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산책 중인 노마드

Art, Architecture, Travel & Life

건축 Architecture/건축가 Architect

[Architect] 프랭크 게리 Frank O. Gehry (2/3) - 도시를 살린 빌바오 구겐하임에서 온타리오 미술관까지 (1990~2000년대)

Brett D.H. Lee 2021. 2. 3. 07:45
728x90

** 1편인 [Architect] 프랭크 게리 Frank O. Gehry (1/3) - 스타건축가의 탄생에서 계속된 글입니다. **

 

1편에서는 프랭크 게리의 초기작을 소개했다. 그 건물들은 다소 투박하고 마구 헝클어진 형태때문에 보는 이로 하여금 (특히 비건축가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방가르드는 항상 앞서가기에 동시대 사람들에게 질타받는 것이 어느정도 당연한 것. 하지만 1997년 빌바오 구겐하임부터 그 이후로는 형태적 요소, 재료와 구성 compositional 적 밸런스가 잡혀있어 '불협화음'보다는 해체주의의 완성품처럼 느껴진다. (물론 개인적인 견해 + 호불호가 아무리 갈려도 이미 "대가 반열"에 올라서 그럴 수도...)

 

 

빌바오 구겐하임 // Bilbao Guggenheim, Bilbao, Spain 1997

게리의 대표작 중에서도 가장 먼저 회자되는 미술관이자 시대의 걸작인 빌바오 구겐하임은 '빌바오 효과'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건축은 물론 도시계획, 정치, 경제, 문화 분야에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는 새로운 건축언어의 탄생은 물론 하나의 건축물이 지역경제에 직접적 영향을 여전히 끼친다는 것을 입증했다. 빌바오는 실제로 북부 스페인의 쇠락해가는 공업도시로 망하는 것 아니냐는 이 도시를 순식간에 모든 미술, 건축인을 포함한 여행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명소로 탈바꿈시켰다. 이쯤되면 경제부흥을 넘어 도시 브랜딩의 대성공인 사례이다. 건축가 필립 존슨 Philip Johnson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건물"이라며 칭송했다. 실제로 이 건물이 나타났기에 프리츠커상을 받은게 아니냐고 오해를 많이 한다. (1989년에 이미 앞선 포스팅의 초기작들로 수상하였다.)

스페인 북부 자치주인 바스크 Basque의 주도인 빌바오는 과거에는 제철소와 조선업이 성행했던 큰 도시였다. 1970년대까지도 스페인 산업의 중심지였지만 1980년대 철강업이 쇠퇴하고 바스크 자치 분리주의자들의 잇따른 테러로 인해 도시의 존립자체가 위험해지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이에 주 정부는 구겐하임재단에게 빌바오의 쇠락한 항구 지역을 내어주고 미술관을 후원하겠다는 조건으로 미술관 건립을 제안하였다. 바스크 정부는 1억 달러의 공사비를 충당 및 5천만 달러의 인수 기금을 조성하고, 구겐하임 미술관에 미화 2천만 달러의 단회비를 지불하며 박물관의 연간 예산 1200만 달러를 보조하기로 합의했다. 망해가는 도시에게 버거울 꽤 큰 액수들이 오가는 거래였는데, 대신 그 댓가로 구겐하임재단은 기관을 관리하고, 새로 탄생할 빌바오 구겐하임의 내용을 재단의 대표적인 컬렉션으로 채우는 조건을 받았다. 그리하여 1997년 10월 18일 빌바오 주민 약 5천 명은 공식 개막 전날 밤 박물관 밖에서 열린 야외 조명 쇼와 콘서트를 열며 화려한 행사을 열며 도시의 재번영을 기원했고,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1세(Juan Carlos 1세)가 개관식에서 테이프를 끊으며 공식적으로 개관하였다. 여기까지의 스토리는 또 엄청나게 길고 눈물겨운 노력의 역사가 있지만 여기서는 그 느낌만 전달하며 이제 건물의 설명으로 넘어간다.

 

어쨋든 빌바오 정부와 계약을 완료한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은 프랭크 게리를 건축가로 선정했고, 재단이사였던 토마스 크렌스Thomas Krenns는 게리가 이미 대담한 해체주의 건축을 이끌지만 더더욱 새로운 혁신을 보여달라고 요구하였다. 건물 외관의 곡선은 랜덤하게 보이도록 설계되었으며, 게리는 "곡선의 무작위성은 빛을 포착하기 위해 설계되었다"고 말했다. 내부는 "빌바오의 하구와 바스크 국가의 주변 언덕을 볼 수 있는 크고 가벼운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게리가 그 모양 때문에 '꽃'이라는 별명을 붙인 이 아트리움은 박물관의 동선과 구조적 중심이 된다. 또한 거대한 항공모함같은 외관은 비평가인 캘빈 톰킨스는 "티타늄으로 된 망토를 걸친 환상적인 형태의 꿈의 배"라고 묘사했다. 이 박물관은 도시의 맥락과 매끄럽게 통합되어 도시의 고대 산업 중심지인 네르비온 강을 따라 32,500 평방미터(35만 평방피트)의 부지에 돌, 유리, 티타늄의 상호 연결 형태를 펼쳐놓고 있으며, 거리 높이에서 볼 때 가장 인상적이다.

 

미술관 외벽은 습한 이 지역의 특성상 보통 쓰이는 금속 자재는 부식이 빨리되므로 대체재를 찾았다. 1편에서 소개한 와이즈만 미술관처럼 스테인리스 스틸을 쓰려고 했다가 결국 티타늄을 선정하였다. 티타늄은 부식에 매우강하고 고강도 내구성을 지니고 있어서 항공업계에서 주로 사용하는데, 무척 가볍고 곡면처리도 쉬워서 게리의 건축언어에 마리아주같은 재료가 된다. 때마침 90년대에 러시아에서 티타늄이 대량으로 발견 및 공정되며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운 좋게 티타늄을 대량으로 가져올 수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 지금 스테인리스로 도배된 구겐하임을 보고있을 수도 있다. 이 티타늄은 0.38mm의 얇은 두께로 가공하였고 33,000개의 패널이 미술관의 외관을 장식한다. 

 

건물의 중간부분. 로비의 뒷부분으로는 이렇게 넓은 전면유리 파사드facade가 강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크게 되어있고 그 내부에는 "꽃"으로 불리는 로비의 천장/천창이 나타난다.

 

로비에서 올려다본 천장. 각기 다른 재료를 입은 형태들이 우주의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는 듯하다. 다양한 각도로 빛이 스며들기에 매일 새로운 빛의 향연이 이 내부에서 벌어진다. 바닥은 그라나다 인근 후스카르 채석장에서 나온 베이지색 석회암으로 덮여 있으며, 두께 5cm의 석회암으로 잘려져 있다. 특히 태양의 영향으로부터 내부를 보호하기 위해 처리된 벽 덕분에 깨끗하다. 모든 창문 유리는 직사광선 중 내부의 석재에 치명적일 광선의 일부가 들어치지 못하도록 처리한 유리이다.

 

미술관 입구. 마치 계곡으로 내려가듯이 진입하며, 그 끝에는 "폭포"를 모티브로 한 로비가 자리한다. 폭포와 물고기의 메타포는 게리가 설계한 많은 미술관/공연장 입구에 이렇게 나타난다.

 

이 건물은 정확하게 주어진 예산과 시간 내에 지어졌는데, 이런 형태의 건축물을 그렇게 딱 떨어지게 시공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 하버드 디자인 매거진의 인터뷰에서, 게리는 그가 어떻게 그것을 했는지 설명했다. 첫째, 그는 정치와 경제적 이해관계가 설계에 개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가 말하는 "예술가 조직"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했다. 둘째, 그는 진행하기 전에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비용 견적을 내도록 했다 (재활용된 재료를 최대한 쓰면서 그 곡면의 구현을 위한 비싼 고급 노동력과 구조비용을 숨김없이 다 보여줬다). 셋째, 그는 Dassault Systems의 CATIA V3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Rick Smith에 의해 생산된 실시간 접속 가능한 한 개의 디지털 모델을 사용하여 건설 중 비용을 관리하기 위해 모든 팀원들과 실시간으로 협력하였다. (현재는 Revit이 이 기능을 하고 있는데, 당시에 이미 항공산업에서 쓰이던 프로그램을 건축에 미리 접목한 게리의 선견지명은 탁월했다). 그리고 이 카티아 프로그램은 자하 하디드 Zaha Hadid의 사무실에서도 즐겨쓰는데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이 것을 사용하여 설계되었다. 

 

도면을 보면 정말 꿈틀대는 유기체와 무기체가 연결되며 새로운 하이브리드를 생성하는 것 같다. 전시 공간 11,000㎡는 19개 갤러리에 분산되어 있으며, 이 중 10개는 외부로부터 석재로 식별할 수 있는 고전적인 직교 계획을 따르고 있다. 나머지 9개의 갤러리는 불규칙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소용돌이치는 유기 형태와 티타늄 외피로 외부로부터 식별할 수 있다. 가장 큰 갤러리의 크기는 가로 30미터, 세로 130미터(98피트×427피트)이다.

 

도면의 왼편으로 코끼리 코처럼 삐져나온 갤러리 부분에는 2005년, 로버트 휴즈가 "용기와 숭고함"이라고 칭한 리처드 세라 Richard Serra의 기념비적인 설치물 The Matter of Time을 소장하였다.

 

도시를 살리고자 아낌없는 지원을 쏟은 주 정부와 천재 건축가, 그리고 새로운 건축기술은 20세기를 대표할 건물을 탄생시켰다. 빌바오 구겐하임은 건축가 뿐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새로운 영감을 주는 시인이요, 도시를 살려낸 의사같은 존재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여행객들이 이 미술관의 전시물을 보러 오기보단 미술관 자체를 보려고 빌바오를 찾는다. 개관하고 1년만에 136만명나 방문하였고 지금까지도 매해 100만명 정도 꾸준히 다녀간다. 시의 소득원이 기존의 철강산업이 아니라 이 미술관과 그것에서 파생된 관광산업 (호텔, 컨벤션, 학회 등)으로 바뀌며 도시 브랜딩과 정체성이 통째로 바뀌게 되었다.

 

이후 세계 도처에서 너도나도 게리의 건축물을 원했고 그는 정말 많은 도시에 종이 구겨놓은 듯한  파격적인 건축물을 세우게 된다. 다들 '빌바오 효과'를 노린 것이다. 또한 '스타건축가'라는 말이 이때부터 시작되었으니 프랭크 게리가 정말 미술계로 치면 앤디 워홀같은 위치이다. 이후 2000년에는 특히나 이런 문화시설을 엄청 많이도 설계하였는데, 필자와 나이가 비슷한 건축인이면 아마 대학에서 건축학개론을 들을 시점에 (2000년대 중반) 게리는 신적인 존재로 생각했을 것이다.

 

 

시애틀 대중문화 박물관 // Museum of Pop Culture (formely EMP), Seattle 2000

대중문화 박물관(Museum of Pop Culture, MoPOP)은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있는 비영리 박물관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자 폴 앨런이 2000년에 체험 음악 프로젝트(Experience Music Project)이란 명칭으로 설립했다. 곧 바로 수십 개의 전시를 쉬지 않고 진행하고 이 중 17개가 미국전역과 국제적으로 투어전시를 하며 그 영향력을 입증했다. 2016년 11월까지 조금 더 길어진 명칭 체험 음악 프로젝트와 공상 과학 박물관 및 명예의 전당(EMP|SFM)으로 운영되었던 이 박물관은 매년 21세 이하를 대상으로 한 음악 이벤트 "사운드 오프!"와 평론가, 학자, 음악가 등의 연례 모임인 "팝 콘퍼런스"를 포함한 많은 공공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현재는 MoPOP으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실은 팝/대중문화를 담아낸다는 정신은 여전히 유지 중이다.

 

MoPOP은 시애틀 센터의 캠퍼스에 위치하고 있으며, 빌딩을 관통하는 스페이스 니들 및 시애틀 센터 모노레일에 인접해 있다. 빌바오 구겐하임,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 게리 타워와 같은 판금 건축에 있어서 그의 다른 대표작들과 닮았다. 특이한 점은 MoPOP은 건축 자재의 대부분이 건물 내부에 노출되어 있다. 워낙에 특이한 형태 3개가 또 다른 3개의 색 (금, 은, 진한 빨강)을 입고 부딪히는데 시애틀의 각종 매체에선 '박살난 전기 기타같다'며 혹평인지 호평인지 모르겠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게리는 실제 기타의 형상을 해체하며 각종 스케치를 했다. 그리고 이 것이 지금 우리가 보는 건물의 형태인 것이다. 

 

"프랭크 게리는 빌바오에서 멋진 건물을 만들었지만 시애틀의 것은 아니다", "바다에서 기어나와 굴러 넘어져 죽은 것", "못생긴 덩어리", "치질같은 것" 등 온갖 혹평이 있어왔지만 시간이 지난 현재 이 박물관은 세계 최대 규모의 지미 헨드릭스 컬렉션을 보유하며 못생겼다고 여겼던 3개의 '어그러진 기타'의 매싱은 '미국 록 정신의 적절한 표현'이라며 재평가되었다. 여기에 소개한 대표작 중 문화시설을 디사 몇개 죽 둘러보면 이 대중문화 박물관은 확실히 비율과 구성적인 면에서 조금 어색한 면이 없잔아 있다.

 

 

월트디즈니 콘서트홀 // Walt Disney Concert Hall, Los Angeles 2003

1987년 월트 디즈니 Walt Disney 의 부인 릴리안 디즈니Lilian Disney는 먼저 타계한 남편을 기리기 위해 이 콘서트홀을 기획하며 재단에 5천만 달러를 기부했다. (87년 당시 약 500억원이 넘는 매우 큰 액수의 기부금이다.) Frank Gehry는 다음 해 현상설계 공모에서 당선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시작과 동시에 정치적 문제와 디즈니사 경영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수 차례 무산될 뻔 하였다. 1994년에 설계가 아예 중단되었지만 2년 후 언론의 지지와 각종 모금 운동에 의해 부활했다. 겨우겨우 완공이 된 콘서트 홀을 2003년에 개장하여 LA의 대표적 랜드마크로 오늘날까지 이른다.

 

빌바오 구겐하임에서처럼 티타늄은 아니지만 같은 속성을 가진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스틸 표면은 건축 매체로서 자연의 빛과 함께 결합된다. 파사드의 모든 패널은 각자 다른 방향을 가지며 낮에는 햇빛으로, 야간에는 도시의 불빛들이 다양하게 이 표면에 연출된다. (물론 그래서 반사광 때문에 주변 건물들에 해를 끼치는 경우도 있어서 어느 부분은 그 반사율을 줄이기 위해 나중에 표면을 둔탁하게 처리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석재로 모든 외관을 마감하려 하였으나 워낙에 곡면의 굴절이 심하고 다양하여 더 다루기 쉬운 스테인리스가 선정됬다. 또한 넓은 콘서트 홀과 각종 편의시설을 기둥없이 처리하려니 석재는 너무 무거운 재료였다. 어쨌든 그리하여 빌바오 구겐하임의 동생 격인 대표작이 또 하나 나오게 된다.

 

건물 외부를 감싸는 매싱은 물결치는 면과 각진 면이 배합되어 있어 마치 꽃을 연상케한다. 게리는 장미 꽃을 생각해두었다는데 이 과정에서 정확히 심슨에 나온 것처럼 구겨진 듯한 종이모형과 스케치를 통해 디자인을 발전시켰다. 모두 커스텀 제작된 입면의 타일과 구조는 랜덤해 보이지만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하나 치밀한 구조역학 계산으로 완성이 되었다. 예를 들어 입구 로비에서 올려다보면 천창과 17도로 기울어 있는 벽면들이 만나는 부분을 접합하기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 공연 전 카페나 스토어에서 이 천창을 통해 철골조각을 엿볼 수 있고, 정원으로 통하는 계단에서 지지 구조물을 볼 수 있다.

 

콘서트 홀 내부에는 오케스트라와 관객석이 나뉘어지지 않고 한 공간을 영위하는 것이 아쿠스틱적 해결문제였다. 좌석은 무대를 중심으로 모든 측면에 자리하며 먼 곳의 관객들도 무대에 가까이 있게 느끼도론 seating bowl의 각도가 꽤 급격하다.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관장은 각 발코니와 부스 좌석을 열어 모두 열어 조금 더 큰 군집들을 만들어 공간적 분리를 최소화 하며 '사회계층 간의 차이'를 줄이는 것을 원하였다. Douglas fir (목재의 명칭) 판넬은 곡면으로 curvilinear 각 좌석의 구획/정리만을 하며 시각적으로 2,265석의 콘서트 홀의 어느 공간이 특별하게 분리/차별되는 것을 금하였다. 물론 무대에서의 거리는 어쩔 수 없지만, 보통 공연장에서 볼 수 있는 더 비싼 개인 발코니 박스석 같이 시각적으로도 음악의 울림이 방해될 것같은 파티션을 아예 삭제해버린 것이다. 강철 지붕 구조는 long span으로 실내 기둥을 모두 없앴다.  오르간은 6,134개의 휘어진 파이프가 마치 꽃다발처럼 정면을 장식한다.

 

 

게리는 음향 컨설턴트인 도요타 야스히사 Toyota Yasuhisa와 함께 더욱 소리를 잘 감상할 수 있는 공간적, 물질적 요소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그들은 각 좌석마다 소리가 어떻게 들릴지에 대한 음향 테스트를 위해 1:10 스케일 모델을 사용했다. 실제 건축 공간의 1:10 스케일이므로 소리 파장 또한 1/10로 줄이기 위해 공간 내 주파수 조절은 물론 모든 모델의 요소들이 그에 따라 스케일링되어야 했다. 공연장의 곡면 칸막이와 굽은 천장, 휘어진 파이프 등은 외관의 조각 언어를 암시하며 음향 시스템의 일부로 작용한다.

 

 

 

시카고 제이 프리츠커 파빌리온 // Jay Pritzker Pavilion, Chicago 2004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여하는 그 집안이 맞다. 시카고에 소재한 햐얏트 재단의 주인인 프리츠커가문은 시카고 도심 한복판 이 비어있던 토지를 시민을 위한 공원 및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키고 싶어했다. 이 건물은 1999년 4월 게리가 설계하였으며, 1999년 6월부터 2004년 7월의 꽤 긴 공사기간을 통하여, 2004년 7월 16일에 공식적으로 개관하였다. 밀레니엄 파크 Millenium Park의 일부로 서로 공사일정이 겹치면서 진행되었는데 이 파빌리온은 미국 유일의 '야외 클래식 시리즈'인 그랜트 파크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그랜트 파크 뮤직 페스티벌 Grant Park Symphony Orchestra and Chorus and the Grant Park Music Festival 의 본거지이다. 또한 다양한 음악 시리즈와 연례 공연 예술 행사도 개최한다. 요가 등 체력단련 활동까지 진행하며 주류 록밴드부터 클래식 음악가, 오페라 가수까지 다양한 연주자들도 이 곳을 거쳐갔다. 여기서 열리는 모든 리허설은 일반에게 공개되며 진정한 '공공장소'의 의미를 되새긴다.

역시 새로운 도전은 역경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인가. 파빌리온이 사선제한, 높이제한, 랜드마크적 장소의 각종 변경제한 등 설계시작부터 논란을 빚었다. 이러한 법적 규제를 피하기 위해, 시카고 시의회는 이 곳이 건물이 아닌 예술 작품으로 분류하였는데, 그래서 이 곳의 명칭이 "파빌리온"인 것이다. 즉 가건물 혹 일시적 구조물 뿐이란 것이다. 그리하여 공연하는 부분 외에 객석부분에는 공원처럼 모두 잔디를 깔고 지붕없이 그저 음향시설을 매달기 위한 웹web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조립에 문제가 생기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디자인이 지금보는 것처럼 간단하게 수정되었다. 결국 공연장은 앞쪽의 고정석 공간과 잔디밭, 음향 시스템을 지원하는 트렐리스 네트워크trellis network, 게리의 시그니처인 스테인리스 스틸 헤드드레스headdress 등으로 설계됐다. 실내 공연장 음향체험을 재현한 어쿠스틱 디자인의 사운드 시스템이 특징이다.

 

 

 

 

MIT 스타타 센터 // Ray and Maria Stata Center MIT 2004

레이 앤 마리아 스타타 센터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대학, MIT (Massachusetts Technology Institute)에 위치한 720,000 평방피트(67,000평방피트)의 학술 단지이다. 이 건물은 2004년 3월 16일에 처음 기숙사 부분이 먼저 오픈하며 사용되었다.

게리의 초기작에서 보였던 "쾅쾅"대면서 서로 부딫히는 듯한 각기 다른 재료를 입은 직선적 형태들은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건물 중 하나이다. 보스턴 글로브 Boston Globe의 건축 칼럼니스트인 로버트 캠벨은 2004년 4월 25일 이 건물을 다소 희한하게 찬양했다. "스타타는 항상 미완성처럼 보인다. 또한 곧 무너질 것처럼 보인다. 기둥이 무서운 각도로 기울었고 벽은 임의의 곡선과 각도에서 비틀리고, 회전하고, 충돌한다. 벽돌, 거울같은 스틸패널, 알루미늄, 밝은 색 페인트로 칠한 스터코stucco벽들, 골강판corrugated steel, 도색된 티타늄 등 모든 것이 마지막 순간에 던져진 것처럼 매우 즉흥적이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스타타의 출현은 그 안에서 일어나야 할 연구의 자유, 대담함, 창의성에 대한 은유이다"  

 

그렇다.아방가르드적인 시도, 일단 겁내지 말고 해보는 것이다. 그 실험정신을 캠퍼스에 놓인 건물형태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보일 수 있다. 그 외 많은 매체에서 MIT 캠퍼스의 중심부가 이 스타타센터로 옮겨진 것 같다고 평하였다. (실제로 위치상으로도 가장 중간에 있다).

 

위에서 바라본 스타타센터. 안쪽에는더욱 다양한 재료와 형태들이 마치 큐비즘의 공간처럼 시공간을 뛰어넘는 듯하다.

구조 알고리즘을 뒤집어서 무질서를 만드는 건축. 즉 정확하게 공간이 구획되고 또 그로 인해 우리의 생활 형태가 고정되는 것을 프랭크 게리는 반대했다. 그의 '해체주의' 건축을 아마 가장 커다란 스케일로 보여주는 프로젝트 일 것이다. 그가 구현한 무작위성은 자연의 조직적 복잡성의 반대이다.

 

 

 

마르타 허퍼드 미술관 // MARTa Herford, Herford, Germany 2005

20세기 초에 독일의 소도시 허퍼드Herford는 가구와 의류 산업을 위한 중요한 장소로 발전했으니 빌바오에서 보았던 것처럼 산업의 흐름이 바뀌며 이 곳도 서서히 쇠락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미술관 또한 '발바오 효과'처럼 독일 가구 생산의 중심지인 허퍼트의 부흥을 꿈꾸며 시작되었다. MARTa는 Möbel (독일어로 '가구'), Art (미술), ambiente (환경/분위기)의 약자이다. 미술관 설립의 중심에는 벨기에의 유명 큐레이터 얀 회트 Jan Hoet가 있었고 2009년 롤랑 나흐티괼러 Roland Nachtigäller 가 광장으로 부임한다. 이 건물은 게리가 또 한번 특유의 조형언어를 뽐내며 설계하고, 시공 및 감리는 독일 로컬회사 아르키메데스 Archimedes GmbH가 진행하였다. 2001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2005년 5월 7일에 대중에게 오픈하였다. 

 

건축적 형태는 게리의 시그니처의 디즈니홀, 구겐하임 등과 거의 동일하다. 그런데 붉은 벽돌로 이렇게 지어놓으니 읽히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벽돌의 느슨한 접합부에 흐르는 역동성이 울려 퍼지고, 물결치는 지붕의 풍경은 Aa강의 인접 항로를 반영한다. 이 흐름은 박물관 내부에서도 진행된다. 게리는 모든 전시관 내부를 외관에서 보는 것과 동일하게 율동적인 공간의 볼륨으로서 경험하도록 하였다.

 

앞서 보았던 와이즈만 미술관에서 각지게 열리는 천창이나 구겐하임, 디즈니홀에서처럼 창호가 직접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굴절된 곡면을 따라 정확히는 알 수 없는 빛이 어디선가 뿜어져 내려오는 효과를 주었다. 그리고 외벽의 '덩어리' 매싱들이 충돌하지 않고 자연스레 엮이며 꽃잎이 열리는 듯한 천장을 만들어 냈다.

 

입구는 역시 흘러내리는 폭포 혹 빙하의 형상을 꼭 넣는다.

 

카페 전경. 뒤쪽의 공간에서 삐져나오는 구리copper 판넬의 발코니.

 

 

 

 

뉴욕 IAC 빌딩 // IAC Building, NYC 2007

뉴욕IAC 빌딩(IAC Building)은 뉴욕 맨해튼 첼시 11애비뉴와 18번가 교차로에 위치한 인터랙티브 코퍼레잇 InterActive Corp의 본사 건물이다. 이 빌딩은 뉴욕에서 게리의 첫 번째 건물이었으며 당시 로비에서 세계 최대의 고해상도 스크린을 선보였다. 빙하인지 꽃잎인지 어딘가 앞서 언급한 미술관 디자인과 흡사한 이 건물은 크게 두 가지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틀어진 상층부 부분과 아래 포디엄 podium 부분은 같은 융점 유리 fritted glass로 씌워져있다. 모든 파사드 전면을 커버하는 이 유리 패널은 각 층의 상단과 하단 가장자리에서 흰색으로 희미하게 변한다. 모든 층의 층고가 보통 건물의 2배 정도인데, 이 긴 비율을 엉성하지 않게 잡아내려 횡으로 frit을 넣은 것이다. 

 

이 건물은 뉴욕의 명소, 첼시의 하이라인 High Line에서 아주 잘 보인다. 거의 우유같은 빛깔을 지녔기에 아침과 저녁으로 건물의 색이 풍부해진다. 

유명 잡지 Vanity Fair는 이 건물이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무실 건물들 중 하나일 것이라고 평했다. 프로젝트와 밀접하게 관련된 IAC의 책임자인 Barry Diller는 Gehry가 원래 계획했던 것처럼 전면을 주름진 티타늄이 아닌 부드러운 유리로 덮을 것을 요청하였는데, 미술관과는 달리 외부를 볼 수 있어야하는 오피스 건물에 이 요청이 응답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딜러는 전형적인 박스형 건물에서 탈피하여 직원들이 개방적인 분위기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원했고 그 공간이 잘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온타리오 미술관 증축 // Expansion of Art Gallery of Ontario (AGO), Toronto 2008

토론토에서 태어난 그가 처음으로 모국인 캐나다에 지은 첫 작품이다. 그에겐 아주 특별한 작업이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필자도 토론토대 학부시절 AGO근처에 있으면서 자주 들어 이 미술관의 역사와 발전과정, 컬렉션, 그리고 게리의 회상록과 스케치, 증축 과정을 모두 보았기에 아주 각별한 프로젝트이다. 게리를 당시에 직접 만나보진 못했지만 건축학도에게 이런 마스터의 작업이 진행되는 것을 실제로 매주 볼 수 있는 것은 행운이었다. (이 부분은 필자의 여행기+해외생활 - 북미 섹션에서 곧 찾아볼 수 있도록 하겠다.)

 

던다스Dundas Street에서 바라본 거대한 "물고기"같은 AGO의 새로운 얼굴. 기존 건물이 유리로 된 '몸체' 뒤 (사진에서 좌측)으로 보인다. 

온타리오 미술관 (AGO, Art Gallery of Ontario)은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에 있는 미술관이다. 이 곳은 45,000 평방 미터의 공간을 차지하여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미술관 중 하나가 되었다. 전시 공간 외에도 미술가 사무실과 스튜디오, 식사 시설, 행사 공간, 선물 가게, 도서관 및 자료실, 극장 및 강의실, 연구실, 작업장 등이 들어서 있다.

 

잠시 역사를 보자면 1900년 토론토 미술관 (Art Museum of Toronto)으로 설립되었으며, 1903년에 정식으로 통합되었다. 1919년 Art Gallery of Toronto로 개칭되었다가 1966년 현재의 이름으로 또 한번 바뀌었다. 미술관 재단은 1911년에 건물 남쪽에 있는 공원 Grange를 매입했고, 이후 건물의 북쪽과 서쪽까지 몇 차례 확장 공사를 했다. 1918년, 1924년, 1935년에 지속적으로 확장을 하였고, 달링과 피어슨에 의해 설계되었다. 1974년 이후, 그 전시공간을 4개 더 넣으며 증축을 거쳤다. 그리고 1993년에 또 한번 파킨Parkin, 바튼 마이어스 Barton Myers와 KPMB 아키텍츠에 의해 증축. 정말이지 AGO의 역사는 계속 커져가는 역사이다.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한 프랭크 게리의 대규모 증축이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있었는데, 기존의 모든 증축과 건물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커졌다. 참고로 2010년에 KPMB와 하리리 폰타리니 Hariri Pontarii에 의해 2010년대에 더 많은 개축이 이루어졌다. (이 미술관은 정말 장사가 잘 되나보다...) 그러나 이렇게 수 많은 증축을 겪은 미술관에 대규모 증축을 하는 것은 정말 힘든 도전이었다고 게리는 말한다. 이미 여기저기 각기 다른 건축구조와 공간, 동선,재료 등이 뒤섞여 "정신이 하나도 없는상태"였는데 그는 기본 골조를 거의 건드리지 않고도 새로이 외벽 이곳저곳에 구조물을 보이지 않도록 심어 부유하는 각종 매싱을 얹어냈다. 그 매싱과 내부 공간을 살펴보자.

 

입구에 들어서기 전 이미 이 물고기 형태의 Galerie Italia가 길거리에서 시선을 사로잡는다. 전시를 보다가 갑자기 토론토 시내가 보이며 확 밝아지며 마치 온실에 온듯한 느낌을 주는 목조 구조 공간이다. 이 정도 규모의 Timber Construction은 게리도 처음이었는데 목재를 일일이 다 다른 각도에 맞추어 휘도록 처리하는 것은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참고로 캐나다의 이런 timber construction 기술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이렇게 빙글빙글 돌아 뒤로 보이는 전시관으로 들어선다. 물론 양 옆으로 열린 공간이 있어 바로 직진하여 들어갈 수 있다.

 

게리는 특히 이번 설계에서 목재를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는데, 박물관 경목 바닥, 안내 키오스크, 매표소, 보안 부스, 건물 내부 계단 등에 필요한 목공사로 워커코트의 나선형 계단을 포함한다. 부스, 계단 및 단단한 목재 바닥의 면은 douglas fir 나무로 만들어졌다.

 

이제 입구를 통하여 워커 코트 Walker court, 미술관의 중정 이었던 부분이 이제 아트리움 atrium이 된 곳에 도착한다.

이 지붕도 강철 트러스 거더(Steel Truss Girder)로 새로 설치하였으며, 안뜰에 325 평방 미터(3,500 평방 피트)의 햇빛을 들이는 유리 패널 지붕을 지지하기 위해 접착된 적층 목재도 사용되었다. 일단 저 계단으로 빨려올라가면(?) 지붕을 뚫고 계속 올라가는데 남쪽 grange공원을 바라보는 5개 층의 전시관 건물로 이동한다.

 

빨려가는 듯한 느낌이 계속된다. 물론 워커코트를 중심으로 전시관이 있는데, 이 부분은 여행기에서 "전시"에 집중하여 올리도록 하고 여기서는 건축 자체만 알아보자.

소라의 소용돌이를 보는 것 같지 아니한가. 게리는 물고기 뿐 아니라 자연에서 많은 모티브를 얻는다. 소라도 그 중에 하나인데, 이 소용돌이 계단에 적절히 그 비율이 적용되었다. 이 사진은 계단 올라가는 와중에 올려다 본 것이다. 그리고 이 계단이 갑자기 나무에서 스테인리스로 바뀌는 곳이있는데 바로 남측 전시관에 4, 5층으로 도달했다는 것이다.

 

박물관 건물 남쪽에는 아예 떠있는 하늘빛 스틸 볼륨이 있는데 5개 층의 남측 전시관이 자리한다. South Gallery Block의 외부 표면에는 유리 및 맞춤 제작된 티타늄 패널이 있으며, Dundas Street 앞면처럼 접착된 적층 목재에 의해 지지된다.

 

특히 블록 4층과 5층을 연결하는 돌출된 나선형 계단이 재미있다.

 

이상 2000년대에 지어진 많은 미술관과 대학건물, 상업건물 1개씩  알아보았다. 2011년을 이후로 재료 뿐 아니라 형태와 지역적, 프로그램적 실험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데 그 예를 몇 가지 살펴보겠다. 

 

 

 

 <[Architect] 프랭크 게리 Frank Gehry (3/3) 2010년 이후> 에서 계속...

 

 

- 3화에서 소개할 건축물 -

뉴욕 by 게리 스프루스 8번가 콘도 // New York by Gehry at Eight Spruce Street 2011

파나마 생태학 박물관 Biomuseo Panama City 2014

시드니 닥터 차크 윙 빌딩 Doctor Chak Wing, Sidney 2014
루이비통재단 미술관 // Louis Vuitton Foundation, Paris 2014
루이비통 청담 // Louis Vuitton Cheongdam, Seoul 2019
구겐하임 아부다비 // Guggenheim Abu Dhabi 진행중

필라델피아 미술관 증축 // Philadelphia Museum of Art 진행중

페이스북 캠퍼스 // Facebook Campus 진행중

프랑스 아를 파크 주거단지 // Le Parc des Ateliers SNCF, Arles, France 진행중

그리고 프랭크 게리의 가구와 악세사리 (Tiffany's)

 

 

**출처가 따로 있는 사진 외의 모든 글과 사진은 직접 느낀 점을 쓰고 촬영한 것인 지적재산입니다.^^ 블로그의 내용은 요약본이고 차후에 각 토픽마다 더 자세한 글과 사진들은 매체에 기고하거나 손스케치와 함께 책으로 엮을 예정입니다. 방문하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공감과 댓글은 힘이 되요.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