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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여행 9박 10일 - 모카탐 & 콥트 기독교 Mokattam & Copts (3/9)

Brett D.H. Lee 2022. 9.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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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포스팅: 이집트 여행 9박 10일 - 만시야트 나세르 Manshiyat Naser (2/9)

 

만시야트 나세르 Manshiyat Naser지역 방문 중

 

이제 같은 지역에서도 모카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자발린들의 구역 속에서도 계속해서 확장되는 지역들이 많다. 모카탐은 고지대라 가장 위쪽까지 좁고 가파른 길을 따라 꽤 걸어야했다. (약40분정도) 이들한테는 '신도시'지역. 이 지역은 아직 지어지다만 가건물이 많이 나오는데 그 안에서도 쓰레기 분리작업이나 생활은 이어지고 있다. 돈이 생겨서 건축자재비가 충당되면 계속해서 층수를 올리는 신기한 건설 스케쥴. 그리고 정말 꺼지지 않는 '콥트인' 정체성. Copts란 이집트, 더 넓게는 아랍국가에 있는 기독교 신자들을 지칭한다. 민족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지만 같은 중동지역의 사람들 중 약 1,000~1,500만명의 기독교인을 말한다. 특히 이집트에서 박해를 받던 많은 이들이 만시야트 나세르 지역, 모카탐 고지대 기슭에 이곳저곳에 숨어 살며 더욱 'Copts'라는 단어 아래 정체성이 견고해졌다.  이들은 높은 교육열, 단결력을 통해 현재는 이 지역에 남아있는 '자발린' 외에 이집트 상류사회에 녹아든 콥트인들도 상당하다. 하지만 그들이 정치, 군사 관련 업무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아랍정권에서 강력히 배제시키고 있어 경제와 교육권에서만 그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포스팅에 언급했듯 이 지역의 '메인' 쓰레기 처리센터들을 둘러보고 주거지역으로 들어간다. 아이들은 지구 어딜가나 해맑은 것은 같다. 다만 이 지구 문명속에서 시간을 보내며 거부할 수 없는 삶의 무게에 찌들어가며 어른이 되는 듯...

 

실은 구약성경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집트와 초기 기독교의 관계는 떼려야 땔 수 없는 역사가 있다. 근현대사에서도 은둔생활하며 쓰레기 처리를 통해 생을 이어가야했던 콥트 기독교인의 모습을 살짝 엿보는 기회이다. 내가 뭐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이렇게 witness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감사한 일이다.

 

미로같은 길을 계속 걸어간다.

어디로 가는지... 그냥 시의원님과 경호원들이 가는데로 따라가는 중

 

벽에 워낙 튀어나온 것들이 많아서 옷에 자꾸 걸린다. 어이쿠... 좁고 높은 이 오르막...

 

이 안에서도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나를 30분째 쫒아오던 아이가 사진 좀 찍어달래서 찰칵. 카메라 화면 보여주니 매우 좋아하며 웃더라. 

 

명암 조절없이 육안으로 보이는 이 골목의 조도는 대략 이러하다. 거의 빛이라곤 찾을 수 없는 창문. 옆집에서 손 뻗어서 음식도 전달해 줄 수 있는 거리다. 어두운 길, 외벽에 가득한 파이프와 쇠로 된 각종 돌출부, 불규칙한 돌로 대충 쌓은 계단/비탈길. 왠만한 등산보다 더 힘든 길이었다.

나중에 보니까 바지와 셔츠에 온갖 스크래치와 구멍이 한 가득이었다. 내가 똑바로 못 걸어서 그런가?

 

오르는 길 곳곳에 이런 공터도 자주 나타난다. 분리수거/쓰레기 중간 '집결지'같은 장소.

 

마침내 도착한 모카탐 언덕 중 한 부분. 쓰레기 언덕 너머로 새로 만들어지는 거주지역이 보인다. 선진국인 한국인 입장에선 '이게 새로지어지는 거라고?' 하며 놀랄수도 있겠지만 이들에겐 이게 스탠다드이다. 물론 이들이 좋아서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니다. 최선의 방법이 이것이니까 저 벽돌집, 그리고 저 너머로 마감 전혀되지 않은 거친 콘크리트 표면의 아파트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오른편에 '흙'으로 빈 언덕에도 벽돌집이 빽빽하게 들어찰 것이다.

 

조금 더 걸어서 중간쯤으로 왔다. 브라질/남미의 파벨라나 유럽 곳곳에 존재하는 언덕 '판자촌' 및 한국에도 존재하는 용산구 '달동네'나 송파구 '개미마을'이 생각난다.

 

옥상이 옥상이 아닌 개념?

뒤쪽에 보이는 길로 건축자재를 조달할 수 있는 만큼 가져와 계속 위로 올린다. 중간중간 기둥만, 혹 올리다 멈춘 벽체가 보인다. 아직 '지붕' 혹 '윗층'이 없는 곳은 빨래 널고 옥상 파티오로 사용하는 듯...

 

고개를 돌리면 저 멀리 카이로 시내를 너머 기자의 피라미드까지도 보인다. 날이 화창할때는 스핑크스의 얼굴부터 피라미드 돌 하나하나까지 다 보인다고 한다. 피라미드 바로 오른편에 높게 솟은 빌딩이 내일 둘러볼 이 곳의 '여의도'였던 마스페로 지구이다.

 

 

언덕을 내려와서 다른 언덕으로 향하는 길. 시 의원님 얼굴은 안나오게 하나 찍어보았...다. 괜찮겠지? ㅎㅎㅎ

이 사진에선 안보임.

 

한창 공사중인 곳. 언덕에 "계단"처럼 층을 내고 있다. 

 

어우. 저 아파트 있는 곳까지 올라가야한다...

 

따라오던 아이들이 여기로 올라가면 참~ 빨리 간다고 귀띔해준다.

어...... 그냥 돌아가더라도 길 터놓은 곳으로 갈게;;; -_-

 

그래서 이렇게 먼 길로 빙~ 둘러가고 있다.

그 와중에 기어이 '기어'올라가는 아이들 ㅎㅎ

이 사진이 너무 맘에들어서 1편부터 지금까지 계속 올리고 있다. (고화질은 나중에 따로 공유하겠음)

이 곳의 아이들은 등하교길, 산책길, 그냥 놀러가는 길 모두 이 언덕을 이용한단다. 아이고.

 

 

생각보다 귀여운 '윗쪽' 마을.

다른 곳에서 버려진 혹 남겨진 창틀, 타일, 페인트를 갖다 붙여서인지 다 제각각 다른 사이즈와 색감을 가진다. 덕분에 꽤나 다채롭고 비비드한 파사드가 되었다. 조금 슬픈 동화나라 같다고나 할까.

 

웃어주시는 한 아주머니.

 

다들 각자 알아서 건물을 되는데로 올리고 있으니 당연히 시공이 제데로 될리가 없다. 가까이서 보면 벽돌이 grout없이 그냥 마구 얹혀져만 있는 것 같아 위태로워 보인다. 가끔 무너져내린 곳이 있으면 이렇게 시멘트로 마치 찢어진 종이 스테이플하듯 대충 붙여놓는다. -_- !!! 바닥을 구성하는 슬라브가 외벽 밖으로 튀어나온 것도 신기하다. 방수, 방음은 물론 구조적 안전까지 안드로메다에 가버렸다. 다소 웃긴 코멘트지만 굉장히 슬픈 현실.

 

걷다가 한 '옥상' 부분으로 와보았다. 이 위로 슬라브치고 또 한두개 층이 생기겠지. 지금은 빨래말리는 옥상이다. 

 

이제 한참을 걸어 거주지역을 나왔다. 정말 건물들이 아무렇게나 서로 엉겨붙들고 있다. 하나가 무너지만 도시 전체가 다 무너질 것 같다. 그런데 이때까지 (100년 넘게) 단 한번의 구조적 문제없이 다들 잘 산다고 한다. 피라미드만큼 불가사의한 모카탐 언덕의 마을.

 

이번엔 모카탐의 거대한 바위 언덕 속에 위치한 여러 건물과 교회를 가본다. 박해가 심했던 시절에는 콥트 기독교인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아예 바위 속으로 들어가 살았다. 동굴도 아니고 페트라 신전처럼 지층 속으로 깎아들어가며 건물을 개미집 짓듯이 만들었다. 그 중 여기선 이곳의 상징인 The Cave of St. Simon 을 소개한다. (총 6개의 교회가 있는데 이곳이 가장 크고 상징적이다).

 

도착. 오른편 바위 절벽 속으로 들어간다.

 

언덕의 가장 아래쪽을 파고들어가 예배당을 만들었다. 지금은 조금 더 개방되어 빛도 들지만 기존에는 조금 더 폐쇠적으로 막혀있었다고 한다. 이 곳은 수도원도 함께 있는데 기독교인들이 이집트 지역으로 순례올 때 숨어지낼 수 있는 장소였다. 콥트 기독교인과 '쓰레기'사람이라 불리는 자발린(Zabbaleen)은 동일집단은 아니다. 자발린은 이집트의 가난한 자들이 이곳에서 쓰레기 분류하며 생계를 유지하다보니 그렇게 명명되었고 마침 박해를 받던 콥트인들과 함께 이 지역에 모여들며 어쩌다보니 많은 자발린들도 기독교에 자연스럽게 귀의하였고 지금은 마치 하나의 집단처럼 규정되버렸다. 그 뿌리는 다르게 시작하였지만 어쩌면 이집트 정부와 무슬림 국민들에 의해 버림받은 이들이 하나가 되어야 했던 것은 어쩔 수 없었을게다. 이집트 국민의 약 10%는 기독교인이다. 그리고 이곳의 자발린들의 90%는 콥트 기독교인이다.

 

1, 2편에서 언급했듯이 이들은 이렇게 환경이 열악한 만시야트 나세르와 모카탐 언덕을 떠나지 않는다. 첫째로는 이 쓰레기 분류작업이 이젠 너무 중요해졌기 때문에 버릴 수 없는 경제수단이 되었고, 두번째는 기독교 공동체를 반기지 않는 이집트인의 시선때문에 밖으로 굳이 나가서 정서적으로 피폐하게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1970년대에 기자에 있던 콥트인들이 이곳으로 쫒겨나 강제이주했는데, 먼저 거주하던 자발린들과 함께 이곳에서 종교 공동체를 이루어 안정을 얹었다고 한다.  

 

작은 예배당에서 터널을 통해 큰 야외 예배공간 amphiteather로 나간다.

 

어우. 하늘이 조각되어 있다. 오른편에는 길에서 입장하는 교회건물인데 이 야외예배당으로 바로 연결된다.

 

약 2만명이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

 

바위 이곳저곳을 깎아 교회에 필요한 공간을 만들었다. 

 

 

 

아무리 봐도 신기한 공간. 이게 원래 이런 것이 아니라 전부 다 수직인 절벽을 깎아 안으로 들어간 것!

 

이렇게...

이 여행 이후 베니스 비엔날레 이집트관에 선보였던 이미지 중 모카탐 언덕의 건물에 영감받아 만든 모델 첨부하고

그 다음 편은 2011년 이집트 혁명에서 중요했던 마스페로 지역과 카이로의 숨은 인프라를 찾아가본다. 

Image Credit: Real Fiction by Studio Kolatan,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ented at the Venice Biennale Egyptian Pavilion

 

 

 

이집트 여행 9박 10일 - 카이로의 흉터, 도시의 슬럼화 Cairo's Underbelly (4/9)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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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의 모든 글과 사진은 직접 느낀점을 쓰고 촬영한 것입니다. ^^ 퍼가시면 출처표시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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