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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 하를렘 Haarlem의 미술관과 박물관 - 1화 프란스 할스 (1/4)

Brett D.H. Lee 2021. 4. 19.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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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화창했던 또 비내리는 운치속에서 거닐었던 암스테르담 근교의 소도시 하를렘Haarlem에 대해 소개합니다. 유럽에 살 동안 하를렘은 4~5번 갔었는데 정확히 미술관과 박물관만 콕 찝어 갔던 2번의 주말여행을 바탕으로해서 꾸려보았습니다.^^

 

- 4회에 걸쳐 소개할 하를렘의 미술관과 박물관 -

프란스 할스 미술관 Frans Hals Museum

테일러 박물관 Teylers Museum

돌하우스 정신의학박물관 Het Dolhuys (The Crazy House)

드할렌 박물관 De Hallen Haarlem

아드리안 풍차 Windmill de Adriaan

ABC 건축센터 ABC Architectuurcentrum Haarlem

 

아무래도 덜 알려진 도시이다보니 이 장소들이 생소할 수는 있는데요. 그나마 프란스 할스의 명성덕분에 미술관은 그나마 알려진 듯 합니다. 다른 나라들과 달리 네덜란드에서는 아무리 작아도 도시/마을마다 꼭 있던 것이 바로 의학박물관과 건축센터입니다. 근대 의학과 건축에서 한 축을 크게 담당했던 네덜란드이기 때문일까요. 방문했던 순서대로 거닐듯 소개해보겠습니다 (목차는 방문객이 일반적으로 많이 가는 '인지도' 순서)  이제 하를렘으로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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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관련 포스팅  몇 가지 다시보기*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반고흐미술관, 국립미술관

네덜란드 - 레이든 Leiden  미술관과 박물관

네덜란드 - 네이메헨 Nijmegen 발크호프 미술관

독일 - 본Bonn의 미술관과 박물관

등등~~ 

이미 보셨다면 아래 본문으로 바로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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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네덜란드의 주말이다. 최근 계속해서 비가 퍼붓더니 꽤나 기온이 떨어졌다. 주말내내 화창하다는 소식에 새벽에 일어나 이불빨래를 하고 아침을 차리는 중. 나의 네덜란드 집은 정말 전원일기나 중세수도승의 일지에나 나올법한 곳이다. 아침에 빨래를 널고나면 혹시나 새가 위에 앉을까봐 항상 걱정이다. 커피를 내리고 홀짝대면서 빨래쳐다보기.

 

집 주인이 남겨주고 간 형형색색의 각종 이불시트. 하숙집 주인이 컬러를 매우 좋아하나보다. 덕분에 뭐 컬러풀하게(?) 이 곳 생활을 즐겼다. 

 

이제는 아마 외우다시피 매일 찍어댄 집 앞. 머물렀던 3개의 암스테르담 집 중에서 단연 이 곳이 최고이다. Rudolf Dieselstraat

 

그럼 이제 집 앞의 암스텔 Amstel역으로 고고고! 왠일로 햇빛이 암스테르담에 이렇게 강한건가.

 

아침먹고 청소하고 하다보니 10시가 넘어서야 출발.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지나 20분 정도 더 가면 하를렘이다. 실은 매우 가까운 위성도시.

참고로 뉴욕의 할렘지역의 어원이 바로 네덜란드의 하를렘 Haarlem이다. 뉴욕이 원래 네덜란드 식민지이던 시절이 있었고 뉴암스테르담으로 불렸었다. 영국에 패하지만 않았다면 대영제국이 아니라 대네덜란드제국이 있었을 것이고 미국의 언어가 네덜란드어가 되었을 터. 아마 그랬다면 한국에서 전부 네덜란드어 배우는데 혈안이 됬을것이다.^^ (배워봤는데 영어보다 훨 어렵.... ㅋㅋㅋ)

 

와아~ 저 멀리 아드리안 풍차 Molen de Adriaan 가 보이고 그 뒤로 우뚝솟은 하를렘 대성당 De Grote of St. Bavokerk te Haarlem. 하늘이 정말 그림같다. 

 

하를렘 중앙역. 여느 소도시처럼 정겨운 타일벽화가 있는 작은 기차역 모습이다. 딱 이 렌즈에 담긴 정도가 전부. 저 뒤로복도로는 역 플랫폼들도 나가는 길이 조르륵 있고 그 사이사이에 가게들이 있다.

 

하를렘 중앙역 파사드의 모습. 

 

바로 앞에는 이렇게 시내 곳곳으로 연결하는 버스들이 있다. 질서정연하게 줄 지어진 플랫폼에는 어디어디를 가는지 약도가 있다. 교통 참 편리하게도 되있네.

 

그리고 중앙역 앞 광장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방향에 놓여진 이 동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1572년 12월 11일부터 이듬해 7월 12일까지 스페인의 하를렘 포위작전 당시 이 두사람이 하를렘을 지켜내는데 일등공신이었다고 한다. 이들의 이름은 Captain Wigbolt Ripperda (1535-1573)와 Kenau Simonsdochter Hasselaer (1526-1588)이다. 네덜란드어 명칭은 너무 어려워서 발음하기 힘들때가 많다. 어쨋든 캡틴 리페르다는 당시 오라녜 Orange (현 네덜란드 왕가) 공작의 명을 받아 이 곳을 사수했다. (*참고로 한국에서 '오렌지 왕가', '오랑주 공국' 등으로 표기가 마구 혼용되는 것을 보았는데 영어로서의 발음 문제를 떠나서, 프랑스어나 네덜란드어로도 'Orange'라고 표기하고 프랑스어로는 '오랑주'에 가깝게 발음이 되고, 네덜란드어로는 '오라녜'로 발음된다. 명칭가지고 길게 말하는 것 같지만 필자는 각 나라의 말에 맞추어서 표기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영어발음이나 외래어표기법에만 맞춘다면... 그렇게 따지면 독도를 Dokdo라고 하지말고 영어권이 알기 쉽게 Liancourt Rocks로만 하자고 하는 것과 비슷할듯. 다시각적으로 표기가능한 것을 알려주는 것이 그 언어권/문화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렇게 주요 볼거리 방향표시. 돌하우스 정신의학 박물관만 완전 반대편이라 가장 마지막으로 보기로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를렘하면 여기만 떠오를 정도로 가장 강렬했던 경험을 했던 곳이지만)

 

자전거들의 향연. 일요일 아침부터 어딜 이리 다니시나~  

 

나른한 브런치 풍경. Chocolate Company.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해주었는데 나는 오늘은 패스.

 

한 15분정도 천천히 걸어가니 대성당 광장이 저 끝에 보이기 시작한다 자전거 탄 일행은 계속해서 내 앞에서 씽씽 달리고 있고.

 

날이 화창해서 그런가 엄청 북적이고 있다. 바글바글한 소리가 광장에서 메아리치는 수준. 마치 네덜란드 황금기 시절의 모습이 떠오르는 그런 날씨와 분위기이다. 마켓 스탠드들 뒤로 우뚝 솟은 성댕과 예전에 각종 길드guild에서 사용했던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광장에 도착해서 하를렘 시청 1.5층에 있는 관광안내소를 들어가보았다. 관광객이 되고 싶어서는 아니지만 그냥 그 도시를 알리는 곳의 풍경과 상태가 어떤지 궁금하기 때문에 눈에 띄면 항상 들어가본다. 여기서 지도나 한장 얻어나왔다. 그리고 아래처럼 끄적끄적 (아래는 블로그에 올린다고 컴퓨터로 끄적인 것 ㅎ)

 

하를렘 지도위에 내가 방문했던 곳을 끄적끄적. 첫 주말에는 오전 11시쯤에 내려서 도시구경 및 프란스 할스 미술관과 ABC 건축센터만 보니 이미 저녁시간이 다 되기도 하고 회사에서 호출이 오는 바람에 일찍 떠났다. 그리고 그 다음 주말에 날씨가 매우 흐렸지만 그 우중충함을 느끼면서 다시 하를렘을 찾았고 그 때 드할렌부터, 테일러 박물관, 아드리안 풍차, 그리고 마지막으로 돌하우스 정신의학박물관을 보았다. 오히려 좋았던 것이 프란스 할스나 건축센터의 분위기는 화창한 날과 매우 어울렸고, 테일러 박물관과 돌하우스는 비내리는 어두운 분위기가 오히려 이 두 박물관 특유의 '으스스함'을 돋보이게 하였다. 테일러 박물관은 프랑켄슈타인이 튀어나올 것 같은 고성분위기이고 돌하우스는 어디 외딴 정신병원에 내가 갇혀버린 느낌을 제데로 주었다.

 

(그 무서운(?) 스토리는 3-4화에 나오니까^^ 쭈욱~ 포스팅을 봐주세요!)

 

안내소가 1.5층이라고 했는데, 왜냐하면 반층정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계단을 내려가기전에 안내소 입구에 서서 내려다보면 이렇게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너무 높지도 않고 광장의 사람들 구경하기엔 딱 적당한 듯. 각종 치즈냄새, 고기와 생선비린내, 꽃의 향기, 그리고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소리가 이 광장을 가득채우고 있다. 지금 상상만해도 그 "꽉참"은 그대로 나의 감각을 건드려준다.

 

하를렘 도심의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야 프란스 할스 미술관이 나온다. 광장을 빠져나와 이렇게 생긴 운하 다리를 2번 더 건너면...

 

이렇게 프란츠 할스 미술관이 있는 좁은 골목길이 나타난다. 이 길의 중간쯤에 있다.

 

반대편 벽에 딱 붙어서 촬영해야 나오는 미술관 앞의 모습. 빨강과 초록, 보색조합의 창문 셔터와 위에 연두빛 유리를 사용한 clerestory와 함께 굉장히 독특하다.  약간 형광펜으로 칠한 느낌?

 

프란스 할스 미술관 입구. 깊숙히 빨아들이는 듯한 이 입구 안으로 들어가본다.

 

좌측 우측으로 전시실이 있는데 일단 로비는 오른편에 있다. 어차피 한 바퀴 빙 돌아서 원점으로 오게 된다. 그리고 이 뒤로 계속 전진해서 중정courtyard로 나가면...

 

정말 멋진 정원이 나타난다. 와! 깔끔하다.고 느꼈다. 이 저택같은 건물의 명칭은 '오우데 만넨후이스' Oude Mannenhuis on the Groot Heiligland 이다. 이 곳은 1609년 hofje (중정이 있는 이런 건물의 형식)로 지어졌고 30개의 작은 집들로 이루어져있었다. 각각의 집에는 노인 남성 2명씩 거주하는 일종의 요양원같은 시설로 운영되었는데 1664년 할스가 이곳의 노인들을 그린 초상화가 여기에 전시되어있다. 그리고 실은 원래의 건물은 메인 홀을 제외하곤 거의 다 개조되어서 17-20세기의 모든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1810년에서 1908년까지 고아원으로 운영되며 구조가 변경되었다. 1862년부터 하를렘 시청 뒤편의 도미니카 교회에 있었던 원래 프란스 할스 미술관이 확장하며 1913년에야 이곳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고아원이 사라지게 되며 이 멋진 건물이 약 5여년간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어쨋든 1913년에 여기에 새 둥지를 튼 프란스 할스 미술관은 곧 이어 1950년 미술관이 현재 하를렘 광장에 위치한 De Hallen 분관과 분리되어 2개의 독립체로 운영되었지만 다시 2018년에 합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이곳은 중정이 있는 hofje의 단어에서 파생한 Hof 라고 하고 현대미술관으로 된 De Hallen은 Hal (말 그대로 큰 공간, 홀hall이란 뜻)이라고 부른다.  현대관인 Hal은 다음 포스팅에 나온다.  프란스 할스라는 한 작가의 이름을 콕 집어서 17~19세기의 네덜란드 미술을 보여주는 곳인데 현대미술 분관을 같은 명칭아래에 함께 둔 것이 특이하다. 그냥 독립체로서 De Hallen Contemporary Art Museum이라고 하는게 덜 헷갈리지 않나 싶다. 나도 De Hallen을 방문한 후에야 이 두 곳이 한개의 미술관임을 알게되었다.

 

정원은 그냥 아무 프로그램이 없어서 금새 들어온 미술관 로비, 티켓 카운터. 

상설전은 당연히 프란스 할스의 전시가 있고, 방문 당시 Emotions라는 기획전이 진행 중이었다. 15~18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이 표현한 인간의 표정과 감정에 대한 것이다. 당시 배경때문에라도 신학적 해석과 표현이 아무래도 많았지만 인체 해부학적 고민과 휴머니즘에 기초한 스터디도 많이 들어있다. 이 기획전은 프란스 할스 미술관 자체 컬렉션과 함께 암스테르답 국립미술관,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로테르담의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 프랑스 스트라우스 미술관, 테일러 박물관 그리고 개인 소장품 대여를 통하여 이 전시가 이루어졌다. 

 

티켓을 구매하고 바로 전시실로 입장.  꽤 사람이 있다. 대부분 노부부였다. 

 

15~18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의 각종 스케치와 사람 감정 표현에 대한 문서들이 전시 되있다. 좀 더 읽다보니 해부학 책도 몇 개 있었다.

 

크게 Suffering & Despaire (고통과 절망), Mourning (애도/슬픔), Desire (욕망), Fear & Fright (공포와 놀람), Rage & Revenge (분노와 복수), Regret & Disappointment (후회와 실망), Joy & Delightment (기쁨과 환희), 7가지 감정으로 구별하여 전시 중이었다. 

 

저 표정 무엇... 정말 얄미운 웃음이라는게 저런건가 싶다. ㅎㅎ

강한 명암과 함께한 생생한 표현력이 훅 들어온다.

 

영원히 고통받는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고통과 두려움 2개 섹션에는 당시 의술행위를 그려낸 작품이 꽤 많이 있다. 육체적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한 또 다른 고통과 의술에 대한 신비함과 두려움. 몰입되서 내 머리나 치아가 아파지는 것 같다. 

 

 

그리고 죽음이나 신의 노여움으로 인해 받는 인간의 고통, 혹 두려움.

 

그리고 당시 '더러웠던' 종교계의 모습을 꽤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품들도 있다. 예를 들어 수도승이 처녀의 가슴을 가지고 희롱하는 장면, 그리고 오른쪽 더 작은 그림에는 아예 은밀한 곳에서 치마를 들추고 성폭행을 하는데 그 뒤로 대주교처럼 차려입은 남성이 그 장면을 목격하는 것도 있다. (전시의 Desire 섹션)

 

분노Rage 섹션. 사람들이 열심히 설명을 읽는 모습이 너무 좋더라. 그림 하나하나 꼼꼼히 보고 즐기고 배우고...

 

이 작품은 조금 특이했다. 백인남성이 흑인여성을 희롱하는 중세시대 그림을 본 적이 없었는데 여기에 적나라하게 표현이 되어있다. 보면서 유색인종인 나로서는 왠지 짜증이 확... 나는 그런 그림이지만 동시에 이렇게 사실적으로 역사의 민낯을 다 밝혀주는 그림이 있는 것에 감사하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분쟁 시 증거조차 없으니까. 저 흑인 여성의 표정은 두려움과 경멸이 동시에 드러난다. 나중에 직접 명화를 감상하시길~

 

슬픔 섹션에서 가장 인상깊게 보았던 여인. 무언가 억울하고 침울한 저 붉게 퉁퉁 부은 눈.

 

그리고 기획전을 끝으로 이제 프란스 할스의 상설전으로 넘어왔다. 실은 굉장히 자연스레 이 방으로 진입...

(저 뒤로 보이는 문으로 들어오니 바로 이렇게 이어져 버린다.)

 

깜빡하고 프란스 할스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1580년 플랑드르지역 안트베르펜Antwerpen에서 태어났다 (현재 벨기에 북부의 중추적인 도시이다). 1591년 가족과 함께 하를렘으로 이주해서 여기서 전 생애를 보냈다 - 그래서 이 미술관이 여기에 생긴 이유이기도 하다. 할스는 아래에 소개할 <성 조지 민병대 장교들의 연회>를 1616년에 그리게 되며 큰 명성을 얻고 곧 초상화가로서 입지를 다지게 된다. 그는 이런 민병대, 시민군의 초상화를 약 250여 점이나 그려냈다. 물론 그도 종교화, 풍경화, 정물화, 등을 그렸지만 초상화에 특출난 재능을 보였고 유명해진 이후 평생 일거리가 줄어들 생각을 안 할만큼 초상화가로서는 굉장히 성공했지만 금전적으로는 힘들어 했다. 노년에는 자선단체에 의존해서 살아야 할 만큼 생활고에 시달렸는데 1666년 하를렘의 한 양로원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아무래도 집단초상을 그리면서 그 보수가 적었나보다... 이 부분은 명확하게 답을 찾지 못했다.

 

원래 식사하던 홀이다. 프란스 할스의 습작부터 여러 그림이 조르르륵 있다.

 

그리고 이 명작이 툭. 하고 나타난다. 

프란스 할스, 노인 구호실의 섭정 Regents of the Old Men's Almshouse, 172.5 x 256cm, 1664.

 

오우데 만넨후이스가 요양원이던 당시 할스가 이 곳의 5명의 섭정을 그린 것이다. 당시 네덜란드인의 옷차림부터 요양원에 봉사하던 당시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할스 특유희 거친 붓놀림이 보인다. 그런데 다른 명작들은 정해진 자리에 항상 고정되어 있는데 이 그림은 계속 움직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방문 당시에도 복도같이 두 홀을 연결하는 이 곳에 갑자기 나타난듯... 이 그림 외에 5명의 여성 섭정의 모습을 그린 Regentess of the Old Men's Almshouse도 이 반대편에 걸려있었는데 사진을 찍지 못했네.. 그 그림은 웹에서 받은걸로 대체.

 

 Regentess of the Old Men's Almshouse

확실히 투박한 할스의 붓터치가 화면에서 잘 보인다. 약간 어그러진 듯한 느낌을 주는 형태들.

 

그리고 그 다음 방이 바로 이 곳의 하이라이트가 다 모여있는 전시실!

 

여기서 4가지 대표작을 소개한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프란스 할스는 초상화가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이다. 그리고 이 '단체초상화'는 당시 네덜란드 황금기에서 빠질 수 없는 회화장르이다. 해상을 영국과 프랑스보다 먼저 지배했던 네덜란드, 거의 스페인 무적함대만큼 강력했고 온 세계를 다 누비고 다녔다. 현재 뉴욕인 뉴암스테르담부터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 동인도회사 설립, 아프리가 곳곳의 식민지 건설, 남미에는 현재 수리남지역을 개발 등 대영제국 이전에는 네덜란드가 지구를 호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수리남 공용어는 지금도 네덜란드어이고 인도네시아어도 문법이나 학술언어는 네덜란드어를 차용한다. 어쨋든 그 당시 네덜란드는 엄청 부유했고 귀족 뿐 아니라 능력이 있다면 누구나 출세가 가능한 진정 평등한 기회가 있던 사회였다. 그래서 많은 초상과 집당초상화를 거의 모든 중산층 이상의 국민이 그리길 원했고 프란스 할스같은 유명한 초상화가들이 각광받는 시절이었다. 

 

아래는 벽에 걸린 그림 중 4가지 집단초상화를 나열하며 간단 설명을 한다.

 

성 조지 민병대 장교들의 만찬, The Banquet of the Officers of the St George Militia Company, 캔버스에 유채, 175x324cm, 1616

시민의 의무이자 권리를 다했다는 증명을 하는 것이 당시 사회풍토였던 만큼, 시민 조직인 민병대 장교들은 시의회의 임명을 받아 3년간 복무하고 전역하기 전에 이렇게 단체초상을 그렸다. 하를렘의 주력 수출품인 고급 면직이 특히 이 그림에는 많이 나타난다 (배경에도 식탁보에도, 장교들의 옷에도). 오렌지 띠를 두른 이가 이들의 대장이고 빨간띠를 두른 장교가 그에게 말을 거는 것이 왼편에 보인다. 인물 하나하나를 다 표현해내야하는 집단초상은 일반 초상화에 비해 월등히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다. 거기에 대부분의 집단초상은 여러명이 돈을 모아서 크게 그리는 것이라 왠만해서는 2~3미터는 훌쩍 넘는다. 프란스 할스는 특히 그 솜씨가 좋아서 여기저기에 불려다니며 이런 거대한 초상화를 평생 그렸다.

 

아래에는 다른 연도에 그린 각종 민병대원들의 만찬 초상화. 이 미술관 외에 네덜란드 전역의 미술관에서 할스의 초상화는 한두점 찾을 수 있다.

 

성 조지 민병대 장교들의 만찬, The Banquet of the Officers of the St George Militia Company, 캔버스에 유채, 175x324cm, 1633

 

성 조지 민병대 장교들의 만찬, The Banquet of the Officers of the St George Militia Company, 캔버스에 유채, 175x324cm, 1627

 

 하를렘 시 민병대원의 만찬, Banquet of the officers of the Calivermen Civic Guard Haarlem, 캔버스에 유채, 183x266.5 cm, 1627

 

그림 속에 있는 상차림을 그대로 재현한 식탁. 마치 조형미술처럼 전시장 중간에 자리해서 이리저리 둘러보며 그 당시의 식탁과 생활을 상상해본다. 

 

설명을 들으시면서 열심히 관람 중인 노부부.

 

프란스 할스의 대작들을 다 보고 나면 이렇게 또 작은 복도가 나오는데 저 복도 끝이 레스토랑, 북스토어, 메인 입구로 다시 나가는 출구이다. 이 복도를 따라서 할스가 그린 초상화가 빼곡히 들어찬 방들이 나열되어 있다.

 

이제 너무 많다... 초상이 너무 많으니까 누가 누군지 보다가도 헷갈릴 지경. 그래도 각각의 사람을 열심히 연구하고 표현한 할스가 대단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그리다보면 나중에는 관상도 볼 수 있는 혜안이 생기겠다 싶다. 궁금하신 분들은 꼭 네덜란드 방문할 때 하를렘을 한 번 들러보시길. 이렇게 한 사람이 그린 수백개의 초상화를 한 번에 보는 것도 특이한 경험.

 

아무리 봐도 내눈에는 목도리도마뱀같은 당시 유행한 러프 Ruff (16-17세기)

 

저 빨간 의자가 더 갖고 싶다...

 

너무 훌륭한 전시를 보고 또 유럽에서 계속 훌륭한 미술관을 다니다 보니 이 출구가 조금 실망스러웠다. 보통 건축적/공간적으로 자연스레 출입구가 직원의 시선에 닿게해서 이런 기계적인 설비로 동선을 막지 않는게 좋은데, 여긴 지하철 입구마냥 게이트가 아예 만들어져 있다. 누가 이 미술관에서 뒤로 몰래들어간 적이 있었나? 바로 뒤에 보이는 공간은 레스토랑/카페이고 바로 옆이 뮤지엄샵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시선이 있어서 굳이 이런 기계 설비를 안 해도 될텐데. 그냥 나 스스로 너무 높인 유럽미술관 standard에 대한 기대와 믿음 때문에 푸념해보았다.

 

어쨋든 출구로 나오면 바로 카페와 강당 그리고 다시 Old Masters 전시관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다.

 

깔끔한 카페/레스토랑. 빵과 커피향이 솔솔 난다.

 

그리고 그 옆으로 이어지는 북스토어. 도록과 미술관 컬렉션 책 2권 구매!

 

다시 돌아온 로비.

 

이제 미술관을 나와서 마지막 한 컷 찰칵!

벽돌로 하나하나 쌓은 적조식 건물은 언제나 봐도 인간미가 있다. 매끈한 철골과 유리로 높게 올라가는 현대의 건물에선 시간의 개념이 없다. 즉, 여기에는 저 벽돌을 쌓은 사람들,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개조된 흔적들,  현대식 설비들이 많은 시간이 중첩되며 왠지 함부로 못하겠는 고고함을 가진다. 쉽게 만든 건물은 쉽게 부시고 재건축을 해버린다. 그래서 필자도 건축을 하면서 너무 쉬운 것으로만 하지 않으려는 (회사나 건축주가 들으면 때릴 것 같은) 경향이 생긴 듯 하다. 건축은 공간만이 아니다. 다양한 개념의 시간이 그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 한 사람의 인생이든 한 국가나 이데올로기의 시간이든. 건축센터를 그 다음에 간다고 해서 한 껏 건축이야기를 해버린듯? 그러나 이 사진을 찍으면서 들었던 실제 당시 생각이었다.

 

약 3시간정도 이 작은 미술관에서 충분하게 그림을 느끼고. 이제 이 좁은 골목을 따라 약 1분도 안 걸어가면 바로 ABC 건축센터가 나타난다. 

 

정말 프란스 할스 미술관 골목을 찍고 뒤돌아서 몇 걸음 가지도 않아 바로 나타난 ABC 건축센터. 하를렘 (역사)박물관 Museum Haarlem과 함께 운영되는지 두 팻말이 같이 있다. 다른 유럽도시도 물론 건축을 매우 중시여기지만 모든 작은 마을에 건축센터가 존재하진 않는다. 그런데 유독 네덜란드에서는 가는 곳마다 건축센터가 있더라. 이 작은 나라가 세계적으로도 건축강국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국민들이 이렇게 건축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지 않을까. 건축가인 나로서는 무척이나 부러운 사회구조이다. 건축가를 칭송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건축은 물론 '디자인'이란 단어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일반적으로 높은 것이 부럽다. 일례로 건물의 벽돌이 특이해서 내가 사진을 찍고 있으면 지나가던 아줌마 아저씨들이 벽돌에 대한 온갖 인문학적 해석을 그냥 수다떨듯이 내뱉어 내는데, 오히려 전문가여야 할 것 같은 내가 꿀먹은 벙어리가 되기 일쑤였다.

 

이제 이 건축센터 안으로 들어가보자.

 

 

네덜란드 - 하를렘 Haarlem의 미술관과 박물관 - 2화 ABC 건축센터와 드 할렌 (2/4)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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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의 모든 글과 사진은 직접 느낀점을 쓰고 촬영한 것인 지적재산입니다.^^ 블로그의 내용은 요약본이고 차후에 각 토픽마다 더 자세한 글과 사진들은 매체에 기고하거나 손스케치와 함께 책으로 엮을 예정입니다. 방문하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공감과 댓글은 힘이 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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