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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주말여행 - 바젤 현대미술관 Museum für Gegenwartskuns & St. Alban 운하 (2/6)

Brett D.H. Lee 2022. 2. 3.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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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포스팅: 스위스 주말여행 - 바젤 Basel과 취리히 Zürich를 거쳐 테르메 발스 Therme Vals로... (1/6)

 

점심식사 후 골목 여기저기 산책하듯 걸어 라인강 부근까지 왔다. 미술관은 도데체 어디있는거야? 지도를 대략 외워오긴 했지만 워낙 골목으로만 계속 걸어가니 방향감이 슬슬 없어진다. 길 방향을 잃을쯤이면 다행히 이렇게 안내표지판이 나타난다.

 

몇 백년의 세월을 머금은 이런 주택에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 낡음과 고요함에서 오는 행복감이랄까, 아니면 소소함에 대한 감사함이랄까. 번쩍이는 현대의 주거타워에 살면 과연 행복할까. 오래된 시간에 대면하면 '지금'이 더욱 잘 보이게 될텐데. 

 

여기인가? 왠지 미술관처럼 보이는 비주얼인데... 기웃대니 작가/디자이너들 작업실이란다. 위치는 완전 금싸라기 땅인데 저 건물 사이로 더 깊숙히 들어가야 미술관이다. 

 

계속 들어가는데 잉? 왜 물이 여기저기 흐르고 있지. 골목과 미술관 건물 주변은 이렇게 건물 사이로 물이 콸콸 흐르고 있다.

운하인가? 왜? 순간 베네치아가 떠올랐다. 그러나 여긴 고지대인 스위스.

 

St. Alban's Pond로 불리는 4.75km길이의 이 운하는 중세 성기(11-13세기) High Middle Ages에 지어졌다.

약 1100년에 St. Jakob 성당을 비껴 흐르는 비르스Birs 하천에서 물을 끌어와 라인강으로 빠져나가도록 설계되었다. 인공적으로 또 당시 기술로 만들다보니 물이 직접 건물과 건물사이를 마구 흐르게 되는데 이 덕분에 현재 흥미로운 볼거리가 되고 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낙차를 이용한 수력 발전으로 시에 에너지 공급을 했다. 문화적,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바젤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이 운하의 존재를 모른다. 스위스에 운하? 아마 네덜란드같은 저지대의 나라가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

 

 

운하가 라인강으로 빠져나가기 바로 직전에 거쳐가는 곳이 이 바젤 현대미술관 주변/아래이다.

 

St. Alban Pond는 철저히 상업적 운하로 사용되었는데 과거에는 12개 이상의 grain mills가 있었는데 각 물레방아를 통해 나오는 에너지는 약 800kW이상이었다고 한다. 1336년 Corporation for the Use of the St. Alband Pond, 대략 '수자원공사'개념의 단체가 설립되고 모든 수역에 대한 처분권을 가지고 있으며 바젤 시가 소유하고 있었다. 운하를 따라 금속, 목공, 탈곡, 섬유 등 공장/공방들이 자리하며 바젤의 산업을 이끌었다. 특히 종이 생산과 인쇄술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이 곳에서 인문주의 출판물이 다수 배출된다 - 예를 들어 '에라스무스 성경 Erasmus Bible'

 

천년가까이 아직도 남아있는 물레방아. 

 

정말 비좁은 길을 따라가다보면 ...

 

이렇게 살짝 트인 공간이 나타난다. 여기에 자리한  바젤 현대미술관 Museum für Gegenwartskunst.

흔히 바젤 미술관 Kunstmuseum Basel만 보고 가는데 이 곳은 건물 자체가 숨어있기도 하고 미술을 완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바젤 미술관으로 족할 듯 하다. 참고로 바젤은 세계 최고의 아트페어로 불리는 Art Basel부터 유수의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가득하여, 미술시장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이다.  

 

바젤 미술관은 게르만 문화권의 회화 ·판화의 수집으로 알려져 있다. <두 어린이를 안은 부인>과 <금발의 소년> 등 한스 홀바인의 작품이 많고, 그뤼네발트의 <십자가의 그리스도> 등 대작들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A.뒤러의 판화출판 등으로 유명한 아메르바하 일족의 수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23년 공립미술관으로 출발한다.

오늘 살펴보는 바젤 현대미술관은 1980년에 설립되었으며 주요 소장품으로는 요제프 보이스 Joseph Beuys와 브루스 나우먼 Bruce Nauman등 개념미술에 치중되어 있고 현대미술에 관한 정기 강연이 자주 주최된다. 주소는 St. Alban-Graben 16

 

공간이 워낙 좁아서 이리저리 벽에 달라붙어 찍어본 미술관 전경. 

 

미술관 건물 2개를 연결해주는 다리. 예전부터 물이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곳에 물을 채우고 들어가보고 싶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피라네시Piranesi의 grotto 스케치같은 것이 그를 알기 전부터 머릿속에 항상 머물렀다. 이런 공간이 무섭거나 불쾌할 수는 있으나 장엄함sublime이 있다.

 

미술관 입구

 

오오 +_+ 부자들이 문화를 위해 기부활동하니 이렇게 시민들이 혜택을 본다. 무료!

 

첫 시작부터 살짝 어려운 작품들. 앞서 이 미술관에 요세프 보이스 Josepth Beuys, 브루스 나우먼 Bruce Nauman, 온 카와라 On Kawara 등의 작품이 많다고 했는데, 역시 여기는 개념미술 작품이 많은 미술관이다. 개념미술 Conceptual Art은 작품의 개념이나 관념이 전통적 미학적, 물질적인 것을 선행 transcend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아마 미술을 잘 몰라도 한 번은 들어보거나 봤을 법한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의 <샘>, 아래에 보다시피 소변기이다. 예전의 미술은 한 작품, 객체가 예술가 손에 의해 혹 예술적 의도에 의해 창조되지 않았거나 유일함 uniqueness이 없는 것은 그 범주에 포함하지 않았다. 이후 조셉 코수스 Joseph Kosuth가 1969년에 쓴 수필 After after Philosphy에서 뒤샹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며 '미술은 오직 개념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뒤샹 다음의) 모든 미술은 개념적이다"라고 서술한다. 즉 작가의 발상, 그 idea가 곧 작품이다. 

프랑스에서 뉴욕으로 건너가 활동한 뒤샹, 그리고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플럭서스Fluxus와 미국의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영향으로 개념미술의 틀이 다져진다. 이 운동들은 시대적 배경과 형성 과정이 사회정 상황과 연계된다. 포스트모던의 도래라는 전환점에서 사회정치적 체제에 도전하며 미술로서 표면화 된 것이다. 이전의 미술까지 핵심이었던 시각성에 반대하며 시각적 환영 visual illusion을 거부하며 object조차 버리고 관념과 의미를 강조하여 미술의 본질을 파고든다. (언어학에서 나타난 해체와 특히 데리다의 작업이 또한 평행하게 달리고 있다.) 

 

온 카와라의 작품 One Million Years

그야말로 백만년의 연도 숫자를 기입한 책이자 작품이다. 두 권으로 되어있는데 1권에 기원전 998,031년 부터 1969년까지 (이 작품이 1969년에 탄생했다), 그리고 2권에 1993년부터 1,001,992년까지 기입되어 있다. 한 페이지당 500년의 연도가 있으며 한 인간의 일생은 한 페이지의 1/5도 겨우 될까말까이다. 이 책의 페이지들에 열거된 200만 년의 연속된 읽기는 완성되기까지 100년이 걸릴 것이다. 이 작품의 다양한 표현에서 카와라는 시간을 확장하고, 수축하고, 굳히고, 액화한다. 이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연도 페인팅'시리즈를 이해해야 한다.  

온 카와라는 1933년생으로 1959년 아버지를 따라 멕시코로 이주, 이후 유럽여행을 하고 1965년, 뉴욕에 자리잡고 평생을 뉴욕에서 보냈다. 그러던 1966년 1월 4일. 그를 개념미술의 선구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연작 <오늘>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매일의 날짜를 캔버스에 그리는데, 작품의 완성은 하루의 삶과 죽음이다. 작품 뒷면에는 그 날 신문의 부분이 스크랩되어 붙어있는데 이 지구, 세속에 '현전'하는 존재로서 자신을 기록함이 곧 작품이다.

 

어떻게든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것이 살아지는 것인지 살아내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어떻게 매일을 보내는가. 어제의 나는 소멸된 '나'이고 내일의 나는 알 수 없는 '나'이다. 시간을 지배할 수 없기에 시간과 함께 살며 인식함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는 연결고리들을 만들어 존재하는 이유를 나도 매일 만들고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 왜 이렇게 고통스럽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기억의 방'이라 해야할까. 

'망각의 방'이라 해야할까.

 

작품 자체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의미모를 구성과 형태에 마음을 내려놓았었다는 것이 기억난다.

추상적이라 오히려 위안을 얻는다. 인간적인 것, 형상에서 오는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리고 드디어 보이스를 만난다.

조각, 드로잉, 설치미술, 행위 예술 등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며 교육과 정치에서도 활발했던 독일의 예술가이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이다"라고 주장하며 '사회 조각'이란 확장된 개념을 미술 범주에 넣어 사회의 치유를 꿈꾸었다. 

 

그의 배경을 일일이 설명하기 힘들어서 위키에서 인용해옴 ㅠㅠ

"제2차 세계대전 중 보이스가 겪은 죽을 뻔한 경험은 그의 예술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비행기에서 추락하여 의식을 잃은 보이스를 타타르족이 발견하고 동물의 지방과 펠트 천으로 그를 치료해주었는데, 이 지방과 펠트는 그의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재료가 된다. 타타르족은 상처를 치료하고 몸에 온기를 촉진시키기 위해 동물의 지방(비계)을 그의 몸에 발랐고, 추위로부터 열을 보존하기 위해 펠트 천을 덮어주었다. 즉 보이스의 작품에서 지방은 생명을 주는 에너지를 상징하고, 펠트는 에너지를 보존하는 따뜻함을 상징한다. 보이스는 이러한 소재들을 사용하여 예술로서 개인적, 사회적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였다. 또, 보이스는 “모든 사람은 예술가이다”라고 주장하며 인간의 창조력을 옹호하였다. 이 말은 모든 사람들이 화가나 조각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창조적인 능력을 모든 직업에서 발견하고 계발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 때 창조되는 것은 미술관에 있는 그림이나 조각이 아니라, 바로 ‘사회’이다. 즉, 인간의 모든 삶은 예술 작업의 일부이며, 인간은 이러한 예술 작업을 통해 ‘사회적 조형물(Soziale Plastik)’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확장된 미술 개념을 통해 보이스는 현대인의 황폐하고 비인간적인 삶과 사회를 치유하고자 하였다" (Wikipedia: Beuys)

 

 

예전부터 미술사를 보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나의 인식체계를 가장 많이 바꾸어버린 보이스. 

 

너무나 유명한 작품 <I like America and America likes me> 1937.

이 작품은 1973년 그가 선보인 퍼포먼스인데, 제목만 봐도 이것이 미국의 어떤 이면을 꼬집나보다 할 것이다. 보이스는 미국에 방문하여  아래 사진과 가이 자신의 몸을 펠트천으로 감싼 후, 전시장 내부에서 코요테 한마리와 함께 3일간 동거한 작품이다. 전시장에 들어가고 나갈때는 구급차로 이동했고 퍼포먼스를 끝내자마자 바로 공항으로 이동, 독일로 돌아온 것인데 그 일련의 과정이 모두 작품에 포함된다. 펠트는 앞서 언급했던 보호와 차단, 어찌보면 단절의 상징이고 코요테는 미국 원주민 (인디언)의 상징이다. 참고로 코요테는 미 원주민들에게 오랫동안 영물이었다. 

작품이 기록된 영상을 보면, 첫날에 적개심을 보이던 코요테는 시간이 지나면서 보이스에게 마음을 열고 보이스도 펠트 천 밖으로 나와 친근감을 쌓는다. 그리고 그게 전부이다. 이 작품은 소통의 부재속에서 이루어진 미국이란 국가에 대한 보이스의 생각을 적나라하고 단조로운 형식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이면에 자연적인 것(인디언/코요테)를 변방으로 밀어내는 서구열강의 '일류'문명과 패권주의를 조롱하고 인디언처럼 자연을 형제로 살아가는 본질적 삶을 촉구한다.

 

나머지 작품들과 작가들은 각각의 포스팅으로 채워봐야겠다. 스위스에 7132호텔과 테르메 발스 스파에 가는 여정을 설명하는데 이리 어려울 수가 ㅎㅎ 이미 나의 여행기를 좀 봐온 독자라면 헛소리 또 한다고 안 읽을까봐 걱정이다 ㅠ

 

그리하여 밖으로 다시 나와서 미술관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이제 곧 저녁시간이 될 거라서 바젤에 늦게 합류할 친구를 만나기 전, 미리 와 있던 친구와 바이엘러 미술관을 짧게라도 다녀오려 한다. 내일은 바로 취리히를 거쳐 테르메 발스 Thermae Vals로 향한다. 

 

탁 트인 라인강의 풍경. 생각보다 물이 훨씬 더 깨끗하네?! 조금 하류쪽인 독일의 뒤셀도르프에 가면 물이 탁하던데...

날씨 때문인가~

 

강바람 휘날리며... 

혼자 걸어요...

 

다시 굴다리를 지나서 시내로 향한다. 바이엘러는 조금 멀어서 트램을 타야한다. 강 건너 마을 어딘가. 25분정도 탔었는듯...

 

바젤 뮌스터 대성당 Basel Minster

바젤의 주요 랜드마크이자 관광명소 중 하나로, 붉은 사암 건축물과 색색의 기와, 두 개의 슬림한 탑과 주 십자형 플랜의 지붕은 바젤 시의 스카이라인을 장식한다.  원래의 성당은 1019년에서 1500년 사이에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1356년 바젤 지진으로 파괴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후기 건물은 요하네스 그문트에 의해 재건되었다. 독일 울름Ulm 민스터 타워와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의 건축가인 울리히 폰 엔싱겐Ulrich von Ensingen이 1421년부터 건물을 확장하였고 지금의 모습에 가까워진다. 한스 폰 누도르프는 1500년에 남쪽 타워를 완성했다. 현재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시계탑. 위에 해시계와 아래 기계적 시계가 함께 있는 것이 새롭다.

 

다소 썰렁한 광장?

키리코의 그림 같구만.

 

트램찾아 삼만리. 어디에 가야 바이엘러 미술관으로 가는 트램을 찾나. 저 멀리 다시 바젤 시청이 보인다. 저 앞에 트램 라인이 죄다 있었는데. 그리 가봐야겠다.

 

결국 다시 아침에 지나쳤던 곳에 도착. 시청 바로 근처에 있는 Basel Historical Museum 바젤 역사박물관이 보인다.

형태에서 알 수 있듯 예전에는 Barfuesserkirche (Barefeet Church) 직역하면 '맨발의 교회'로 존재했었다. 

이 앞에서 트램타고 25분간 강 건너 바젤 외곽에 맞닿아있는 리헨 Riehen으로 향한다.

 

트램을 타고 고고고!

 

바젤 시내에서 아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 (트램으로 25분 걸림). 도착하니 한적한 시골마을 리헨 Riehen의 주택가가 눈에 들어온다. 2008년 엄마와 함께한 유럽 미술관여행 중 바젤에서의 일정이 밀려서 허겁지겁 왔지만 문 닫기 20분 전에 도착하는 바람에 건물의 외관만 멍하게 쳐다보았다. 정말 아끼고 아끼면서 여행을 하던 때라 엄마가 무척이나 안타까워했던 것이 그 당시 노을과 겹쳐진다. 세월이 지나 혼자 다시 이 곳에 오니 감회가 새롭고 괜시리 미안해진다. 꼭 스위스 여행은 부모님 다 모시고 오리라 결심한다. 아무튼 이 바이엘러 미술관은 렌조 피아노가 설계했는데 그래서 더욱 두근거림.

  

울타리? 같은 벽이 아주 인상적

이제 그 내부로 고고고!

 

 

 

스위스 주말여행 - 바젤 바이엘러 미술관 Beyeler Museum & 취리히 Zurich 걷기 (3/6)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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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의 모든 글과 사진은 직접 느낀점을 쓰고 촬영한 것인 지적재산입니다.^^ 블로그의 내용은 요약본이고 차후에 각 토픽마다 더 자세한 글과 사진들은 매체에 기고하거나 손스케치와 함께 책으로 엮을 예정입니다. 방문하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공감과 댓글은 힘이 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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