발길을 멈춘다. 이탈리아의 건축가이자 판화가였던 조반니 피라네시Giovanni Battista Piranesi (1720-1772)의 판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축축하고 어두운 지하세계가 떠오른다. 그의 그림들은 후에 건축에서의 Picturesque, Sublime (숭고), 낭만주의, 신고전주의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개인적으로 그 인간을 압도하는 '숭고', 폐허ruin에서 느껴지는 판타지에 매혹되어 이제껏 Grotto같은 건축을 찾아왔는데 그래서인지 아무도 몰랐던 피터 줌터를 나혼자 2000년대 초반부터 흠모해왔다. 움직이는 신체가 다양한 형태의 수공간을 가로지르고, 오르고 내리며 마치 어머니의 자궁에 다시 들어간 태초의 인간이 되는 듯하다.

 

천정을 이루는 모든 '판'들도 벽에서 다 떨어져있고 그 사이는 glass와 gutter 디테일로 마무리되어있다. 덕분에 이 '틈'을 통해 바깥세상, 이데아의 세상을 우러러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리저리 계단이 있고 여러 높낮이의 '물'이 '몸'을 감싸앉는다.

 

이걸 뭐라부르지? 물이 가득한 복도? 어쨋든 여기저기 방을 찾아서 걸어다니면 대략 이런 느낌. 온도가 조금씩 달라서 싸늘했다가 따듯했다 바뀐다.

 

여긴 조금 차가운 물이다. 조명도 일부러 그렇게 설치했다. 푸른 빛은 냉수, 붉은 빛은 온수.

머리가 닿을락말락하는 이곳을 통과해 들어가니 물이 더 차가워진다. 통로가 다 물로 채워져 있는데 어떻게 곳곳마다 온도가 다르지? 아마 중간중간 물속에서 오르막 내리막으로 수심을 달리해서 어느정도 온도가 다른 물을 가르나보다.

 

들어갔던 방 중에 가장 따뜻했던 곳. 오래있기엔 뜨거워서 10분만에 탈출

 

여긴 천정에서 물이 졸졸 흘러내린다. 저기 컵으로 물을 받아서 마실 수 있는데, 그냥 손으로 받아서 마셨다. 굉장히 성스러운 느낌마저 드는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공명하는 좁고 높은 방.

 

뒤를 돌아 메인 홀로 나간다. 

 

넓은 창 앞에 누워서 알프스 전경을 보며 책읽거나 명상하거나 수면을 취할 수 있는 휴식공간.

 

잠시 누워 봅시다. 그리고 노곤해져서 30분 정도 잠들었다.

 

참 운도 좋다. 인생이 희한하게 흘러간다. 이제 20년 넘게 세상을 돌아다니며 매해 여러 종류의 비자를 받아가며 공부하고 일하고 그러다가 또 떠나고... 당연히 이 삶은 처음 살아보니(?) 인생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데 일단 그냥 또 묵묵히 가고 있다.

 

넓은 휴게공간 사이사이에 이렇게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시간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 어두운 휴게공간이 있다. 숙면하겠군.

두툼한 외벽을 통해 은은히 퍼지는 빛.

 

또 자연멍을 때리는 중.

 

그리고 저녁은 와인에 취해서 사진은 없었다. 고요한 알프스 안에서 밤하늘 바라보며 바깥에 놓여있는 바위 하나에 앉아서 멍하게 있었다. 그리고 방에서 친구들과 수다.

 

아침해가 밝았다. 호텔방에서의 뷰. 똑같음 ㅎㅎ

 

아. 저 멀리 아침햇살이 산자락의 집들을 포근하게 안아주고 있다.

 

굿모닝! 우리 셋 다 기절한듯이 완전 수면.

 

호텔 조식먹으러 가는 길

아직은 고요. 

 

식당 앞에 있는 라운지. 

  

고요한 아침의 바. 저기에서 언제든 벨을 울리면 각종 음료 서빙해준다. 

방에서 계속 보이던 동글동글한 테이블에 앉을 수 있나해서 나왔는데 왜 아무도 없는지 알았다. 너무 춥다. 훌쩍.

여름에 오면 파릇파릇한 알프스를 보면서 아침식사가 가능하다. 겨울엔 실내에서 설산을 보면서 운치있게.

 

희한하게도 동양인 여행객이 우리 뿐이었다. 백인들만 있을 때 너무 사진찍어대면 눈치를 좀 주긴한다. 실은 나도 음식 사진은 잘 안찍는데 한 두장만 찍으려 했다가 포기. (여행을 그렇게 많이 다니지만 음식관련해선 지지부진한 블로거입니다... 죄송ㅠ)

 

여기는 스파는 건물 자체가 너무 멋져서 아무렇게나 찍어도 멋진데, 여기 호텔은 로비, 라운지 빼고는 디자인적으로나 분위기가 사진을 잘 받는 공간이 아니지만 약간 레트로적 감성은 분명히 있다. '60년대의 최고급 호텔'의 느낌이라 생각해보면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된다.

 

빵은 역시 장난아니군. 정말 하나씩 다 먹어보느라 배터지는 줄 알았다.

 

별거 없어보이지만 재료 자체가 최상급인 치즈와 햄, 파테, 피클, 과일, 주스 등. 담음새는 그냥 호스텔같아 보이겠지만 음식이 혀에 닿을 때 진짜 좋은 재료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음식에 전혀 민감하지도 않지만 여기 음식 정말 좋았음. 100점.

 

 

아침에 잠깐 스파 한 번 더 들어가서 즐기고 11시쯤 체크아웃하고 이제 돌아간다. 잠시 로비 책상에 앉아서 책읽기 시전. 아 하루 더 놀 수 있었다면 스파에서 책읽고 멍때리고 와인도 마시고... 그럼 좋겠지만 내일 일하러 돌아가야해서 친구 둘은 바로 바젤로 갔다가 암스테르담으로 가고, 나는 조금 강행군으로 리히텐슈타인 4시간 정도만 둘러보고 overnight 비행기로 취리히에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간다. 어쨋든 테르메 발스는 가능하다면 2박3일 추천!

 

하루 더 있었다면 여기서 공부했을 듯. 정말 마음에 드는 코너 테이블과 건축/미술 도서.

 

어제 타고왔던 일란츠행 버스에 이제 오른다.

 

 

스위스 주말여행 - 리히텐슈타인 Liechtenstein 작지만 재미난 유럽의 소국 (6/6)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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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의 모든 글과 사진은 직접 느낀점을 쓰고 촬영한 것인 지적재산입니다.^^ 블로그의 내용은 요약본이고 차후에 각 토픽마다 더 자세한 글과 사진들은 매체에 기고하거나 손스케치와 함께 책으로 엮을 예정입니다. 방문하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공감과 댓글은 힘이 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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