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이어 그 바로 남서측에 위치한 반 고흐 미술관 Van Gogh Museum을 오늘 거닐어 본다. 낮에 이곳을 방문한 기억은 엄마와 함께했던 2008년이다. 그 이후에 막상 암스테르담에 살게되자 고흐의 작품은 관광객 바글대는 낮시간이 아닌 금요일 밤이나 가끔 museumkaart 가진 사람만 들어가는 저녁타이밍에만 관람했다. 한 30번 이상 들락댔으니... 그래서 가지고 있는 고흐미술관 사진 90%는 야간 사진이 되버렸다.^^
어쩌다보니 '별이 빛나는 밤'에만 만났던 반 고흐
낮시간에 방문하면 1시간정도 줄 서는 것은 물론 내부에 빽빽히 들어찬 관광객을 마주할 각오해야한다. 한 사람으로서 너무 비참한 인생을 살았던 반 고흐는 죽어서 사라진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화가가 된 사실을 하늘에서 바라보고 있을까. 이 곳은 1973년 개관부터 지금까지 네덜란드에서 가장방문객이 많은 곳이다. 연간 150만명의 관람객이 있어왔는데, 현재는 코로나 여파로 역시 문을 닫은지 1여년...
반 고흐 미술관은 현재 2개의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위에 사진처럼 원래 입구가 있었던 네모난 형태의 4층짜리 Rietveld Building 리트벨트 건물이 1973년에 지어졌고, 1999년에 이 건물 뒤편, 공원쪽으로 증축한 타원형 건물을 일본건축가 기쇼 구로가와 Kisho Kurokawa가 설계하였다. 그 건물은 구로가와 윙 Kurokawa Wing으로 부르며 미술관의 교육센터처럼 이용되며 미술 뿐 아니라 주로 일본과 유럽의 건축, 문학, 음악, 패션 등 문화를 전반적으로 연구하는 곳이 된다. 아니 어떻게 이 정도로 일본의 힘이 강력한가. 처음에 저 둥그런 건물은 뭐에요?라고 물었을 때 직원이 Kurokawa Wing입니다 하며 ㅎ안내하는데 온통 일본식 디자인이 있는 팜플렛을 건냈을 때 나는 너무 놀랐다. 반 고흐 미술관의 절반을 일본인이 짓고, 일본문화를 연구하고 건물이름도 아예 일본이름. 고흐는 물론 당시 모더니즘의 화가, 건축가, 시인 등 많은 유럽 엘리트 집단들이 다 자포니즘Japonism에 빠져있었음을, 또 그 영향으로 서구의 모더니즘 자체에 일본이 깊숙히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도 일본은 세계무대에서 문화강국으로 굳건히 자리한다. 한국인인 나로서는 어떻게 분발해서 이런 위치까지 갈 수 있는지에 대해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죄송하게도 이야기가 한 쪽으로 새어나갔다. 세계 곳곳의 미술관을 다니다 보면 일본이 너무 대단했음을 계속 맞딱드리게되서 가끔은 짜증나는 경우가 생긴다. 역사가 이미 그렇게 흘렀는데 어찌하리오... 어쨋든 이 두 건물은 독자적으로 있다가 2014년 지하로 연결되고, 이 계란같이 생긴 구로가와 윙을 메인 입구로 사용하기를 승인하며 2015년 9월에 완공하였다. 슬프게도 2015년 7월에 암스테르담을 떠났어서 나는 두 건물을 따로따로 보았고 새로 생긴 입구는 공사 중인 것만 보았다 ㅠ 언제가 또 가리라...
뮤지엄플라인에서 바라본 구로가와 윙, 현재 메인 입구와 그 뒤로 보이는 모체인 리트벨트 빌딩. 현재도 전시는 다 리트벨트에서 진행한다. 입구의 위치가 길가에서 공원쪽으로 이동하며 지하 공간이 약간 국립미술관처럼 넓고 확트인 천창으로 구성된 것 뿐.
건축가가 아니고서는 건물을 말로만 설명해서는 위치가 헷갈릴 수 있어서 건물 도면에 간단히 끄적인 설명. 기존 입구는 바로 전시장으로 연결하는데, 도로변이다. 구로가와 윙은 푸르른 녹지를 바라보는 새 입구를 가지며, 두 건물은 뻥 뚫린 지하 공간으로 연결된다. 생각보다 훨씬 크더라.
새 입구. 국립미술관처럼 반지하이다. 그러나 위가 전부 다 유리라서 아주 쾌적하고 드넓은 홀이 되었다. 뒤로 새로 단장한 뮤지엄 샵이 보이고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면 각종 교육시설이 있다. 이 구로가와 윙은 대강당도 포함하는데, 저녁에 전시관에서 하는 뮤지엄 나잇 외의 다른 큰 이벤트는 여기에서 개최한다. 아 그리고 특별 기획전을 하는 전시실은 여기에 따로 마련되어있다.
뮤지엄플라인 museumplein 공원 주변에는 참 많은 문화시설이 있다. 남서쪽부터 올라가며 Het Concertgebouw 왕립극장, Stedelijk Museum 시립미술관 (모던/현대미술), Van Gogh Museum 반고흐미술관 그리고 가장 위쪽 도심으로 연결되는 쪽에 Rijkjsmuseum 국립미술관.
참고로 네덜란드에서 미술관 3개 이상 갈거라면 이 1년권 museumkaart를 그냥 사는 것이 이득이다. 단 돈 64.9유로 (10만원도 안됨)으로 1년 내내 네덜란드내의 400개 미술관과 박물관을 그냥 계속 들어갈 수 있다! 정말이지 막상 거주하면 모든 것이 저렴한 유럽이라는 말이 실감된다 (물가도 저렴해서 집에서 요리해먹으니 너무 저렴했다, 북미보다도!). 어쨋든 2015년 당시엔 50유로였던 이 카드로 금요일 밤마다 고흐의 그림 앞에 있으려고 자주 들렀다.
그냥 들어가면 반 고흐 입장료는 19유로, 18세 이하면 무료이다.
밤이면 흰 벽에는 항상 이렇게 프로젝션을 쏘아댔다. 계속해서 고흐의 얼굴, 작품들, 또 각종 콜라보된 그래픽이 멋지게 미술관 내부를 장식하며 관람객을 맞이한다. 1층 로비에는 음악을 틀고 주류를 판매한다. 이브닝 파티같은 분위기에서 매주 금요일 저녁은 고흐와 마주했다. 결국 1년 내내 낮시간에 원래 미술관을 보질 못해서 어쩌다보니 이 미술관은 항상 레이져쇼하는 느낌으로만 기억한다 ㅎㅎ 물론 전시관으로 들어가면 평소와 다르진 않다.
****************************
이번 포스팅은 퇴근 후 여기로 들렀다가 집으로 가는 것을 그대로 소개하겠다. 웰컴 투 마이 라이프 인 암스테르담.
참고로 네덜란드 대부분의 미술관에서는 사진촬영이 가능하다, 하지만 반 고흐 미술관만큼은 절대 허용하지 않으므로 몰래찍었던 몇 가지만 공유하고 나머지는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작품이미지와 함께 설명하겠다. 물론 미술관 로비에서 보이는 부분의 작품과 전경은 찍어도 되므로 그 쪽 사진은 대방출.
인터넷으로 다 찾아볼 수 있는 반 고흐 미술관의 모습이 아닌 현지인으로서 매주 밤마다 보았던 특별한 미술관 모습으로 다른 블로그와는 차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회사. UNStudio. 그리운 회사이기도 하다. 퇴근은 그러나 진리! 빨리 나와서 삶을 영위해야지!
원래는 올리면 안되는 사진이었는데, 이제 저 화면에 내가 작업했던 건물도 이미 3년전에 다 완공되어 사용되고 있다. 베를린에 있는 몰mall이다. Berlin East Side Mall. 혹시 어떤 건물인지 궁금하면 검색해보시라~ 따지고보면 내가 겉핡기 식은 아니고 쭉 한가지에 몰두해서 완공한 첫 프로젝트이다. 파사드 (건물입면)만 했지만 아주 재밌는 경험이었다. 이제 퇴근! 네덜란드는 해가 매우 길다. 실은 유럽 대륙 전체적으로 위도가 만주벌판쯤에서 더 위쪽인데 난류의 영향으로 날씨가 동북아처럼 추운 것이 아니다. 또 북미로 비교해보면 이탈리아가 캐나다 토론토가 같은 위도. 그래서 여름엔 해가 무척 길어 밤 10시는 되야 노을이 지고, 겨울엔 너무 짧아서 점심먹고 조금 지나면 어두워진다.
회사 뒷 골목길에는 서유럽 최대의 길거리 시장인 알버트 쿠입스트랏 Albert Cuypstraat의 쿠입 마켓 Cuyp Market. 길을 따라서 계속가면 그 끝이 바로 뮤지엄 플라인으로 연결된다. 앞길에 차도와 자전거도로, 뒷골목은 시장길. 그래서 회사에서 걸어서도 자전거로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길을 갈 수 있다.
암스테르담의 전형적인 출퇴근 모습. 이렇게 모든 국민이 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문화는 너무 좋다. 국왕이던 총리던 다 자전거 탄다. 한번은 사장님이랑 같이 자전거 타면서 길을 가는데 처음엔 너무 어색했지만 나중에는 회사 회식하러 갈 때 회사 전원이 줄지어 자전거로 회식장소까지 20분간 같이 가는 것이 너무 재밌었다. 한국이나 북미에선 상상도 못할 일...
해가 한쪽으로 저물어가는 운하의 풍경. 이 정도 운치면 하루 일과에서 쌓인 스트레스 금방 다 날릴 수 있다.
실은 삐걱삐걱 맨날 바로 직행하지 않고 정확히 이브닝 파티가 시작될 때까지 주변에서 서성이다 이렇게 해가 완전히 지면 들어간다. 시작 기준이 해가 완전 저무는 시각부터이기 때문에 매주 금요일 조금씩 시간이 달랐다. ㅎㅎ 신기한 시스템.
줄도 별로 없고 어차피 여기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쓰윽 들어왔다. 이렇게 친목도모는 물론 회사친구와 만나기, 그냥 가족들끼리의 약속도 "미술관 파티에서 만나자"가 일상처럼 쓰이는 유럽. 왜냐하면 반 고흐 미술관 외에 다른 미술관과 박물관도 다 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곳은 돈을 더 내는 비싼 멤버쉽을 가입해야했고, 반 고흐 미술관은 일반 뮤지엄카드 소지자를 다 포함 시켜주기때문에 여기에 유독 사람이 더 많기는 하다. 그래서일까. 국립/시립미술관의 파티는 나이 지긋한 분들이 클래식하게 노는데 여기는 젊은 아이들이 뒤로 보이는 DJ와 함께 하우스 뮤직을 틀고 반 고흐를 즐긴다. 굉장히 묘한 조합이다. 처절함의 끝을 달렸던 어린아이 같았던 고흐의 인생을 생각하면서 하우스뮤직과 술을 마시며 그림을 감상한다라... 나는 개인적으로 고흐를 매우 존경하고 그의 그림 앞에서 눈물을 쏟아낸 적이 한 두번이 아니기에 이런 노는 분위기가 의아했다.
매주 금요일 새로운 그래픽 작업을 선보인다. 벽에는 고흐의 작품을 화려하게 또 더욱 슬프게, 더욱 강력하게 와닿도록 프로젝션을 쏘아댄다. 감자먹는 사람들에서 잊을 수 없던 그렁그렁한 눈망울과 화려한 해골의 교차가 소름돋게 아름답다. (그리고 마구 시끄러운 음악이 아니다. 볼륨이 당연히 매우 낮고 듣기 편한 하우스 뮤직만 흘러나오는데 나름 고흐의 작품과 매치하여 테마를 구성해서 DJ들이 틀어준다. 세심한 배려가 고맙다.)
고흐의 작품들이 재밌게 설명되어 좋다. 명화의 일부가 줌인이 되어 이리저리 움직이며 일단 궁금증을 자아내고, 그리고 이 4개층으로 갈 수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며 하나씩 그 진품을 마주하게 한다.
2008년부터 한결같은 1층의 전시실. 고흐의 눈이 입장하자마자 계속 바라본다 ㅎㅎ
고흐의 일본 판화, 우키요에, 포장지, 도자기 사랑은 유명하다. 일본의 우키요에와 고흐가 일본화를 따라그린 그림들이 계속 프로젝션되어 나타나는 날도 있다.
계단에 올라서서 이 확 트인 공간에서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저기 사람들이 모인 쪽으로만 가도 사진 찍지못하게 가드들이 막아선다. 그래서 줌인해서 찍어봤지만 아무래도 살짝 어두운 조명에서 반대편 그림들이 잘 나오기란 쉽지 않다. 그냥 이 미술관에서 전시전경은 미술관이 제공해주는 것과 작품이미지로만 설명하란 것인듯. 어차피 온라인으로 다 제공하는데 좀 찍게 해주지...
***********************
반 고흐 미술관은 유화 200 점, 소묘 400 점, 편지 700여 통이 있고 그외 일본 목판화, 고갱, 로트랙, 밀레 등 고흐와 교류한 화가들의 작품도 소장되어있다. 고흐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면 당연 이 곳을 방문 해야만 할 정도이다. 은 이제 저 안으로 들어가서 대표작 몇 점 설명하겠다.
감자먹는 사람들 The Potato Eaters, Oil on canvas, 82 cm x 1.14 m, 1885.
가슴뛰게 만드는 작품 중 하나이다. 고흐는 뒤늦게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며 여러 화가의 도판을 보며 혼자 체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밀레 Jean-François Millet이 진정한 화가라고 칭송한다. 그에게는 밀레를 제외한 어떤 화가도 농민의 삶을 제데로 표현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실은 밀레의 만종을 보며 느끼는 전율, 애절함, 심연, 침묵의 언어 등 인간의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아마 그것을 고흐도 느꼈을 것이리라. <감자먹는 사람들>은 그가 처음으로 '습작'이 아닌 '작품'이라고 여긴 것인데 이 가족을 표현하기 위해 1880년에 시작한 것이 5년동안의 연습을 통해 1885년에 완성이 되었다.
나무껍질처럼 투박한 남자는 물론 여인의 손을 보라. 수척한 얼굴이지만 또랑또랑한 눈망울, 초롱불 한개를 겨우 밝혀 아른거리는 어두운 실내. 먹을 것이라곤 감자와 따뜻한 차. 그림으로 존재한 사람이 아니라 농민, 서민의 현실이다. 역사적 그림이라고 그냥 관람자로서만 바라보면 이 그림에 빠져들 수가 없다. 저 가족이 나의 가족처럼 느껴져야한다. 고강도 노동으로 인해 손가락 관절이 퉁퉁 부어버린 손으로 정직한 노동으로 얻어낸 감자를 집는 모습, 그리고 지쳐보이지만 깊은 눈.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가 무시하고 지나가버리는 현대의 노동계층의 모습과도 같다. 어떤 이는 추함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논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흐는 "추하고 불쾌한 모습이지만 그래서 더 진실되 보인다"라고 했다. 현대 자본주의 세상에서 다시 봐야하는 그림인 것 같다.
이 작품은 크뢸러뮐러 미술관 Kröller-Müller Museum에도 한 점 있는데 고흐 미술관의 것이 보통 이 작품을 논할 때 등장한다. 그러나 두 그림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어서 둘 다 보는 것을 권한다. 크뢸러 뮐러의 것은 거칠게 그려졌는데, 오히려 그래서 상상력을 자극한다. 나는 실은 크뢸러 뮐러의 감자먹는 사람들을 더 좋아한다. (크뢸러 뮐러의 감자먹는 사람들 보기)
피에타 Pieta, oil on canvas, 73 cm x 60.5 cm, 1988
이 작품 역시 고흐가 당시 독학을 하며 대가들의 그림을 열심히 따라 그려본 것을 보여준다. 외젠 델라크루아 Eugene Delacroix의 <피에타> 목판화를 모방해 본 것이다. 1988년 9월에 생레미 정신요양원에서 그렸는데 많은 평론가들은 이 예수의 얼굴은 고흐의 자화상일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실제로 턱 수엽이나 툭 튀어나온 광대, 귀, 털의 색, 많은 것이 고흐와 닮았다). 어쨋든 이 것은 단순 모방이 아니라 고흐가 마음대로 재창조를 한 정도로 많이 다르다. 아무래도 직접 보지 못했고 판화는 뒤집어져 있다보니 고흐 역시 거울처럼 좌우가 반사되게 그렸다.
(좌) 고흐의 피에타, 1889, (우) 외젠 들라쿠르아의 피에타, 1850
***********************
그리고 고흐는 물론 19세기말, 20세기초 유럽 문화권에서 빠질 수 없는 자포니즘 japonism.
당시 많은 유럽 엘리트들이 일본문화에 큰 관심을 가질 무렵, 고흐도 일본의 우키요에 ukiyo-e, 및 일본에서 건너온 제품들과 그 포장지들의 디자인을 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일본의 채색목판화, 우키요케는 14세기 일본 무로마치 시대부터 19세기 에도 시대까지 서민생활을 그린 일본 미술의 한 양식이다. ukiyo는 덧없는 세상을 뜻하는데 당시 이 단어는 500년이 넘도록 일본열도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사무라이 지방 호족들간의 살육때문에 힘들었던 것을 의미했다. 그러다가 에도시대가 되고 근대화가 빠르게 이루어지며 일본은 경제적 호황과 정치사회적 안정을 갖게되며 그냥 현재를 즐기는 '덧없는 세상'으로 쓰이게 된다. 현재도 제프 월 Jeff Wall이 호쿠사이Hokusai를 차용한다든지 일본의 우키요에의 주제, 기법, 구도, 컬러, 등은 계속해서 서구권의 러브콜을 받는다.
이쯤에서 반 고흐 미술관에 소장된 <꽃이 핀 자두나무>를 살펴보겠다.
(좌)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카메이도의 자두나무 과수원> 다색판화, 1856-58.
(우) 고흐의 <꽃이 핀 자두나무> oil on canvas, 55.6 x 46.8cm, 1887.
언뜻보면 우측이 한자어로 인해 더 일본에서 건너온 듯 보인다. 정말 세밀하게 관찰하며 모방을 했다. 이렇게 마치 현대 인스타그램처럼 과감한 화면의 구성 (줌인을 하여 앞에 나무가지 일부만 두고 뒤로 배경), 선명한 색채, 필요에 따른 디테일의 삭제와 일러스트 같은 검정 아웃라인 등은 모네, 마네, 르누아르, 드가, 고흐는 물론 건축과 미술을 오간 리트벨트와 반뒤스부르크, 몬드리안까지 크게 영향을 끼쳤다. 디자인툴을 다루는 나의 입장에선 마치 일본의 우키요에가 이미 포토샵, 일러스트, 인디자인 등 현대의 디자인 편집툴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완성한 것으로 보일 지경이다. 저렇게 화면 틀에서 레이어를 짜서 농담을 정하고, 아웃라인을 주고 텍스트를 첨가하는 것까지 마치 잘 만들어진 매거진 표지같기도 하다. 특히 고흐는 히로시게의 판화를 모방하며 양 옆으로 일본어, 즉 텍스트를 회화에 첨가하며, 회화에서 분리되어 왔던 문자를 다시 그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이후 회화와 텍스트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는 언어학, 기호학, 후기구조주의, 개념미술 등으로 연결하며 한참을 설명해야 하므로 여기선 생략)
(좌) 파리 일뤼스트레 표지 Paris Illustre, 1886년 5월
(우) 반 고흐의 오이란 Eisen, oil on canvas, 100.5 x 60.5cm, 1887.
파리 일러스트 잡지에 실렸던 Eisen 오이란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오이란이 무엇인가. 게이샤는 다들 알 것이다. 게이샤는 기예를 파는 문화재라면 오이란은 몸을 파는 기생이다. 오이란은 직역하면 '매화'인데 그래서 잡지 표지에 매화꽃이 그려져있다. 하지만 고흐는 매화대신에 학, 연꽃위에 개구리, 대나무 등을 그려 넣었다. 이유는 프랑스에서는 학과 개구리는 몸파는 매춘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본풍의 위력은 참 대단했다. 1867년 만국박람회에서 일본은 세계에 일본 문화를 알리기 위해 잡지를 창간하고 미술품, 공예품을 판매하기위한 각종 재단/시설을 만들어 국가적으로 후원하였다. 그 뿐 아니라 이론가, 건축가, 과학자 등 전 분야에서 달려들었는데 거의 모든 국민이 이 일본문화 세계화에 동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의 블로그 건축가 소개 중 겐조 당게 편을 읽으면 얼마나 강하게 밀어부쳤는지 알 수 있다.)
*******************
노란 집 The Yellow House, oil on canvas, 72x91.5cm, 1888
네덜란드 출신이지만 파리에 머물고 또 남프랑스 아를Arles에서 거의 모든 주요작이 쏟아져 나온 것은 고흐를 아는 사람이면 뻔한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란 집에서 고흐에겐 참 슬픈 일이 많았다. 고갱과 고흐의 관계는 어찌보면 애절한 연인같기도, 친한 동료지만 경쟁상대같기도하다. 고흐와 고갱이 이 곳에서 아틀리에, 작업실로 공동생활을 이어갔는데 가면 갈수록 미술에 대한 견해차이부터 극명히 다른 성격차이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들은 헤어질 수 밖에 없었으리라. 당시 고갱은 굵은 외곽선을 이용하며 (클루아종 cloison) 이미 인상주의를 넘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데, 고흐도 이 시점 처음으로 직접 관찰하지 않고 상상으로만 그려낸 <해바라기>를 고갱에게 보여주며 둘 사이에 여러 마찰이 생긴다. 고갱은 실제로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의 모습을 마치 죽은 해바라기를 그리는 좀비처럼 묘사했다. 그리고 가설이지만 지노부인을 둘러싼 셋의 관계 또한 미묘하다. (이 역시 크뢸러 뮐러 미술관 편에서 설명을 한 차례 했었다). 결국 여러가지 마찰로 인해 싸움을 하였고 그 날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라버리고 말았다. 마침 이 마을에는 이탈리아 이방인이 살인을 하며 마을사람들은 이방인에 대한 적대심이 많았는데, 이 미치광이 네덜란드인 고흐가 더 이상 달갑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고갱도 귀를 자르고 미쳐버린 고흐를 내버려두고 그는 타히티로 향한다. 어린아이처럼 고갱에게 목을 맨 고흐. 그리고 스스로 분에 못이겨 귀를 잘라버리고, 심적으로 굉장히 불안했던 고흐. 그러나 그림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대단했던 고흐. 아를에 여전히 남아있는 '고흐의 방'을 실제로 가보면 너무 작기도하고 괜시리 마음이 아프다.
아를의 침실, oil on canvas, 72x90cm, 1888.
고흐의 방이다. 원근법에 어긋나게 삐뚤삐뚤한 것과 그림자없는 평면적 컬러와 외곽선이 특징이다. 반고흐미술관에 있는 것이 가장 먼저그린 원작이고, 이후 고흐의 동생 테오의 조언으로 2개의 사본을 만들었다. 2번째는 시카고 미술관 SAIC에 소장되어 있고, 3번째는 오르세 미술관 (파리)에 소장되었다.
(좌) 고흐의 의자와 (우) 고갱의 의자.
둘다 고흐가 그린 그림이다. 고갱이 떠날 때의 고흐의 마음을 대변한다. 고흐의 의자는 고흐 본인의 화풍대로 그렸고, 고갱의 것을 그릴때는 그의 그림을 묘사했다. 그에 대한 존경인지 미련인지 알수는 없지만 고갱의 의자는 분명 그를 그리워하는 고흐의 어린아이같은 마음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귀를 자르고 점점 힘들어하는 고흐는 1889년 다시 발작으로 인해 Saint Remy 정신요양원에 입원하였다. 위에 언급했듯이 마을 주민들은 광기로 날뛰는 고흐를 멀리하고 아예 노란 집은 폐쇠하였다. 그래서 고흐는 곧 아를 시립병원 독방에 갇혀 지내게 되었는데, 퇴원과 입원을 계속 반복하다가 곧 다시 생폴 드 모졸 정신병원에 스스로 입원하였다. 죽기 직전의 고흐는 정말 격렬히 그림을 그렸고, 이 때 작품들은 너무 슬퍼서 너무 아름다운 것이 탄생한 것 같다. 이 시기 가장 큰 특징은 소용돌이치는 붓 자국이다. 뉴욕 모마에 소장된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 를 본 적이 있는가? 노란 불꽃파도가 일어나듯 소용돌이가 휘도는 볏짚이 가득한 평지 <수확하는 사람> 1889. 등 여러가지 작품이 있는데 반 고흐 미술관에서 아마 대표적인 것인 것이자 너무 아름다워서 각종 산업디자인에도 계속 이용되는 <꽃이 핀 아몬드 나무>를 살펴보자.
(좌)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 oil on canvas, 74x92cm, 1889, 뉴욕 MoMA에 소장
(우) 수확하는 사람Wheatfield with a Reaper, oil on canvas, 732.x92.7cm 1889. 반고흐 미술관 소장 (비슷한 것이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도 있다)
꽃이 핀 아몬드 나무 Almond Blossoms, oil on canvas, 73.5x92cm, 1890.
이 작품은 소용돌이가 작게 고요하게 몰아치고 있다. 동생 테오의 아들이 태어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남프랑스에 가장 먼저 꽃피는 아몬드나무를 청량한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그려준 것이다. 테오 부부는 이 그림을 매우 소중히 여겼다. 언뜻보면 일본풍, 벚꽃같기도한데, 실제로 고흐는 일본 판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기록했다. 일본인이 고흐 그림에 열광하고 구매하는 이유가 실은 여기에 있기도 하다. 결국 자신들의 문화에 영감받은 서양의 대가 아닌가.
(좌) 해바라기 Sunflowers, oil on canvas, 92.1 x 73cm, 1888
(우) 붓꽃 Irises, oil on canvas, 92x 73.5cm, 1890
해바라기는 위에 언급했듯 고갱과 있던 시기에 상상에 의거해 그린 것이고, 붓꽃은 Saint-Remy 정신병원에 꽃혀있던 것을 그린 것이다. 붓꽃은 예전부터 고흐가 관심가졌던 소재로 노란 들판의 붓꽃을 여러 작품으로 남겼다. 참고로 원래는 거의 보랏빛이었는데 물감의 붉은 색이 산화되어 지금은 푸른색으로 보이게 되었다. 고흐는 <붓꽃>의 보라색과 노란색의 보색 조합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Wheatfield with Crows, oil on canvas, 50.5x103cm, 1890.
죽음을 앞둔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졌는데 실은 이 작품을 남긴 후 몇 점 더 그렸으니 유작은 아니다. 아래 다시 소개할 <영원의 문>을 보면 정말 죽음 전에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워 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스케치 <영원의 문> 에 대한 설명은 크뢸러 뮐러 미술관 포스팅에서 했다. 절망하여 절규하는 한 노인의 모습, 반 고흐 자신의 자화상이다. 얼마나 울부짖는지 크뢸러 뮐러에 회화로 된 이 동일한 작품을 보면 정말 이마 살 속으로 손가락이 뚫고 들어갈 것 같다. 지독한 고통을 매일 견뎌내며 지낸 고흐. 그러나 그 속에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시선으로 세상을 그려냈다. 무엇인지는 정확히 규정지을 수 없지만 영적인 하나의 끈이 나를 고흐의 작품에 빠지게 만든 것 같다.
고흐의 컬렉션이 이 곳 다음으로 큰 곳이 크뢸러 뮐러 미술관인데, 이 곳은 이미 한 차례 소개했었다. 절망, 절규 그러나 그 속에서의 희망 등 고흐의 죽음 직전에 그려졌던 그림들이 마음을 강타한다. 그 고흐 작품을 보고 싶다면 여기 포스팅으로 -> 크뢸러 뮐러 미술관
뮤지엄 샵은 아래층에도 있으나, 가장 꼭대기 4층의 한 구석에도 이렇게 작게 하나 더 있다. 여기는 제품보다는 책을 주로 취급하는데 좋은 책이 너무 많다.
좀 돌아다니다가 메인 발코니에서 찍어보기. 발코니 공간에서는 촬영가능해도 방향은 그림쪽으로 하지 말랬지만^^;;; 가장 대표적인 <아몬드 나무 Almond Blossoms>와 <붓꽃 Iris>이 그래도 실제 사이즈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힐 정도로 나왔다. 생각보다 아주 큰 캔버스가 아님을 독자에게 전달하고팠다. 가끔 고흐 그림이 큰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이 있던데... 고흐라는 이름 때문인지 왠지 그림이 클 것 같다고. 하지만 보다시피 아주 크지 않다. 실제 사람과 함께 찍힌 사진으로 보면 아무래도 긴 설명 없이 크기감이 잡힌다.
이제는 다시 나갈 시간. 저녁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먹을까? 매일 묻는 근원적 질문 ㅎㅎ 실은 가끔 왜 먹어야하는지도 묻는 경우가 있다. 그림이나 건축에 빠져있으면 먹는 것에도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물론 먹는 것은 생존이지만, 지금 당장 생존을 걱정하는 상태는 아니니 이렇게 사치라면 사치스런 생각도 해 볼 필요가 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왜 먹는지 다 질문해보고 막상 식사중에는 그것에 더욱 집중하는 자세.
저녁식사하러 뮤지엄플라인에서 도심으로 가려고 국립미술관의 터널을 지나는 중. 미술관을 항상 통과하는 방식이 정말 마음에 든다. 사람들이 자연스레 미술관 내부를 들여다 보게되니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옆으로 프로젝션이 쏘아지는 창문들 중 한 곳이 미술관 입구이다.
미술관 후원금을 꽤 지불해야 되는 patron들의 저녁 파티. 다들 양복차림에 스탠딩 테이블에서 와인과 카나페를 즐기고 있다. 흠흠. 나는 반 고흐 미술관의 힙함을 즐기는 것으로 일단 만족.
보통 금요일 저녁에 반 고흐 미술관을 들르면 꼭 회사 동료 중 누군가 1명은 만나게 되는데 그래서 이날은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그리고 걸어나오며 보았던 국립미술관의 patronage club에는 참가하지 못하니 미술관 바로 앞 쇼핑가 시작되는 광장인 Leidseplein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식당 중 하나인 Satelite Sportscafe로 향했다. 그러면서 회포를 푸는 중.
19유로로 무제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곳. ㅎㅎ 무제한이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럽에서 외식하며 맥주하는 집 치고는 저렴하고 고기 질도 좋았다.찾아 가보고 싶은 분은 이 Leidseplein 광장에서 아래의 사인을 찾으면 된다. 안 보일 수가 없다.
그리고 암스테르담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나름의 guilty pleasure길티 플레져라고 시작한 과자먹기. 원래 방부제 들어간 것 싫어하는데, 이 과자 왜이렇게 뽀송뽀송하고 감칠맛 있던지... 바코드 찍혀서 제품으로 나온 과자를 북미나 아시아에선 거의 먹지 않는데 이상하게 유럽에 거주할 동안 이런 과자를 먹게 되더라. 향수에 빠져서 그런가. 그런데 아무리 먹어도 여기 알버트하인의 과자처럼 맛있는 과자 찾기 힘들다. 유럽에 살고 난 이후 다른 대륙에서도 각종 과자에 손을 대보았는데 먹을 수가 없다. 결국 다시 아무과자도 안먹는 상태로 돌아감... 네덜란드 체질인가;;
지난 포스팅에선 마당이 인상적이던 나의 암스테르담 첫번째 집의 모습을 살짝 공개했는데 이번엔 반고흐 미술관 근처에 가까웠던 2번째 집에서의 풍경을 올려본다. 저녁엔 사온 과자 우적우적 먹으면서 안뜰에 보이는 왠 교회건물위로 밤하늘을 보았다. 도시지만 암스테르담의 하늘에선 별이 꽤 많이 보인다. 자전거와 전기트램이 주 교통수단인 나라여서 그런지 공기가 정말 시리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청량하다. 이 집은 베란다에서 하늘이 잘 보였기에 정말 매일이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
다음은 한국인은 물론 관광책자에 다소 덜 알려져서인지 국립미술관과 반 고흐 미술관 바로 옆인데도 방문하면 항상 텅텅 비어있었던 스테델릭 미술관 (시립미술관)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런데 현대미술을 추종하는 입장에선 이 미술관은 정말 너무 좋은 곳으로 생각됩니다. 꼭 나중에 가보시길... 문의해주시면 제가 포스팅 외의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 나중에 3개의 집 내부를 올리며 어떻게 완전히 다른 형식의 집에 살아보게 되었는지도 포스팅을 해야겠네요. *
** 본문의 모든 글과 사진은 직접 느낀점을 쓰고 촬영한 것인 지적재산입니다.^^ 블로그의 내용은 요약본이고 차후에 각 토픽마다 더 자세한 글과 사진들은 매체에 기고하거나 손스케치와 함께 책으로 엮을 예정입니다. 방문하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공감과 댓글은 힘이 되요. **
'여행 Travel > 유럽 Europ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덜란드 - 하를렘 Haarlem의 미술관과 박물관 - 1화 프란스 할스 (1/4) (12) | 2021.04.19 |
---|---|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 시립 미술관 (스테델릭) Stedelijk Museum Amsterdam (10) | 2021.03.19 |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Rijksmuseum Amsterdam (해외생활) (29) | 2021.03.15 |
[해외생활] 네덜란드에서 유럽 각지로 (30) | 2021.03.08 |
[Travel] 네덜란드 레이든의 미술관과 박물관 - Museums in Leiden, Netherlands (2/2) (5) | 2020.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