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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여행 - 크라쿠프 Krakow 구석구석 탐방 & 동유럽의 모나리자 (Ep. 7/9)

Brett D.H. Lee 2021. 5.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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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포스팅: 폴란드 여행 -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Auschwitz-Birkenau 절멸의 장소  (Ep. 6/9)

 

 

아우슈비츠 방문으로 인한 정신적 피로감을 정말 배가 터지도록 많은 양의 점심을 빠르게 흡입해버리며 타파하고 이제 크라쿠프를 구석구석 살펴본다.

 

바벨성 Wawel Royal Castle . 폴란드어로는 Zamek Królewski na Wawelu.

중앙광장인 Rynek Główny , Main Market와 함께 크라쿠프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10세기부터 17세기까지 폴란드의 수도였던 크라쿠프에서 폴란드 왕이 거주했던 성이다. (이후 바르샤바로 천도되었음). 1978년 크라쿠프 구시가 전체는 물론 이 성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시내에서 걷다보면 남쪽 끝에 높은 성벽위에 있는 또 하나의 '마을'로서, 도심과의 대지 단차가 꽤 있는 곳이다. 이 성이 위치한 언덕은 크라쿠프 도심에서 약 7층정도 위로 솟아있다고 보면 된다. 

 

Jan Nepomucen Glowacki의 작품. 바벨언덕 Wawel Hill, oil on canvas, 1847.

지금도 중앙광장에서 빠져나와 도심의 가장 남쪽에 가면 이렇게 높게 솟아있는데, 지금은 저렇게 전체 경치가 보이진 않는다. 도시의 건물들 사이로 그냥 높은 성벽이 있고 내부에 있는 쇼핑가와 각종 전시실을 통과해서 내가 점심을 먹었던 레스토랑도 통과해서 올라오면 위에 사진처럼 바벨 광장이 나타난다. 완전 다른 시공간으로 점프하는 느낌.

 

한 건물에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재한다. 저렇게 각기 다른 색과 형태의 지붕과 장식, 재료 등이 저 정도로 많이 뒤섞인 성은 흔히 보지 못했다. 회색빛을 한 10세기 원래의 바실리카 형태의 건물에  11~12세기에 카지미르 1세의 성으로서 개조되며 로마네스크 양식이 섞이면서 곧 있어 살펴볼 바벨 용의 동굴(Wawel Dragon's Cave)Silver Bell Tower, Sandomierska Tower, 등이 생겨난다. 이후 13~15세기에는 고딕양식이 첨가되며 바벨 성당 Wawel Cathedral으로 증축되고, 또 16-~17세기에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이 첨가되는데 이 부분은 장식과 내부 중정에 더 크게 영향을 끼쳤다. 

 

특히 저 황금색 돔은 지그문트 예배당 Kaplica Zygmuntowska는 르네상스 양식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건물 내부에는 폴란드 왕의 석관과 여러 폴란드의 예술작품, 공예품, 역사적인 것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 전 세계 사람들이 이 곳까지 몰려오는 이유는 바로 '동유럽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다빈치의 <흰 족제비를 안은 여인>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2019년 크라쿠프 차르토리스키 미술관이 다시 개관을 하며 그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중정 courtyard쪽으로 들어가는 성문 아래이다. 문지기가 지켰을 이 곳. 육중하고 두께가 꽤 깊다. 

 

비가와서 정말 한적하고 동유럽 느낌이 더 잘 나타나는 것 같다. 물론 선입견적인 느낌이지만... 왠지 쨍한 날씨가 어울리는 베르사유나 벨베데르 궁전과는 다르게 동유럽이나 독일, 북유럽의 성은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살짝 어두운 날씨의 느낌이 더 좋더라. 마침 비에 젖은 빨간 지붕과 번들번들한 중정의 돌바닥이 마치 유리처럼 빛을 반사한다. 무슨 공연이 있었나보다. 공연 스탠드 앞에 의자들이 줄지어 있는데 아무도 없는 이 적막한 중정이 초현실적이다.

 

저 위로보이는 회랑 어딘가에 다빈치의 작품이 있다. 그런데 3층의 회랑이 저렇게나 높은 것은 또 희한하다.  궁금하니 어서 올라가 봐야지..

 

기둥 2개를 이어붙여서 더 높은 기둥을 만든 것이 재미있고 각각 다른 세월을 보내온 것이 색에서 티가난다. 몇 백년간 잦은 보수로 어떤 것은 "젊은" 기둥이고 어떤 것은 "늙은" 기둥이다. 덕분에 똑같은 모양의 기둥들이 오히려 따분하지 않고 피아노 건반마냥 리듬감을 준다.

지붕의 거터 gutter (빗물 홈통)를 따라 바벨 용dragon 형상의 drain이 물을 빼주고 있다. 재미난 디테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비에 젖어 더 채도가 높아진 돌바닥과 더욱 형형색색의 비옷을 입은 관광객들이 있다. 아니 어찌 저렇게 모두 다 다른 색의 비옷을 입을수 있지? 초록 노랑 파랑 주황 빨강, 약간 터키석 색까지...

 

박물관이라기엔 인기척도 아예 없고 어디에 안내문도 없어서 회랑을 한바퀴 그냥 걸었다. 복도와 창, 기둥, 지붕의 길다란 비율때문에 걸으니 살짝 옵아트OP ART 처럼 어질어질하다. 기둥이 휘어보이는 착시?

 

빙글빙글 돌다가 한 귀퉁이에 다빈치 안내판 발견. 저 문뒤로 방이 하나 있고 정말 딱 다빈치의 저 작품만! 놓여있다. 들어갈 때 이분에게 이름과 각종 신상(?)정보 체크인하고 들어간다. 폴란드에서 국보 national treasure로 지정한 것인 만큼 입장이 까다롭긴 하다. 

 

들어가서 사진촬영 당연히 불가하다. 그리고 꽤 어두웠다. 비가 내렸지만 밝았던 야외에서 갑자기 어두운 방에 들어서자 눈이 적응하는 몇 초간 아무것도 안보였다. 10~15초 정도 버둥대며 걸어가니 루브르의 모나리자처럼 작은 작품이 희미한 핀 조명을 받으며 검푸른 벽에 부유하듯 걸려있다.

 

바로 이 작품이다. 

Leonardo Da Vinci, Lady with an Ermine, Oil on Walnut Panel, 54 x 39cm, 1489-91.

이 여인은 르네상스 당시 밀라노 공작, 루도비코 스포르차 Ludovico Sforza의 애인이었던 체칠리아 갈레라니 Cecilia Gallerani이다. 다빈치는 오직 4점의 여성 초상화를 남겼는데, 그래서 이 그림이 더욱 그 희소가치가 있다. (나머지 3개는 모나리자, 지네브라 데 벤치의 초상, 라 벨 페로니에르). 

 

왜 그녀는 흰 족제비를 안고 있을까? 르네상스 당시 애완용 족제비 중 흰색 족제비는 털가죽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죽음을 맞겠다는 순수성의 상징이었다. 또한 귀족정치의 의미에서는 스포르차 가문의 흰족제비 기사단 문장이기도 하다. 어쨋든 이 그림은 1800년 차르토리스키 Czartoryski가문의 컬렉션에 편입되며 폴란드에 정착하게 된다. (현재 크라쿠프 차르토리스키 미술관이 바로 이 가문의 컬렉션을 기반으로 시작하며, 폴란드 미술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에 차르토리스키는 그림이 지금처럼 온라인으로 알려져 무엇이 무엇인지 판별이 가능한 시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을 마주했을 때 바로 다빈치의 것임을 직감했다고 한다. 이전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서 어떻게 그가 누구를 통해 구매했는지 알 수는 없다. 폴란드의 슬픈 근대사 때문에 이 그림은 19세기 내내 떠돌아 다녔다. 1830년 러시아 침공때문에 차르토리스키 가문의 공주가 이 그림을 목숨걸고 숨겨다니며 구해냈고 프라하, 드레스덴을 통과해 파리에 있던 호텔 랑베르 Hotel Lambert에 옮겨졌다. 1882년에 다시 고향인 크라쿠프에 돌아왔지만 2차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압수되어 베를린 카이저 프리드리히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1940년 폴란드 총독 한스 프랑크는 이 그림을 크라쿠프로 반환하라고 항의를 했지만 1941~1945년간 잔인했던 홀로코스트와 함께 폴란드인도 마구잡이로 죽임을 당했던 상태라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그림은 2차대전이 끝나고 전세계적으로 있었던 문화유산 반환정책에 따라 크라쿠프로 다시 돌아왔고 2000년대 이후에는 차르토리스키 미술관이 2019년에 재개관하지 전까지 세계 곳곳에서 전시되었다. 크라쿠프에서는 바벨성과 크라쿠프 박물관에 번갈아가며 전시가 진행되었고, 나는 바벨성에 있는 기간에 갔기에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바벨성 바깥쪽으로 나와서 안내판을 살피며 그 다음 목적지를 찾는 중.

 

아무리 보아도 신기한 건물. 황금빛 돔과 초콜렛(?) 돔. 그 아래 석재의 색도 다르다. 옆으로는 바실리카와 고딕성당에 있던 탑이 있고, 뒤로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돔이 또 있다. 흡사 레고로 만든 성같기도... 건물은 역시 사진보다는 직접 가서 그냥 걸어다니며 이리저리 둘러보는 것이 좋다. 꼭 가보시길~

 

이제 이 곳을 지켜주었던 망루, 감시타워인 Sandomierska Tower로 향한다. (한국말로는 뭐라 표기하는지 모름;;;)

 

곳곳에 이런 방향 안내판이 있어서 금세 찾았다.

 

건물 한켠에 척 붙어 있는 Sandomierska  타워.

1460년 카지미르 4세가 이 성을 지키기 위해 세운 타워이다. 성 가장자리쪽에 3개를 지었는데 현재 들어갈 수 있는 곳은 가장 남쪽에 위치한 이 곳이다. 

 

내부가 생각보다 넓다. 좁은 계단이겠거니 했는데 널찍한 집처럼 되어있고 올라가는 계단도 폭이 넉넉하다. 이유는 이 곳에 병사들이 각종 무기와 함께 바글바글 있었다는데...

 

타워의 도면 3장. 바벨 성 방향 외 나머지 방향 (성 외부쪽)으로는 모두 공격과 방어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벽의 두께가 매우 두껍고 그 앞에는 열고 닫을 수 있는 창문이 있다. 이 "구멍"을 통해 화살, 돌, 불대포 등을 쏘아댔다.

 

2번째로 높은 층에 올라 왔는데도 벽은 이정도로 두껍다. 창문에는 네모난 구멍이 있어 문을 닫고도 활 공격이나,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

참고로 전시가 아닐때는 이곳은 교도소로도 활용했다. 높은 곳에 수감될 수록 "높은 계급"이었다. 뷰가 좋아서 그런가? ㅎㅎ 큰 죄가 아니라 자잘한 잘못을 했을 경우 가두는 곳이라 그랬을 수도 있다. 물론 큰 잘못을 했으면 타워 근처에 있는 바벨 드래곤의 동굴 Dragon's Dungeon / Cave에 가두어 버린다.

 

타워에서 바벨성 방향으로 바라보니.... !!! 아니 이건 너무 아름답잖소.. 바벨성의 전체적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형형색색 레고로 하나한 만든 성같다. 어릴적에 당시 레고가 지금처럼 비싸지 않을 시절... 온갖 성은 다 만들었었는데. 

 

어쨋든 가끔은 감옥으로 사용했다는데 최상층에서 이런 뷰를 보면서 수감생활하면... 잘 버티겠는데? 싶었다. 오른쪽에 2번째 타워도 보인다.

 

크라쿠프 시내외 시외를 구분짓는 비스와강. 밖으로는 고요한 마을의 모습.

 

그리고 중앙광장쪽으로 바라보니 역시 조금 더 화려한 색의 지붕들이 저 멀리 보인다.

 

 

그 다음은 타워 근처에 있는 바벨 드래곤의 조각을 발견. 그 뒤로 연결된 던전, 동굴에 들어가본다.

 

13세기 폴란드 설화에서 바벨 드래곤 Wawel Dragon은 이 바벨 언덕에서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는 용이다. 당시 폴란드의 왕 크라쿠스 King Krakus 재임 시절 출몰하며 시민들을 괴롭혔다고 전해진다. 왕은 그의 두 아들, 레흐Lech와 크라쿠스2세 Krakus II에게 이 용을 죽이라고 명했다. 하지만 용이 너무 강력한지라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처치할 수가 없어서 크라쿠스2세는 한가지 꾀를 내었다. 유황을 잔뜩 첨가한 송아지고기를 용의 서식지에 뿌려두었는데, 그것을 먹은 용은 결국 독이 올라서 죽게되었다. 유황을 먹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불을 계속 뿜으며 죽었는데 그 흔적이 바로 이 동굴에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 동굴은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이 아니라 마치 거대한 생명체가 휘저은 것처럼 그 형태가 매우 역동적이라 이런 설화가 생겨난 것일 수도 있다. 참고로 저 조각은 고통에 울부짓는 바벨 드래곤이다. 옆에서 보면 아파서 "아아아악!"하는 모습이 더 잘 보인다.

 

 앗! 그리고

이후, 왕위를 이어받는데 있어 용을 성공적으로 처치한 왕자가 누구인지를 판가름 해야했는데 형이었던 레흐는 동생 크라쿠스 2세를 암살해버리고 자신이 용을 처치한 것이라 하였다. 레흐는 왕위를 이어받긴 했지만 얼마가지못해 동생을 죽인 사실이 발각되었고 곧바로 폴란드에서 추방되었다. 크라쿠스 2세의 원래 이름은 그라흐Grakch이었지만 크라쿠스 1세의 뒤를 있는 진정한 후계자가 되며 현재 크라쿠스 2세가 된 것이다. 

 

동굴 입장하려는데... 바닥에 왜 이런것이??

조쉬 하트넷은 여기 왜 왔데?? 다른 할리우드 스타의 손은 없고 딱 이거 하나만 있었다. 실은 지금도 이유는 모름. 아시는 분은 댓글로 알려주세요~

 

으음. 정말 들어가자마자 '동굴'이구나. 했다. 별다른 구조물이나 특이점은 없음. 한 15분 정도 걸어가는 시워한 지하 산책길(?)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중죄를 지은 자를 여기에 수감해놓았다니, 중간중간 께름칙한 곳이 꽤 있긴 하다. 혼자였으면 무서웠을 수도;;;

 

뭐하는 짓? 친구들과 그냥 사진찍기.

 

바벨 성에서 나와서 다시 도심으로 슬렁슬렁 걷는다. 비가 점점 더 세차게 내리지만 그래도 여행은 계속된다.

이제 크라쿠프 미술관에 도착. National Museum, Krakow.

 

오토만 제국에 대한 전시가 하고 있었는데... 아쉽지만 벌써 저녁시간이라 입장은 더 이상 불가했다.

 

하나둘 나오는 사람들... 뭐 폴란드 또 오면되지. 주말여행이니 자주자주 오자.하며 가볍게 생각했다.

 

그래도 궁금해서 로비 안쪽은 들어가봄..

 

아쉬워서 야외에 있는 설치미술 속에서 길을 잠시 잃어보고...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랑 비슷한데?? 하고 느꼈는데 작품 설명을 보니 실제로 그것이 모티브가 된 것이다.

 

다시 중앙 광장 쪽으로 걸어간다.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서 오랫동안 치여온 역사가 있어서인지 군인, 애국지사의 동상이 많다. 어서 다른 미술 조각이나 즐거운 조형물도 많이 들어서길...

비오고 한적한 크라쿠프 시내 걷기. 

 

금세 저기 중앙광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벨성에서 중앙광장까지는 도보로 약 15~20분정도)

 

다시 온 중앙광장. 그리고 수키엔니체 Sukiennice. Krakow Cloth Hall. 구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이지만 특히 이 곳은 그 중심에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폴란드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건물이자 당시 국제 무역의 중심이었던 곳이다. 상인들이 모여들던 이 곳은 지금도 여전히 1층은 상업시설로 운영된다. 15세기 폴란드 황금기 시절 향신료, 실크, 가죽, 왁스, 도자기 등 동양에서 수입한 것들로 가득했고, 비엘리츠카 소금광산에서 가져온 소금을 수출하며 거래를 주로 했다. 

 

또한 이 건물은 수세기 동안 타국의 저명한 인사들을 맞이하는 공간으로도 사용되었는데 그 장소는 2,3층에 위치하고 1층과는 또 다른 럭셔리한 공간이 연출된다. 2000년대 들어서는 찰스 황태자나, 일왕 아키히토 등도 이 곳에 방문하였다. 특히 2층에는 크라쿠프 국립미술관의 분관인 수키엔니체 미술관이 있는데 이곳은 늦게까지도 문을 열어서 방문할 수 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폴란드의 역사, 현대 미술까지 짧고 간략히 살펴볼 수 있다.  

 

이건 반대편. 광장 한가운데 있기에 360도 모든 파사드를 다 살펴볼 수 있고, 그만큼 retail front (장사 가능한 입면)이 많다.

2층 파티오에서도 광장의 4면을 다 내려다 볼 수 있으니 꼭 올라가보는 것 추천.

 

이제 수키엔니체 1층으로 입장. 어찌보면 뻥 뚫린 야외공간이다.

양 옆으로 마치 주말장터처럼 부스가 빽빽한데 파는 것은 식료품부터 공예품, 의류, 전자제품 등 다양하다. 

 

중세부터 지금까지 이 공간에서 상업활동이 이루어졌다. 그 내용과 사람의 옷차림이 바뀌었을 뿐 역사는 똑같이 흘러가고 있다.

 

1층과 mezzanine은 가게들이 즐비하고, 2층은 4개의 전시관이 있다. 

1층과는 다르게 2층은 클래식하고 마치 귀족의 집에 초대받은 느낌이다. 2층은 전시실과 뮤지엄 카페와 샵이 있다.

전시관으로 들어가 볼까. 폴란드 왕가의 초상이 잔뜩 있는데... 실은 누가 누군지는 몰라서 그냥 쳐다보는 중.

 

19세기 폴란드의 낭만주의 Romanticism과 리얼리즘 Realism을 대표했던 Aleksander Kotsis와 Artur Grottger의 회화작품이 가득한 방이다. 언뜻 중간중간 밀레의 만종같은 느낌의 그림 주제, 색감과 명암이 겹치기도 한다. 

 

1837년부터 1867년까지 아주 짦은 생애를 보내고 떠난 아르투르 그로트거 Artur Grottger의 그림 중 맘에 들었던 작은 그림. (10호정도 되는 사이즈였다) 그는 당시 독일(프러시아)와 러시아에 의해 쪼개진 폴란드 영토 중 남동부 지역 (현재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 가까운 Podolia에서 태어났다. 지역하나 설명해도 여러나라가 계속 겹치는 것은 동유럽이 얼마나 쪼개지고 만나고를 반복했는지 알려준다 (아직도 각 나라마다 완전히 다른 민족들이 불신하며 보이지 않는 힘싸움을 하고는 있다..) 비록 30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폴란드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로 지목될 만큼 중요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크라쿠프 미술관이나 바르샤바 미술관에 가면 더욱 커다란 그의 대작들을 만나볼 수 있다. 여기는 중앙광장 상업시설 위에 작은 맛보기(?) 전시실이라 그런지 작은 작품들이 많고, 미술관에 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에게도 여러 폴란드 작가를 주욱 둘러보기엔 딱 적당한 곳이다. 일단 무료이고 주요 관광지에 붙어있는데다 규모가 작아 그림 하나하나 꼼꼼히 보지 않고 쓰윽 보면 10분이면 다 둘러본다.

 

Samuel Hirszenberg (1865-1908)의 작품, Szkola talmudystow, School of Tamudists (타무디스트 학파), Oil on canvas,  1887

 

스타니스와브 그로촐스키 Stanislaw Grocholski의 작품, 고아의 죽음  Śmierć  sieroty (Death of an Orphan),  Oil on canvas, 1884

 

상징주의, 매직 리얼리즘적이던 작품들. 앞에는 살로메가 요한의 머리를 들고 있는 조각.

 

비토르 프루슈코브스키 Witold Pruszkowsk (1846-1896)의 작품들, 왼쪽부터, 석양 zachód słońca, 땅거미 Zmierzch (Dusk), 여인 Dama (lady),  Oil on canvas, 1881

 

언뜻 프랑스 작가 작품인가 했음. 잘 살펴보면 각 시대마다 인상파, 상징주의, 야수파, 낭만주의 등을 대표했던 서구권의 작가와 동시대를 살았던 폴란드 작가의 것이다.

 

그림을 보다가 옆에 작은 카페가 있고 야외 테라스로도 나올 수 있다. 비가 내려서 아무도 없지만 여기 앉아서 광장을 내려다보며 커피나 맥주 한잔하면 딱 좋겠다.

 

왜냐하면 여기 뷰 맛집이라서.. 테라스를 빙빙 돌면서 중앙광장 360도 다 둘러보았다.

 

어쩌다가 사진 득템. 당시 머리가 길었었다. 원래는 묶어다녔는데 어디서든 음악이 들리는 크라쿠프에서 음에 취해 머리풀고 살짝 미쳐서(?) 돌아다님 -_-;;

 

다시 골목 안으로 들어가는데 화려한 장식을 휘두른 말이 옆을 지나간다. 패셔니스타네.

 

이제 음악 좀 들으러 가볼까...

어젯밤 쇼팽의 곡을 연주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얘매해놓고 기대하고 있었다.

총총걸음으로 크라쿠프 골목길 어딘가에 있는 그곳을 찾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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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여행 - 크라쿠프 음악의 밤 Krakow & 비엘리츠카 Wieliczka (Ep. 8/9) 에서 계속됩니다.

 

 

 

** 본문의 모든 글과 사진은 직접 느낀점을 쓰고 촬영한 것인 지적재산입니다.^^ 블로그의 내용은 요약본이고 차후에 각 토픽마다 더 자세한 글과 사진들은 매체에 기고하거나 손스케치와 함께 책으로 엮을 예정입니다. 방문하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공감과 댓글은 힘이 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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